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심리학] 영화<케빈에 대하여>와 스트로크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관객에게 잔인하고도 슬픈 질문을 던집니다.
'케빈은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었을까, 아니면 사랑받지 못해 괴물이 된 걸까.'
감독은 끝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은 채, 관객의 마음에 한 아이의 차가운 눈빛을 깊게 새겨놓습니다.
케빈은 어머니 이바의 품에서만 쉼 없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버지가 안으면 잠잠해졌지만, 엄마만 오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죠. 자라면서 그는 애정을 구걸하는 대신, 조롱하듯, 혹은 무심한 듯 엄마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여동생의 애완동물을 해치고,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냉정함이 스칩니다. 공감도, 죄책감도 없는 아이. 이 단편적인 장면들만 본다면, 우리는 케빈을 태생적인 사이코패스라고 단정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선을 달리해 볼까요.
케빈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에게 환영받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감지합니다. 이바는 자유를 포기하고 엄마 역할을 수행하는 기쁨과, 원치 않는 삶에 갇힌 거부감 사이에서 늘 흔들렸고, 그 미세한 감정의 틈은 케빈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지 모릅니다. 토마토 축제의 회상 속, 아이 없는 자유를 그리워하던 엄마의 얼굴에서, 케빈의 내면에는 아픈 메시지가 새겨집니다.
'나는 엄마의 자유를 방해하는, 원치 않는 존재다.'
심리학자 에릭 번은 인간은 누구나 '스트로크', 즉 타인에게 인정받는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당연히 '사랑해', '좋아', '고마워' 같은 긍정적 스트로크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 긍정적 스트로크가 차단된다면?
인간은 차라리 '미워', '비난받아 마땅해', '너 때문에 힘들다' 같은 부정적 스트로크라도 얻으려 합니다. 아무런 반응도 없는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주는 '악플'이라도 낫다고 느끼는 것처럼요.
케빈의 행동은 바로 이 부정적 스트로크의 추구로 보여집니다.
그는 엄마의 사랑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엄마의 분노, 두려움, 죄책감을 끈질기게 끌어냅니다. 그 행동을 통해 '나는 당신 세계에서 지울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다'라는 아픈 메시지를 새기려 한 것은 아닐까요. 사랑이 아니라도,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것만은 견딜 수 없었던 한 아이의 처절한 외침이었을지 모릅니다.
케빈은 학교에서 대참사를 벌이고, 결국 수감됩니다. 마지막 장면, 감옥에 갇힌 케빈을 찾아온 엄마 이바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구나.”
“그렇게 보였던 적이 있었어?”
캐빈은 오롯한 사이코패스라면 결코 던지지 않았을 것 같은, 자신의 불행한 존재 자체를 되묻는 듯한 질문을 무심히 던집니다. 그리고 면회 시간이 끝날 무렵 케빈은 엄마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초조해 보이는 순간적인 흔들림을 보입니다. 어쩌면 그 짧은 찰나, 그는 '당신의 관심 속에 존재하고 싶었던 아이'의 마지막 미련을 드러냈을지도 모릅니다. 이바는 아들 케빈을 품에 안아줍니다.
케빈은 본래 괴물이었을까요, 아니면 무관심과 결핍이 그를 괴물로 만들어 간 걸까요.
영화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사랑받지 못한 아이의 고독을 외면하고 싶은,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서 완성됩니다.

* 의미는?
-심리학자 에릭 번(Eric Berne)이 창시한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에서 제시한 핵심 개념입니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며, 이는 시선, 칭찬, 신체적 접촉, 언어적 비난 등 모든 종류의 인정을 포함합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스트로크를 필수적으로 갈망한다고 봅니다.
* 스트로크의 종류와 심리적 기능은?
-긍정적 스트로크: 사랑, 칭찬, 지지, 포옹 등 애정을 담은 인정을 의미하며 건강한 성장에 필수적입니다.
- 부정적 스트로크는 미움, 비난, 적대감, 꾸짖음 등 고통을 유발하는 인정으로 긍정적 스트로크가 없을 때 대체재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무관심(No-Stroke)을 가장 견디기 힘든 상태로 여깁니다. 따라서 긍정적 스트로크를 얻지 못하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차라리 부정적 스트로크라도 얻으려 합니다.
*부정적 스트로크는 일상에서 이렇게 드러나요.
- 아동/청소년: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제 행동(반항, 거짓말 등)을 하여 부정적인 방식
(야단맞음)으로라도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우
- 온라인에서: 열심히 작성한 글에 아무 반응이 없는 것보다, 차라리 악플이라도 달리는 것이 존재감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
*건강한 관계를 위한 활용 방법은?
- 긍정적 스트로크의 의식적으로 사용하세요. 가까운 관계일수록 긍정적인 인정(칭찬, 격려)을 아끼지 않고
명시적으로 표현해 주세요.
-부정적 스트로크를 대체해 주세요. 부정적인 관심(비난)을 끌어내기보다, 취미나 자기 계발을 통해
스스로에게 긍정적 스트로크를 주는 연습을 하세요. 필요할 때 솔직하게 "나는 당신의 관심이 필요해요"
라고 직접적으로 요청하여, 왜곡된 부정적 스트로크를 피하세요.
-상대방이 문제 행동으로 관심을 끌려고 할 때, 감정적인 비난(부정적 스트로크) 대신, 바람직한 행동에 대해서 긍정적 스트로크를 제공하도록 노력합니다.
-우리에게는 '무조건적인' 인정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행동이나 성과와 관계없이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무조건적인 스트로크를 확보하는 관계(친구, 가족, 상담 등)를 유지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