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cha Bazi) 발목의 방울 소리는 비명이었다
21세기, 남자들만의 은밀한 파티
아프가니스탄의 깊은 밤. 흙으로 지어진 담장 너머, 부유한 저택의 안마당에서는 은밀한 파티가 열린다.
터번을 두른 남자들이 둘러앉아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그 중앙에는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춤을 춘다.
아니, 자세히 보면 여자가 아니다.
치마 아래로 보이는 다리는 아직 근육이 여물지 않은 어린아이의 것이고, 짙은 눈화장 뒤에 숨겨진 눈동자는 공포에 질려 있다. 발목에 달린 방울이 '찰랑'거릴 때마다, 남자들의 환호성은 높아진다.
그는 10대 초반, 빠르면 고작 7~8살의 소년이다.
여장을 하고, 남자들 앞에서 춤을 추고, 밤이 깊어지면 그들의 침실로 끌려가야 하는 아이.
아프가니스탄의 악습, '바차 바지(Bacha Bazi)'의 희생양이다.
오늘의 비망록은 전쟁과 가난, 그리고 뒤틀린 남성성이 만들어낸 지옥에서 춤추며 죽어가는 소년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은 문화가 아니다. 이것은 인류가 묵인하고 있는 가장 잔혹한 아동 학대다.
페르시아어로 '바차(Bacha)'는 소년, '바지(Bazi)'는 놀이를 뜻한다.
합쳐서 '소년 놀이'. 이름부터가 기만적이다. 이것은 놀이가 아니라 명백한 강간이며 인신매매다.
아프가니스탄의 군벌, 경찰 서장, 부유한 상인 등 권력자들은 자신의 부와 힘을 과시하기 위해 어린 소년을 소유한다. 소년들은 '바차(Bacha)'라고 불리며, 주인에게 여성적인 춤과 노래를 제공하고 성적인 봉사를 강요당한다.
이 소년들은 어디서 왔는가?
대부분 가난한 거리의 고아들이거나, 빚을 갚지 못한 부모에 의해 팔려 온 아이들이다. 납치도 비일비재하다. 한번 '바차'가 된 소년은 철저히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된다. 그들은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의 말투를 훈련받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말살당한 채 '제3의 성'으로 사육된다.
우리는 묻게 된다. "도대체 왜? 이슬람 국가는 동성애를 엄격히 금지하지 않는가?"
여기에 바차 바지의 가장 모순적이고 끔찍한 진실이 숨어 있다.
① 극단적인 남녀유별 (Purda)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여성은 철저히 가려진 존재다. 남성들이 모이는 사교 모임에 여성이 동석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유흥과 쾌락을 원하지만 여성에게 접근할 수 없는 남성들은, 그 대체재로 '수염이 나지 않은 미소년(Beardless boy)'을 택했다.
② 뒤틀린 권력의 과시
이들에게 바차 바지는 동성애가 아니다. 그들에게 동성애란 '대등한 성인 남성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반면, 소년을 거느리는 것은 여성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여자는 아이를 낳기 위한 존재고, 소년은 쾌락을 위한 존재다
(Women are for children, boys are for pleasure)."
이 끔찍한 속담이 아프가니스탄 일부 남성들의 무의식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즉, 바차 바지는 극단적인 여성 혐오가 소년에게로 전이된 형태다.
③ 수염이 나면 버려진다
이 착취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소년이 자라 2차 성징이 오고 수염이 나기 시작하면, 그는 더 이상 '여자 대용'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주인은 가차 없이 그를 버린다. 사회로 내던져진 청년은 갈 곳이 없다.
어릴 때부터 겪은 성적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 그리고 '바차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그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결국 많은 피해자들이 다시 어린 소년을 납치해 바차 바지의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다.
이토록 끔찍한 일이 어떻게 수십, 수백 년간 지속될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가해자가 곧 법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 동안, 미국과 서방 세계는 탈레반과 싸우기 위해 지역 군벌들과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 지역 군벌들이 바로 바차 바지의 핵심 수요층이었다.
미군과 국제 사회는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 전략적 동맹 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소년들의 인권은 '안보'라는 대의명분 아래 철저히 무시되었다.
경찰 서장이 자신의 관사에서 소년들을 데리고 파티를 벌이는데, 누가 누구를 신고하겠는가? 부모가 신고하러 가면 오히려 협박을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무법천지. 그 속에서 아이들은 철저히 고립되었다.
2021년, 탈레반이 다시 집권했다. 탈레반은 율법(샤리아)에 따라 바차 바지를 엄격히 금지하고,
적발 시 사형에 처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렇다면 이제 아이들은 안전해졌을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표면적으로 화려한 파티는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음성적인 착취는 더욱 교묘해졌다.
① 경제 붕괴의 여파
탈레반 집권 후 아프가니스탄 경제는 파탄 났다.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가족들은 딸뿐만 아니라 아들까지 헐값에 팔아넘기고 있다. 수요자들에게는 더 싸고 쉽게 아이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② 권력층의 위선
탈레반 지휘관들 중 일부 역시 바차 바지 관습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는다. "금지한다"는 구호는 대외 선전용일 뿐, 폐쇄적인 그들의 병영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감시의 눈길이 사라진 밀실에서 폭력은 더 잔혹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바차 바지 피해자들의 증언은 처참하다.
그들은 육체적 강간뿐만 아니라, 정신적 거세를 당한다.
"주인은 나에게 여자 옷을 입히고 화장을 시켰어요. 처음에는 울었지만, 나중에는 맞지 않으려고 웃어야 했어요.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었어요."
그들은 해리성 장애를 겪는다. 춤을 추는 순간,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 천장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수치심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시기에 가장 믿었던 어른(때로는 가족)에게 배신당하고 유린당한 기억. 이것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영혼의 문신이 된다.
우리는 이 참혹한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탈레반이 통치하는 그 먼 나라의 악습을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관심은 가장 큰 죄악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니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① '문화'가 아닌 '범죄'로 명명하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용어의 재정립이다. 서구 언론이나 일부 매체에서 이를 '아프간의 전통'이나 '문화'로 묘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문화 상대주의로 존중받을 대상이 아니다. 명백한 '아동 성 노예 범죄'라고 정확하게 부르고 비판해야 한다.
② 국제적 압박과 감시
국제 사회와 인권 단체는 탈레반 정권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여성 인권뿐만 아니라 '아동 성 착취 근절'을 필수 의제로 올려야 한다. 인도적 지원이 군벌들의 유흥비로 쓰이지 않도록 감시 체계를 요구해야 한다.
③ 난민 소년들에 대한 관심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난민들 중에는 바차 바지 피해 소년들이 섞여 있다. 그들은 수치심 때문에 피해 사실을 숨긴다. 난민 수용국들은 이 소년들을 위한 전문적인 트라우마 심리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그들이 다시 '평범한 남자'로,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발목의 방울을 끊어내는 날까지
소년의 발목에 채워진 방울.
그것이 딸랑일 때마다 소년의 존엄은 부서지고, 영혼은 조각난다.
그 소리는 흥겨운 춤 가락이 아니라, 살려달라고 외치는 처절한 비명이다.
우리가 사는 2026년.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우주여행을 논하는 이 최첨단의 시대에,
지구 한편에서는 여전히 어린 소년들이 여장을 하고 짐승 같은 어른들 앞에서 춤을 춘다.
이 모순을 견딜 수 있는가.
이 비극을 몰랐다면 이제라도 알아야 하고, 알았다면 분노해야 한다.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그 어둠 속에서 홀로 울고 있을 '바차'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마지막 선언이어야 한다.
나는 펜을 들어 그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는 더러운 노리개감이 아니라, 사랑받아 마땅한 귀한 생명이라고.
언젠가 그 발목의 방울을 끊어내고, 네가 추고 싶은 진짜 춤을 추며 자유롭게 뛰어놀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원고를 정리하는 내내, 환청처럼 귓가에 '찰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맴돌아 며칠 밤을 설쳤습니다.
그 소리는 흥겨운 리듬이 아니라, 살려달라고, 제발 여기서 꺼내 달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찢어지는 비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짙은 눈화장 뒤에 공포를 숨긴 채, 짐승 같은 어른들의 탐욕스러운 눈빛 앞에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춤을 춰야 했을 그 작은 등... 그 여린 어깨가 감당했을 지옥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저는 쓰는 내내 죄인처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문화'라는 단어 뒤에 숨곤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 주세요.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고, 가장 순수한 유년 시절을 짓밟는 행위는 결코 문화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야만이고, 범죄일 뿐입니다.
이 글이 닿는 곳 어디에서든,
지금도 어둠 속에서 떨고 있을 '바차'들을 위해 잠시라도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언젠가 그 아이들의 발목에서 차가운 방울이 끊어지고,
그 발로 춤 대신 흙먼지를 일으키며 힘차게 축구공을 찰 수 있는 평범하고 눈부신 아침이 찾아오기를.
타국의 먼 이야기라고 외면하지 않고, 이 아픈 진실을 함께 마주해 주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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