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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Jun 16. 2018

꼬리 물기 독서

책의 바다로 떠나는 모험

 난 30대에 습관이 하나 있었다. 멋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에 관해 물었다.


 “읽은 책 중 한 권을 꼽는다면 어떤 책인가요?”


 추천받은 책은 사서 읽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책을 읽으며 추천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상상하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그 사람의 행동과 닮은 구절을 만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 사람은 어떤 책을 추천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적절한 상황에서 역시 난 질문을 던지곤 했다. 어떤 사람은 고민 없이 대답했고, 어떤 사람은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 책을 메모해서 반드시 찾아 읽었다.


 독서는 독서를 낳는다.

 추천받은 책을 읽다 보면 내용 중간에 작가가 인상 깊게 읽은 책 이름이 나오거나, 내용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고민한 내용을 다른 사람도 고민했던 사실을 이야기할 때도 있고, 전혀 반대되는 내용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라도 하듯이 사람의 생각은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된다. 이렇게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많은 책을 읽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의 시야(관점, perspective)가 생긴다. 이런 시야가 생긴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소통할 기회도 많이 주어지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서만으로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관점에 따라서 정말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에 비해서 독서 후 경험을 통해서 얻는 배움의 힘은 무척 크다.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이 '이런 것도 있구나.'라면, 독서 후 경험은 '이게 그거였구나!'이다.


 독서 후 직접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은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경험에만 의존하는 지식은 많은 오류를 낳을 수 있다. 한 번의 경험으로 그것이 완전하다고 믿어버리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볼 때에는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 무섭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경험이나 독서는 단 한 번의 경우로 단정 지을 수 없다. 한 가지의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을 해야 하는 것처럼 독서나 경험도 많이 할수록 많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추천받는 걸 중단하는 계기가 있었다. 말을 재미있게 하면서도 그 속에 심오함을 담으려는 인상을 주던 사람에게 인생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추천했다. 친절하게 출판사까지 알려줬다. 메모를 했고 도서관에서 해당 책을 찾았다. 나이가 나보다 약 스무 살 정도 많은 사람답게 책에서도 세월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책을 펼친 순간 정말 당황했다. 가독성 떨어지는 폰트와 많은 양의 한문. 무엇보다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열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책을 덮었다. 나의 독서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계기였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샤르트르의 소설 <구토>를 읽으면서 '존재와 무'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추천받은 책이 당장 이해할 수 없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간혹 반대로 나에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책을 얼마 읽지 않았을 땐 대답하는 책이 자주 바뀌었다. 세상에는 정말 좋은 책이 많기 때문에 언제 또 바뀔지는 모른다. 현재(2018년)는 십 년간 변하지 않고 대답하고 있다.


 "몽테뉴의 <수상록>입니다. 민성사에서 출판된 책인데 지금은 절판되었어요. 방곤 선생님이 번역한 책입니다."


 나도 친절하게 출판사와 번역자까지 말한다. 책에 감동을 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려고 온라인 중고시장을 다 뒤져서 보이는 수상록을 모두 구매한 적도 있다. 신기한 건 그래도 추천하면 어디서 구했는지 잘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추천한 책을 즐겁게 읽었다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생겨난다.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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