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놀잠이 뭔데? 못 하면 큰일나는거야?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내가 출산을 하기 전, 육아 관련 유튜브 채널을 몇 번 보다보면 알고리즘은 금세 나의 피드를 아기 관련 채널로 꽉꽉 채워 보여준다. 그 중에서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마치 암호처럼 보였던 말이 바로 '먹-놀-잠' 이었다. 유추하기에 너무나도 간단한 줄임말이라 대번에 '먹고 놀고 잠자고'라는 것을 알아챘으나 그게 과연 어쨌다는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이런 저런 영상들을 시청했었다.
간단히 말하면, 아기에게 먹으면 놀고, 놀고 나면 잔다는 패턴을 학습시켜서 육아를 보다 예측가능하게 만들고 이아이에게는 건강한 리듬의 하루를, 엄빠에게는 좋은 컨디션을 제공한다는 것이 먹-놀-잠 교육의 취지였다. 나는 조리원에서부터 다른 아빠들보다 뛰어난 육아 스킬로 먹놀잠 패턴을 만들어주어서 아이도, 아내도, 나도 편한 육아를 실현하리라! 는 의지로 가득했다. 게다가 육아서적계의 바이블로 불리우는 똑게육아(똑똑하고 게으르게 육아하기) 콘텐츠를 접하고 이런 나의 열망은 하늘을 찔렀다.
다온이가 생후 65일을 달리고 있는 지금, 과연 나는 먹놀잠 패턴 만들기에 성공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으며, 그래서 뿌듯해하기도 반성하기도 했다. 역시 이론과 실제, 남의 애와 나의 애는 다르기 때문에 어렵고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굳게 믿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도전정신만이 깨달음을 준다는 사실이다.
하나, 잘 먹이기 : 웬만하면 젖병은 떼지 말고, 정한 양은 확실히 먹이기, 트림은 무리하지 않기.
다온이는 조리원에서부터 다소 빠르게 분유를 먹어치우는 편이었고, 집에 와서도 그랬다. 수유 후 소화를 시키거나 잠들기 시작할 때 자주 게우는 다온이를 보면서 나는 먹는 속도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유 시에 의도적으로 젖병을 4-5회씩 뗏다가 다시 물렸는데, 이렇게 되니 아기가 집중해서 먹는 흐름을 자꾸 끊게 되었고 결국 같은 양을 먹여도 부족한 것 처럼 느껴 보채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변수를 바꾸어보기로 했다. 수유를 할 때에 아기가 켁켁대거나 사레에 들리지만 않는다면 젖병을 떼지 않고 정해진 양을 끝까지 먹이기로. 대신, 트림을 시키기 위해 집착적으로 다온이의 등을 두드리던 것을 조금 내려놓고 10분 가량 트림을 하지 않으면 그냥 편안하게 놀아주거나 바운서에 놓아주었다. 그러니 웬걸, 수유가 끝나고 나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이는 것(눈을 끔뻑 끔뻑 하면서 손가락을 쫙 펴고 힘을 빼는 동작)은 물론 오히려 무조건 트림을 시킬 때보다 게우는 횟수도 적어졌다. 우리는 비로소 두 가지를 깨달았다. 다온이가 애초에 태어나기를 먹성이 좋은 아이기에 자기만의 먹는 속도를 갖춘 것이고, 오히려 과한 트림 유도는 소화되려던 분유를 윗쪽으로 끌어올리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 실제로 의학 서적과 논문에 근거하여 콘텐츠를 만드는 한 유튜버에 의하면 트림을 시키는 것은 성인 관점에서의 유도된 행위이지 아기에게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닐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음식을 섭취한 후 반드시 트림을 해야 소화가 잘 되었다고 믿지는 않는 것처럼. 먹는 속도를 존중해주자. 그리고, 억지로 트림을 시키지는 말자.
둘, 잘 놀아주기 : 놀 수 있는 시기가 있다, 놀아주는 데에도 눈치가 필요하다.
그저 '먹놀잠'의 망령에만 빠져있던 나는, 생후 3주차가 된 신생아 다온이에게 '노는 시간'을 부여하려 했었다. 먹이고 나서 바로 잠에 드려고 하면 흔들어 깨워 초점책을 보여주었고, 갖은 소리를 다 내 가며 아기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 그런데 웬걸, 아기는 즐거워하기는 커녕 도리어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았고 더불어 자야 할 시간도 지나치고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예정시간보다 일찍 밥을 달라고 칭얼댔다. 무엇이 문제였을지 알아보니, 신생아 때에는 사물을 의지적으로 지각하고 반응하는 힘이 약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먹고 자고 먹고 자는' 패턴으로만 매일을 보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자려던 아기를 자꾸 깨워댔으니, 다온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짜증이 나고 성가셨을지 너무나도 미안했다. 이후로는, 졸면서 먹거나 자면서 먹을 때에만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잠을 깨워주고, 먹고 나서 바로 잠드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굳이 말리지 않고 10분만 짧게 등을 두드려준 뒤 재웠다.
그러던 다온이도 생후 50일이 가까워오면서 보다 바쁘게 시선을 옮길 줄 알게 되었고 수유 후에 모빌 아래에 눕혀두면 혼자서 20분 가량은 놀 줄 아는 아기가 되었다(20분의 시간 동안 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다. 건조기에 빨래 돌리기, 간단히 집 정리하기, 아기 이부자리 갈아주기, 미리 밥 차려두고 먹어치우기 등등). 그렇다고 늘 혼자 놀게 두는 게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모빌을, 때로는 아기체육관을, 때로는 초점책을 보여주면서 아기가 지루해하지 않고 다양한 자극을 느낄 수 있게 20-30분의 시간 안에서 다양한 놀이를 추가해 나가는 것이 필요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아이와 논다는 것은 그저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는 시간에 아기의 눈빛과 표정에 꾸준히 집중해보면 지금 이 시간을 즐기는지, 지루해하는지,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하지 않는지를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그것을 '눈치'로 이해했고 눈치껏 놀잇감을 바꾸어가며 대응했다. 그러면서 먹는 시간 15분, 소화(트림)시간 10분, 노는 시간 20-30분이 더해져 먹고 노는 데 까지 약 1시간의 텀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셋, 잠 재우기 : 아직 파훼법을 찾지 못한 극한의 난이도, 단 반드시 지켜야 할 '수면의 총량'
과거의 내 모습처럼 '먹놀잠 패턴'에만 집착하다 보면 궁극적인 목적인 '아기에게 건강한 생활패턴을 제공하는 것'을 놓치기가 쉽다. 실제로 낮잠을 거부하던 아기가 어쩌다 한 번씩 낮잠에 성공하여 아빠가 '먹놀잠 패턴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에 수면시간 관리를 못하게 되면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며칠간 패턴에만 집중하여 낮잠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재우다가 밤을 꼴딱 새우며 칭얼대는 아기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왜 이렇게 아기가 밤잠을 못 잘까? 어디가 아픈 걸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날 아내와 함께 그 원인이 수면 총량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심한 자책을 했다. 아기들은 신생아 시절에는 수면 총량이 최대 18시간에 이르고, 2-3개월 아기의 경우 약 15시간에 이른다. 다온이는 60일께에 접어들면서 최대 5-6시간의 밤잠을 통으로 잘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는데, 문제는 낮잠을 너무 많이 재워서 밤잠을 재우기 전에 이미 총량에 가까워진 상황이라면 아기는 쉽게 잠들 수가 없다. 30-40일의 다온이가 아직 낮과 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할 때라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마음껏 반복했다면, 50일을 넘기면서부터는 낮과 밤을 구분하므로 의도적으로 낮에 잠을 잘 자지 못하더라도 편하고 길게 밤잠을 잘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웠다. 또래에 비해 낮잠 횟수와 시간이 적고, 밤잠은 비슷하게 자서 수면 총량이 다소 부족한 다온이이기에 여전히 낮잠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재울 수 있을지 고민이지만, 밤에 오랫동안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은 '패턴'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수면 총량'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다온이를 만난지 이제 고작 65일이 되었지만, 초보 아빠의 입장에서 결국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던 건 '얼마나 빨리 아기의 먹놀잠 스타일을 파악하는가' 였다. 가장 처음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우리가 하는 육아라는 일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고객을 위한 커스텀 서비스이기에 아주 보편적인 육아 스킬과 노하우는 참고할 수 있되 절대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통 25분에서 30분동안 분유를 먹는다고 해도 우리 아이는 15분만에 먹는 게 본인의 속도일 수 있고, 굳이 트림을 애써 하지 않는 것이 편안할 수 있으며, 낮에는 잠보다는 놀이를 좋아하고 밤에 몰아 자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또한, 좋다고 알려진 '패턴'을 만드는 것에만 집착하다보면 과연 이것이 무엇을 위한 패턴인지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뿐이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아기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에 대해 때로는 집착하고, 또 깨달으며 내려놓게 되겠지만 결국 아이의 스타일에 적응하고 이를 편안하게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만이 가장 옳은 방법이라 믿게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