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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Feb 11. 2020

That quote's from Scorsese.

봉준호의 수상소감을 통해 영상 콘텐츠 산업의 재편에 대해 생각하다.

“And the Oscar goes to... PARASITE.” 


시상식이 열리기 전, 대본상과 국제영화상까지는 수상이 점쳐졌지만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거머쥔 것은 이변이었다. 2020년 2월 10일 LA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전에 ‘아카데미 시상식은 로컬(자국) 시상식’이라고 꼬집은 봉준호 감독의 말을 반박이라도 하듯 그에게 네 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아카데미가, 할리우드가 변하고 있다.


미국 아카데미는 보수적이다. 화이트 워싱 논란도 끊이지 않고, 젠더 문제에 있어서도 여배우 상을 제외한 감독상이나 작품상 같은 유니섹스한 주요 부분에서도 남성 중심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작품상에 여성 감독 작품으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이 유일하게 후보에 지명되자 논란이 있었다.)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이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아카데미의 많은 회원들이 중년의 백인 남성이기 때문에 인종이나 젠더 문제에 있어 편향적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영화 과학 예술 아카데미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 회원들에게 투표를 받아 수상작이 결정된다. 주로 영화 제작과 관련된 사람들이 회원으로 선정된다.) 


이런 지적은 이전부터 있어왔고, 이런 지적에 있어서 반박이라도 하듯 아카데미는 조금씩 변화해 오고 있었다. 86회에 스티브 매퀸 감독의 <노예 12년>에, 89회에는 베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에, 91회에는 인종 화합을 이야기한 <그린북>에 최우수 작품상을 주며 화이트 워싱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바람 끝에서... 서구 사회에서 인종적으로 가장 소외받는 계층이라는 아시아인이 (실제로 흑인에 대한 차별은 죽일 듯이 뭐라 해도 아시안에 대한 차별은 차별 축에도 끼지 못한다. 아시안은 그냥 존재가 없는 공기 같은 존재.) 아카데미상 최고의 영예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이다. <노예 12년>이나 <문라이트> 같은 작품이 이전에 수상하지 못했더라면 이번에 <기생충>이 이변을 일으키며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작품 자체도 훌륭했지만, 타이밍도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수상이었다. 


내가 한 것은 없어도 한국 사람으로서 뿌듯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이지만, 유독 눈길을 끌고 마음에 와 닿았던 장면이 있었다. 바로 감독상을 탄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 장면. 


영화를 공부하던 어릴 때 항상 제 가슴속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책에서 읽은 것이었지만, 그 말을 하셨던 것이 누구였냐 하면... 
바로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입니다.
(제가) 마티의 영화를 보며 공부했던 사람이라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상을 받을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제 영화를 미국의 관객들이나 사람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해 주었던 우리 쿠엔틴 형님이 계신데, 
쿠엔틴 형님 정말 사랑합니다.

같이 후보에 오른 샘(멘데스)이나 토드(필립스)나 다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멋진 감독들인데
이 트로피를 오스카 측에서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다섯 개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내일 아침까지 축하주를 마시겠습니다.


https://youtu.be/2JNpQo-OHy4

감독상 수상 소감을 말하는 봉준호 감독 ⓒ 연합뉴스


이 수상소감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누군가. 상 복이 없어 (이번 2020년까지 포함) 아카데미에 아홉 번이나 후보로 선정되었음에도 단 한 번 밖에, 그것도 그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홍콩 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작인 <디파티드>로 딱 한 번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라이언 드 팔마와 같이 20세기 후반 할리우드를 이끈 거장이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필름 파운데이션(Film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재단을 설립해 오랜 영화 필름들을 복원하는 데도 힘쓰고 있는, 현대 영화 산업에서는 대부(代父)와도 같은 인물이다. 한 줄로 설명하자면, ‘할리우드 자본을 토대로 상업영화를 만들고는 있지만 자신의 작가주의적 색채가 짙은 감독’이라 할까? 그런 그를 꺾고 상을 탄 동양에서 온 젊은 감독이 수상소감에서 그의 영화를 보며 자라,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영화를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같이 후보에 오른 그 어떤 감독들보다도 할리우드 그 자체인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말이다. 


물론 봉준호 감독이 스코세이지에게 경의를 표한 것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발언은 멀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감독이 미국 아카데미와 할리우드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발언이었다. ‘<기생충>이라는 대단한 작품을 만든 감독 또한 할리우드 키즈였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물론 영화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시류만 잘 탄 것이라는 비판은 제기되지 않지만...) 화이트 워싱이나 로컬 시상식이라는 논란을 피하고자 <기생충>을 선택했다 할지라도 아카데미는 제대로 된 작품을 뽑았다고 위안할 수 있게,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경쟁에서 패배한 게 아니라는 정신승리를 도모할 수 있게 해 준 셈이다. 아카데미로 대변되는 할리우드가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주체 또한 외부 세력이 아닌, 할리우드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의 역설, 그리고 영상 콘텐츠 산업의 재편.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Over the top) 서비스가 급격히 확산됨에 따라 영화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 산업이 맞이한 변화는 급격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지 않는다. 퇴근 후 씻고 저녁거리를 가지고 TV 앞으로 모인다. 극장과는 달리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음식을 먹으며, 때로는 누워서 콘텐츠를 시청하고, 원하는 때엔 언제든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재생을 멈추기도 한다. 그들은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볼 값으로 한 달간 서비스되고 있는 영화를 무제한으로 시청할 수 있는 OTT 서비스의 월정액권을 결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극장으로 가기보다는 OTT를 이용해 콘텐츠를 즐기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할리우드도 예외는 아니다.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에서 예우를 다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또한 이 변화의 한 복판에 서있는 사람이다. <기생충>의 라이벌이었던 스코세이지의 신작 <아이리시맨>은 제작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가 넷플릭스가 투자를 결정하면서 만들어진 작품이고. 또 이 작품이 공개될 시기에 있었던 강연에서 코믹스 원작의 영화인 마블 영화에 대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영화(Cinema)가 아니라 테마파크이다.”라고 발언해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워낙 Movie, Film, Cinema 세 단어를 혼용해 쓰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셋 다 ‘영화’라는 한 단어로 해석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게 벌어진 논쟁이기도 하지만, 스코세이지가 비판한 것은 MCU로 대표되는 빅 스튜디오의 프랜차이즈 영화(오락 영화로서의 Movie) 제작 획일화에 대한 이야기다. 빅 스튜디오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성공 공식에 짜 맞춘 획일화된 스토리텔링이 Cinema로 대표되는 영화 산업 전체에 미칠 해악에 대해 얘기한 것이다. NYT 인터뷰 원문 : https://nyti.ms/2WMrThZ 번역 : https://gall.dcinside.com/m/nouvellevague/453428 )


스코세이지가 얘기한 대로, 극장 스크린에 걸기 위해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빅 스튜디오의 영화는 획일화를 불러오면서 영화 산업 전체에서 예술적 서사나 실험적인 시도를 가로막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아카데미를 비롯한 많은 영화인들이 그토록 경계하며 ‘전통적인 영화 산업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OTT’는 역설적이게도 전통적인 영화 산업의 대표인 스튜디오들이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다양한 시도와 예술적 서사를 지켜주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은 그 어떤 영화 보다도 Cinema 스러운 작품이고...) 앞으로 어떻게 그 역할이 바뀔지, 대결구도가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현재 OTT가 예술적 가치를 가진 영화(Film)이나 서사나 감정을 가진 영화(Cinema)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과연 OTT에만 길들여진 소비층이 전통적인 서사를 가진 콘텐츠, 소위 말하는 시네마를 소비해줄까 하는 물음에는 솔직히 의문이 든다. 미래의 콘텐츠 소비층인 10대들의 난독증은 점점 증가하고,  콘텐츠의 스토리나 맥락을 이해하는 이해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스코세이지가 얘기하는 영화(Cinema)의 가치보다는 그가 비판한 마블 영화처럼, 팝콘 무비를 즐기고, 캐릭터와 한 장면의 강렬함에만 매료될 뿐이다. 더구나 전통적인 영화의 내러티브와 같은 긴 글과 긴 영상, 긴 콘텐츠를 견디지 못하는 소비층이 모든 콘텐츠의 주요 소비층이 될 것이라는 것은 지금도 보이는 가까운 미래다. OTT에서 제 아무리 다양한 콘텐츠 확보를 위해 투자를 하고 있다 해도, 그들 또한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이익을 좇는 기업체이니 만큼 앞으로 보이는 소비층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사업이고, 산업이니... 계속해서 생명력을 가지려면 대중의 기호에 맞게 그 형태를 변화해 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전통적인 할리우드 영화 제작 스튜디오가 지금의 공장형 방식을 고수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아카데미로 대변되는 할리우드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 영상 콘텐츠 산업의 미래와 싸우기 위해 그들이 타협할 수 있는 기존 외부세력과 손을 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기생충>에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주면서 기존의 제3 세계 제작자와의 협업을 도모하고, 그들이 가치 있다 믿는 작품으로서의 영화(Cinema)가 가지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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