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심리학]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과 내면가족체계
드라마 속 유미의 머릿속에는 늘 분주한 회의가 열립니다. 이성세포가 진지한 얼굴로 냉정한 자료를 내밀 때, 감성세포는 두 손을 불끈 쥔 채 ‘그래도 마음이 먼저야’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낼지 말지 고민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랑세포는 두근거리며 앞으로 튀어나오고, 자존심 세포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젓습니다. 불안세포는 이미 최악의 장면을 상상하며 구석에 숨어 있고요.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며 웃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니까요.
우리는 흔히 나라는 존재를 단단하고 고정된 하나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사실 우리 안에는 상황마다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이는 각기 다른 존재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며칠을 앓아눕는 '가녀린 아이'가 불쑥 튀어나오고, 또 어떤 날은 누구보다 냉철하게 일을 처리하는 '완벽주의자'가 주도권을 잡습니다. 유미가 연애를 시작할 때 사랑 세포가 프라이머리 세포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어떤 세포가 본부의 의자에 앉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곤 합니다.
심리학자 리처드 슈워츠는 이를 내면가족체계(Internal Family Systems, IFS)라는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단일한 인격이 아니라, 저마다의 역할을 지닌 여러 개의 부분(Parts)들로 이루어진 가족과 같다는 이론입니다. 마음 안의 각 부분들은 결코 우리를 괴롭히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 방식이 때로는 서툴고 극단적일지라도,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 세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유미를 지키려 하고, 자존심 세포는 유미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방어막을 칩니다. 그들이 가끔 소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비난받아야 할 결함이 아니라,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마음의 신호인 셈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진짜 나다움은 특정 세포 하나를 골라내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소란스러운 세포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들어주고, ‘네가 나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그 모든 소란의 중심에서 중심을 잡는 참자아(Self)를 회복하는 과정이 곧 나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내 안의 불편한 세포들을 외면하기보다는,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인정해 줄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유미의 세포들은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삐치고, 때로는 엉뚱한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유미는 그 세포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사랑세포가 너무 앞서 나가면 상처받을 수 있지만, 그 세포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불안세포가 괜히 호들갑을 떨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위험을 피하기도 합니다. 유미의 성장은 세포를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그들과 조금씩 협력하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 본부에서는 어떤 세포가 마이크를 잡고 있나요? 유난히 큰 목소리로 앞에 나선 마음도,
조용히 구석에 웅크린 마음도 모두 당신을 지키려 애써온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소란스러움은 당신이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소란을 혼란으로 두지 않고 하나의 화음으로 들을 수 있는 자리, 그 고요한 중심에는 어느 한쪽도 밀어내지 않고 온전히 품어내는 '진짜 당신'이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마음들이 당신을 지켰듯, 이제는 당신이 그 마음들의 손을 잡아줄 차례입니다.
*의미는 ?
-리처드 슈워츠가 제안한 심리치료 이론으로, 마음을 다중적인 인격체들의 집합으로 보고, 각 부분을 가족 구성원처럼 대하며 조화를 찾는 심리치료 모델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여러 ‘부분(parts)’과 이를 통합하는 ‘참자아(Self)’로 이해합니다.
- 각 '부분'은 나를 보호하거나 생존시키기 위한 긍정적 의도를 지니고 있으며 심리적 문제는 각 부분의 존재가 아니라, 부분을 극단적으로 지배하거나 억압될 때 발생합니다.
-'참자아'는 판단하지 않고 공감하며 각 부분을 조율하는 중심 자아입니다.
*일상에서 여러 '부분'이 충돌할 때 이렇게 드러나기도 해요.
-시험을 앞두고 '포기하자'라는 마음과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 동시에 드는 상황
-연애에서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는 순간
*건강한 방향성은?
-어떤 특정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에 압도되지 않고 이름을 붙여봅니다.
-예를 들어 화가 난 순간 '나는 원래 다혈질이야'라고 단정 짓는 대신, 화심이(내 안의 화난 부분 이름 예시) 가 지금 목소리를 내고 있구나'라고 분리해서 생각해 보세요.
-어떤 특정한 부분(마음)을 없애려 하기보다, '이 마음은 나를 무엇으로부터 지키려 할까?'라고 호기심을 갖고 묻는 태도에서 통합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