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종료, 열아홉 어른의 겨울

: 자립 준비 청년의 홀로서기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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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종료, 등대 없이 건너는 바다-불쌍해서가 아니라, 치열해서 아름답다!


통장에 찍힌 수천만 원, 그리고 고시원


만 18세, 시설 퇴소의 날. 아이들의 손에는 제법 묵직한 돈이 쥐어진다.

정부가 주는 자립 정착금 1,000만 원, 그리고 후원자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디딤씨앗통장'의 1,000~2,000만 원. 합치면 사회 초년생에게 꽤 큰 목돈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니? 나라에서 다 챙겨주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미친 듯이 치솟은 대한민국의 전세금과 월세 앞에 그 돈은 모래성처럼 허무하다는 것을.


서울 하늘 아래, 안전하고 깨끗한 전셋집은 억 소리가 난다.

결국 아이들은 그 돈을 들고도 곰팡이 핀 반지하 방이나 창문 없는 고시원을 전전한다.

더 무서운 것은 '금융 문맹'이라는 현실이다.

평생 용돈 기입장 한 번 써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갑자기 생긴 목돈은 축복이 아닌 독이 되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한턱내고, 최신폰을 사고, 사기꾼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면 그 수천만 원은 몇 달 만에 증발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을 쓰는 법을, 집을 구하는 법을 가르쳐 줄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비망록은 단순히 가난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의 내비게이션 없이, 등대 없이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항해해야 하는 '열여덟 어른'들의 치열한 생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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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라는 이름의 등대, 그 부재의 시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부모는 단순한 양육자가 아니다. 그들은 세상이라는 바다를 비추는 '등대'다.


공과금 내는 법,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법, 윗사람 대하는 예절, 심지어 부동산 계약서 보는 법까지. 남들은 밥상머리에서, 부모님의 등 너머로 자연스럽게 배우는 이 사소한 '삶의 기술'들을 보호 종료 아동들은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남들이 1년이면 배울 사회생활을, 이들은 10년이 걸려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운다. 사기당하고, 무시당하고, 실수하며 깨지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은 묻는다.


"왜 아무도 나에게 이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물론 '자립생활관'이나 '체험홈'처럼 끼리끼리 모여 살 수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곳은 잠시 머무는 정거장일 뿐이다. 결국 문을 열고 나가면 냉혹한 정글이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힘들 때 돌아가 쉴 항구가 있다면, 이들에게는 돌아볼 뒤가 없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주마 같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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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 뒤의 그림자


우리는 흔히 부모 없이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칭송한다.

하지만 그 찬사 이면에는 지독한 편견이 숨어 있다.


'부모 없으면 비뚤어질 텐데 용하네', '가정 교육 못 받았을 텐데 의외네'.


세상의 시선은 딱 두 가지다. '불쌍한 아이' 아니면 '독한 아이'.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색안경이다. 사람들은 동정은 쉽게 하지만, 이해는 하려 들지 않는다. 부모 없는 것이 죄가 아닌데, 마치 원죄를 가진 죄인처럼 아이들을 바라본다.


"너는 부모도 없는데 왜 그렇게 밝아?"


칭찬이라 던진 이 말이 아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그 밝음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편견에 지지 않으려, 무시당하지 않으려 밤새 울면서 깎아낸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실제로 부모 있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성실하게, 훨씬 더 치열하게 하루를 쪼개 사는 자립 청년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안다. 자신이 멈추면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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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신의학과 약을 끊고: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다


많은 보호 종료 아동들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는다.

'고아'라는 낙인, 텅 빈 방에서의 고립감,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그들을 짓누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세상이 씌운 프레임에 갇혀 아파해야만 할까?


이 글을 읽고 있을, 혹은 같은 길을 걷고 있을 후배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세상의 동정을 거부해라.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주눅 들어 자신감을 잃지 마라.


부모가 없다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일찍 '독립'했다는 뜻일 뿐이다.

이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너다.

조연도, 엑스트라도 아닌, 네가 직접 대본을 쓰고 연기하는 주연 배우다.

환경을 탓하며 방구석에서 울기엔, 너의 젊음이 너무나 아깝다. 굳이 그런 시선들 때문에 정신병을 달고 살지 마라. 더 강해져야 한다.


부모가 주는 그늘은 없지만, 대신 너에게는 그 누구보다 강인한 '야생의 근육'이 생겼다.

그것은 돈 주고도 못 사는 너만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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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정한 자립: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용기


물론 혼자 모든 걸 감당하라는 말은 아니다.

진정한 강함은 힘들 때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에서 나온다.


요즘은 멘토링 프로그램도 많고, 선배 자립 청년들의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어 있다. 모르면 물어봐라. 기대라. 그리고 배워라.

세상에는 너를 이용하려는 나쁜 어른도 있지만, 기꺼이 너의 등대가 되어주고 싶어 하는 좋은 어른들도 분명히 있다.

중요한 건, 네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움츠러들지 말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라.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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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뚫고 나온 꽃이 가장 향기롭다


온실 속의 화초는 예쁘지만, 비바람을 맞고 자란 들꽃은 강인하고 향기가 짙다.

보호 종료라는 겨울, 홀로서기라는 한파.

지금은 살이 에는 듯 춥고 아프겠지만,

이 시간을 버텨낸 너는 그 누구보다 단단한 뿌리를 가진 나무로 성장할 것이다.


부모가 없다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 세상,

색안경 대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응원해 주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먼저 겨울을 건너온 선배들이 길을 닦고 있다.

그러니 기죽지 마라.

너는 이미 충분히 훌륭하게, 잘 살아내고 있다.

너는 세상에서 지지 않고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승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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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히 너희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부모도 없는데 참 바르게 컸네."


저 유다람 작가도 19세 보호 종료를 몸소 경험하며, 여러분들에게 감히 이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이 말을 칭찬으로 듣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밤을 스스로를 검열하며 보냈을까요.

사람들의 색안경이 무서워 숨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당신의 결핍은 당신의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결핍이 당신을 남들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의 동정 어린 시선 따위에 자신감을 잃지 마세요.

당신은 당신 인생의 유일한 주인공입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보다 더 치열하게, 더 뜨겁게 살아온 당신의 오늘에 경의를 표합니다.


주눅 들지 마세요. 부모가 없어서 난 이렇게 산다 라는 프레임도 나 자신에게 절대 씌우지 마세요.

저도 이렇게 강인한 야생화처럼 일어서고, 다시 피어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모가 있어도, 없어도 결국에 하루의 행복은 내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겁니다.

더 강해지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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