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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육 이후의 세계

by 요니

이케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카트를 끌고 코너를 도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엄마가 6~7개월 된 듯한 아이를 안고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무릎 밑에는 한 남자아이가 바닥에 고개를 박고 소리 내며 울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 옆을 지나고 한참 뒤 나는 남편에게 참 힘들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이를 바라보며 "어쩌면 그건 우리의 미래일지도 몰라"라고 답했다.


24개월이 지나면 아이의 언어 인지가 발달해 본격적인 훈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전에는 표정과 음성으로 위험한 것과 아닌 것에 대해 반응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2돌은 지나야 세상의 규칙이나 감정 조절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한다. 안전과 보살핌을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할 시기다.


아이는 돌도 지나지 않았고 고집이 세지도 않다. 하지만 자아가 발달할수록 기초적인 훈육도 필요해진다.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걱정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때를 쓰는 아이를 달래야 하나, 조용히 기다려야 하나.


분투하고 있는 내 모습과 아이의 팔을 버둥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조금 먼 미래로 넘어간다. 내가 진짜로 가르쳐야 할 것들은 뭐가 있을까. 30살을 훌쩍 넘기고 곧 40을 바라보며, 이런 건 필요하다고 느낀 것들말이다. 나는 메모장을 꺼내 한 줄씩 써본다.




혼자 노는 법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시간에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에너지를 쓰려고 한다. 고독하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아이도 커서 혼자 잘 놀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가진 씨앗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만의 재능을 꽃피우는 시간은 혼자서 가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혼자서 관찰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물론 중요하고, 어떨 때는 그게 전부일 시기도 있겠지만, 너무 관계에만 몰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생에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직접적인 연결은 300명이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아이를 관찰한 지 이제 1년이지만, 다행히 혼자 잘 논다. 유심히 사물을 관찰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 옹알이를 하며 무언가를 표현하기도 한다. 사회성이 발달하고 관계에 몰두하는 시기는 분명 올 것이다. 그때도 적게라도 혼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사실과 감정 구분하는 법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무조건 생긴다. 특정 사건 때문일 수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무엇에 영향 받든 마음이 불안하고 괴로운 일은 분명 아이에게 일어날 것이다.


그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의 대부분은 사실이라기보다는 그로 인한 '내 감정'(해석하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일은 이미 오래전에 끝나버렸는데, 반복적으로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탓에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 마음을 상하게 했는가.


솔직히 고백하면 나 역시 지금도 사실과 감정을 구분하는 일이 어렵다. 하지만 구분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풀리는 때가 많았다. 모닝 페이지에 감정을 모조리 쏟아내 글을 쓰고 나면, 실제 대상에 내가 외부에서 들은 인식(미디어, SNS)을 더해서 결론을 내는구나 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자 신기하게도 내 감정도 같이 떨어져 나갔다.


자신의 성향에 맞게 직접적인 방법은 찾아야겠지만, 꼭 익혔으면 좋겠다. 그런 감정이 들 때 심호흡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며 감정에서 조금 떨어져 보면 더 단단한 사람이 될 테니까.



시도하는 법

많이 시도하고 많이 실패했으면 좋겠다. 실패하는 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육아는 아이를 완벽주의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모든 것이 옳아야 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가.


내가 만든 선택지를 강요하기보다 아이가 선택하면 좋겠다. 내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하는 다짐은 '실패해도 별다른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을 바꾸는 중대한 선택이 몇 번이나 될까. 손가락이 다 필요하지도 않다. 그 외에는 정말 작은 선택들이었다. 실패해도 상관없는 작은 선택들 하나하나에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패로 배우고,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된다.



돈 관리하는 법

부모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가르침은 돈 관리하는 법이었다. 초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부모님은 주마다 용돈을 주셨는데, 한 번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뭐라고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주어진 용돈으로 스스로 사야 하는 것들을 샀다. 용돈을 탕진해서 곤란한 적도 많았지만, 최대한 손을 벌리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정된 돈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돈은 정말 중요하다. 무엇보다 안정된 일상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내 경우 일정 소득과 자산이 되니 더 이상 돈 문제로 긴 시간을 에너지를 낭비하지도,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100권이 넘는 재테크, 경제 서적을 읽으며 느낀 돈 관리 방법은 역시 저축과 투자다. 덧셈과 뺄셈을 잘하는 법은 스스로 돈을 관리해 봐야 얻을 수 있다. 적은 용돈부터 관리하면서 어느 정도 욕망 조절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내용을 아이에게 전하는 건 너무 먼 미래다. 아직 걸음마도 하지 못하는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 행동 양식, 관계를 터득해야 한다. 나 역시 이케아에서 만난 그녀와 같은 상황에 닥쳤을 때 대처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내가 무언가를 알려줘야 한다면 이 네 가지를 알려주고 싶다. 어쩌면 아이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배울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아이를 대하는 내 행동 하나, 몸짓 하나에 이런 마음가짐이 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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