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Nov 18. 2021

예순다섯 엄마와 서른아홉 딸의 꿈

삶과 행복에 관한 엄마와의 대화

 엄마는 꿈이 많았었다. 가게일을 하면서도 사진을 배우고, 그림을 배우고,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책도 많이 읽었다. 엄마가 밖에 다니며 집 비우는 것을 아빠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활동을 통해 나름 자신을 지키며 살아왔다. 이제 예순다섯이 된 엄마는 어떤 꿈을 갖고 있을까?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엄마가 지나온 삶과 원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처음으로 엄마와 긴 통화를 했다. 안경을 쓰고, 나이가 들었지만 엄마의 얼굴은 좋아 보였다.


#1. 꿀 한 병에 시집간 엄마의 젊은 날


나: 엄마, 엄마는 결혼하기 전에는 어떻게 살고 싶었어?


엄마: 결혼하기 전에는 이모 아는 의상실 같은 데 다녔었지. 그런데 수입이 제대로 되길 하니. 그래서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서 잘 사는 게 꿈이었지. 또 그때 너희 외할아버지도 빨리 시집가라고 얼마나 난리를 치던지. 그러다 아빠를 만났지.


나: 뭐? 엄마는 그냥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이나 하고 싶었다고? (당황스러운 대답에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ㅋㅋㅋㅋㅋㅋㅋ)


엄마: 그래. 동네 아줌마하고 지금 형님이 나랑 너희 아빠랑 서로 소개해준 거야. 만났는데 내 스타일이 아니데? 그래서 더 안 만났지.


나: 그래, 그 얘기는 많이 들었지.


엄마: 그런데 소개팅하고 1년 뒤에 영월 목욕탕에 갔다 오다가 시내버스를 탔는데, 한 정거장 뒤에 네 아빠가 그 시내버스를 타는 거야. 아직 서울 안 갔냐 물어보더라고. 안 갔다고 그랬더니 저녁때 꿀 한 병들고 우리 집에 놀러 왔어. 그랬더니 너희  할아버지가 이때다 싶었는지 시집가라고 얼마나 난리던지.


나: 엄마는 우리한테도 시집가라고 그렇게 성화더니. 할아버지한테 배운 거를 우리한테 고대로 했네? 할아버지가 어느 시대 사람인데 진짜.


엄마: 그래. 내가 너네 외할아버지한테 배운 거야 그게. 암튼 그래서 꿀 한 병에 넘어간 거지.


나: 못 말린다 정말.


엄마: 그리고 서울에 집도 사준다는 얘기도 있고, 아빠가 능력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혼을 했지.


나: 아빠가 서울에 간다는 얘기를 한 거야?


엄마: 아니, 주변 사람들이 얘기한 건데, 그걸 믿은 거지. 그러고 배 속에 너를 가졌는데, 아빠가 돈 벌어 와야 한다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간 거야. 아빠가 네 100일 때 돌아왔어. 그 이후에 결혼식도 올리고 그랬던 거야.


나: 와.. 엄마도 처음에 당황했겠다.


엄마: 너 가졌을 때는 그래도 친정에서 편하게 지냈어. 그런데 아빠가 사우디에서 1년 돈 벌어갖고 온 다음에 미구 산골로 들어가는 거야. 서울에 가서 살 줄 알았는데. 너 완전 애기 때 6개월을 미구에서 살았어. 전기도 없고, 수돗물도 안 나오고 너무 어이가 없었어. 개울에서 물 길어다 기저귀 빨고, 내 성격에 얼마나 답답하던지.


나: 엄마가 산속에서 6개월을 버틴 것도 용하다.


엄마: 나는 언제 나가나, 언제 도시로 가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 그랬더니 아빠가 88년도까지 소를 100마리 키운다는 거야.  


나: 그런 것도 하려고 했었구나. 엄마 그렇게 해서 돈 버는 사람들도 많긴 해.


엄마: 그런데 그것도 못 벌었어. 체질이 아닌지 못하고, 할머니가 농사 졌잖아. 거기 가서 농사짓는데, 나도 밥해야 되고, 이래저래 개고생 했지. 그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게를 가지겠냐, 땅을 가지겠냐 물어봤어. 그래서 나는 가게를 갖겠다 그랬지.


나: 엄마 선택 진짜 잘했다. 땅 가졌으면 엄마 농사 지어야 됐네.


엄마: 그래. 그랬으면 진짜 죽었을 수도 있어.


나: 아휴 참.


엄마: 항상 그래서 나가고 싶었지. 바깥세상으로. 그런데 가기는 어딜 가. 너희 아빠 눈도 꼼짝 안 하는데. 여태까지 이렇게 산 거지.

 그래도 내가 너를 낳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 세상에 이렇게 예쁜 애가 어디 있어 도대체. 네 살까지 너랑 한 시간도 떨어지지 않았어. 맨날 어디 가면 예쁘지 예쁘지 그러고. 둘째, 셋째도 다 예뻤지. 게다가 다 순하고. 나는 진짜 애들 키울 때 힘든 줄을 몰랐어. 너무 예쁘고. 그거는 내가 인정을 해. 그래서 내가 애들 보고 살았지. 애들 키우는데 힘든 건 없지만, 목표도 없고, 아빠는 또 얼마나 깔끔하니. 매일 쓸고 닦고, 정리하고. 나는 그렇게 못하겠는데 그걸 맞추려다 죽을 뻔했어.


나: 그런데 엄마는 왜 나가서 살고 싶었어? 나가서 뭐 하려고?


엄마: 내가 이 동네에서 쭉 자랐는데, 여기서 계속 살고 싶었겠니. 서울에서 살고 싶지.


나: 그때 생각하니까 열 받아?


엄마: 응. 열 받네.ㅎㅎㅎ 동창들은 다 도시에 나가 사는데, 나는 시집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으로 왔으니 오죽했겠어. 그런데 애 낳고 키우고, 너네가 학교를 좋은 데 가고 그러니까 나중에는 시골에 살아도 위축되지가 않더라. 이모들도 나를 대단하다 이러고, 친구들도 다 부러워하니까. 거기서 보상을 받는 것 같았어.


나: 엄마도 정말 고생이 많았네.


#2. 이제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엄마: 그때는 또 시어머니가 집에 오면 아빠가 시어머니한테 잘하라고 잔소리하니까 또 스트레스 많이 받았지. 그러다가 나를 찾자 해서 그림도 그렸고.


나: 맞아. 엄마 나 초등학교 때 사진도 배우러 다니고, 나중에 그림도 그리고 그랬지.


엄마: 돈은 가게에서 버니까 돈 버는 건 둘째 치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었어. 돈을 따로 벌겠다는 생각도 못했지. 아빠가 돈을 다 관리하니까.


나: 엄마는 스스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었구나.


엄마: 못했지. 할 수가 없어. 여유가 있어야지. 좀 자유로워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한 거야. 돈 몰래 모아뒀다가 우리 애들 옷 사주고 그런 게 낙이었어.

 뭘 배워야지 결심하고 신문에 문화예술회관 프로그램이 쭉 나와있는 걸 아빠를 보여줬지. 나는 뭘 한 가지 해야겠다 얘기하고. 그랬더니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걸 하나 골라준 거야.  


나: 아빠가 골라줬어?


엄마: 어. 그래야 가게 보는 시간도 정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녔는데, 또 아빠 입이 대빨 나와 갖고 때려치웠지. 그러다가 또 시어머니가 와서 집에서 지내면 내가 스트레스받으니까 아빠가 또 뭘 하라고 받쳐주더라고. 그림을 그때 배운 거야. 그런데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아빠가 밥이 나와 떡이 나와 쌕쌕거리면서 지랄을 또 하는 거지. 집에 있던 그림도 할머니 집으로 다 옮기고.

 그래.. 그랬던 아빠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나: 엄마 진짜 참 힘들었을 텐데, 그 시간들을 잘 지나왔다. 너무 고생 많았네. 하고 싶은 것들도 다 참고.


엄마: 그래. 내가 진짜 옛날에는 시간이 빨리 가기만 바랬어. 빨리 다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런데 요새는 ‘아까운 시간을 잘 보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해.


나: 엄마, 나는 지금도 너무 시간이 아까워. 애들이랑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잖아.


엄마: 그래. 최근엔 운동하는 걸 아빠가 코로나 때문에 원치를 않았었거든. 그래서 내가 아빠한테 얘기했지. ‘내가 사는 목적이 유진네 애들 한국에 올 때까지 건강하게 사는 거다.’ 그러고 운동을 다니고 있어. 여태까지 시간이 아까운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요새는 감사한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조금 약간 천천히 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나: 엄마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거 보니까 잘 살고 있네.


엄마: 어. 잘 살고 있어. 내가 수술을 몇 번 했거든. 그 수술실에 들어가서 마취하고 잠들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맨날 네가 생각나. 신랑도 생각 안 나고, 첫째 딸 네가 생각나.


나: 왜 내 생각을 해.


엄마: 내 배 속에서 네가 처음 나온 거잖아. 진짜 처음으로 경험한 것들이 다 너를 통한 거였어. 네가 진짜 세상에서 첫 번이었어. 그런데 내가 너한테 시집을 가라 그랬잖아. 네가 행복하고 좋으면 내가 진짜 너무 기분이 좋은데, 네가 기분이 좀 그러면 ‘아, 이게 다 내 잘못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 이제는 안 해.


나: 엄마, 자식은 보니까 다른 인격체야. 나도 아이들하고 같이 있을 때는 진짜 소중하고, 사랑하고 이렇게 키우지만 결국에는 독립을 시켜야 되잖아.


엄마: 그래. 독립을 시키니까 너네가 가서 잘 살고, 이제는 다 잠잠하지.


나: 나 결혼하고 몇 년간은 집에 갈 때마다 엄마가 우리한테 뭔가를 기대하고, 남편한테도 뭐라고 하고 그런 게 난 너무 싫었었어.


엄마: 그러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내가 다 만든 거더라고. 남들이 그래도 나를 보고 잘 살고 있다 하는 것도 내가 만든 거고, 주변 식구들이 조금 고통을 겪는 것도 나 때문이고.


나: 엄마, 남들이 고통을 겪는 거는 각자 그 사람의 몫이야. 엄마 탓이라 생각할 필요 없어.


엄마: 그래도 ‘나 때문에, 내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나로 인해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


나: 그건 엄마 생각인데, 그걸로 인해서 엄마가 너무 힘들지 않으면 좋겠다.


#3. 남편을 칭찬하며 달라진 삶


엄마: 그리고 내가 살다 보니까 깨달은 게, 아빠는 착실하게 일한 죄뿐이 없는데, 내가 맨날 지랄을 한 거야.


나: 엄마도 그걸 깨달았구나. 맞아. 아빠도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성실하게 산 거밖에 없어. 약간 자기감정 컨트롤을 못 했을 뿐이지.


엄마: 어.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내가 그 지랄을 했네.


나: 맞아. 엄마는 먼저 아빠를 인정해 줬어야 돼. 아빠가 어쨌든 성실하게 가정을 이끌어 줬으니까. 그거에 대해서 고마워하고. 그러면 아빠도 엄마에 대해 더 마음을 열었을 수도 있겠지.


엄마: 동네에 아빠랑 똑같이 생긴 아저씨가 있거든. 두 남자들이 성향이 똑같아. 그 아저씨도 산골에서 태어나 엄마 모시고 살다가 그 집 아줌마도 죽을 뻔했잖아. 그 아줌마도 남편이랑 맨날 싸웠지. 내가 그 형님한테 '우리 꼴이 참 아니다. 우리는 남편한테 맨날 지랄만 하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이게 참 빙신 같은 짓이다. 우리 일단 남편들 안심을 시키고 우리 하고 싶은걸 하자.' 얘기를 했어.


나: 안심을 시킨다고?ㅎㅎ


엄마: 응. 우리 넷이서 자주 만나. 아저씨 둘 다 술도 안 먹고 이러니까. 그래서 넷이 있을 때 우리가 남편들을 칭찬해주자 같이 단결한 거야. 우리는 뒤에서 계속 욕만 했지, 여태까지 한 번도 칭찬을 안 해줬어.


나: 맞아, 엄마. 그거 진짜 중요해.


엄마: 그래. 칭찬을 해줬더니 그 아저씨도 얼마나 변했고, 너네 아빠도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몰라.  그 형님하고 나하고 ‘이런 세상도 있네.’하며 깨달았잖아.


나: 엄마, 진짜 잘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아마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 일거야. 왜냐하면 부부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는데 성격이 다 똑같을 수 없잖아. 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어. 그런데 단점만 보기 시작하면 진짜 살기 힘들어. 그러니까 장점을 보고, 계속 서로 칭찬해줘야 해. 내가 느낀 건 제일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끼리 서로 믿고 인정해주는 힘이 정말 커. 그게 있으면 사회에 나가서도 그 힘이 발휘가 돼. 집 안에 있을 때 서로 욕하고 불만만 쌓이면 다 힘들어. 나 옛날에 너무 힘들었어. 엄마랑 아빠랑 차만 타면 둘이 계속 싸웠잖아. 너무 스트레스받았었어.


엄마: 그랬어. 그랬는데 이제는 없어졌어. 삐지는 것도 없어졌고. 할머니가 그러잖아. 옛날에 유진이 아버지는 맨날 독이 난 것 같더니 그게 다 없어졌다고. 다 없어졌어. 그리고 내가 ‘아유, 당신 덕분에 내가 이래 살고, 건강하고, 진짜 바랄 것도 없다.’ 그렇게 얘기해. 그리고 이제는 '무조건 건강을 위해서 살자. 우리가 돈을 더 벌겠어, 뭘 하겠어. 다리가 아파서 걷지도 못하고 그러면 안되니까. 애들 올 때까지 운동 열심히 하고 살자.' 그러는 거지.


나: 응, 건강이 최고야.


엄마: 명진이도 안정이 됐고, 너도 이제 글을 쓰고 이렇게 밝아지니 내 마음이 진짜 너무 밝아진 거야. 다들 잘 있고, 애도 잘 키우고. 고맙게 생각해. 혜진이도 아들 셋 얼마나 예쁘게 잘했어. 그리고 혜진이는 힘들기는 하겠지만 힘들다 소리도 안 해.


나: 나는 혜진이가 제일 신기해.


엄마: 그 집은 성질을 안내. 화도 안 내고.


나: 그러니까. 제일 관심을 안 쏟으면 애가 편안하게 크나 봐. 관심을 너무 많이 쏟으면 오히려 나처럼 약간 삐죽삐죽하고. 혜진이는 진짜 편안하잖아. 애가 그냥 봐도 편안하고, 화도 별로 안 내고.


엄마: 내가 걱정이 진짜로 없어. 진짜 고마워.


#4. 건강하고, 건강하자.


나: 엄마 그럼 이제 자식들에게 더 바라는 거 없어?


엄마: 바라는 거 없어. 진짜 각자 잘 살고, 나는 여기서 아빠랑 둘이 잘 살면 되는 거고.


나: 그럼 나는 나중에 유럽에 가서 살고 싶은데, 괜찮아?


엄마: 그럼, 그럼. 살아, 살아.


나: 여기 온 거는 시아 아빠가 오고 싶어서 왔잖아. 이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니까 나는 유럽에 가서 살고 싶어. 내가 젊었을 때도 유럽에 가고 그랬었잖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글도 쓰고, 온라인으로 일할 수 있는 거 하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엄마: 그래, 해. 1년에 한 번씩 보기만 하면 되고.


나: 그래. 이제 내가 돈 벌면 같이 가족들 여행도 가고 그러자.


엄마: 그럼 좋지. 됐어, 일단은 안 아프고 애들이 그냥 웃고 잘 지내면 돼.


나: 나는 지금도 되게 좋아. 지금 이 상태로도 아무것도 안 변해도 애들도 너무 건강하게 잘 크고 있고, 남편도 자기 일 찾아서 잘하고 있고. 그동안은 내가 남편에게 계속 뭔가를 더 바랬던 거야. 더 뭘 했으면 좋겠다고 남편한테 얘기하니까 남편도 스트레스받고, 나도 계속 불만이 쌓였었어. 이거 엄마가 아빠한테 했던 거 내가 그대로 하고 있더라고.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인정해 주고, 내가 하고 싶으면 내가 하면 돼더라고. 남편이 뭐라 하든 말든. 또 시아 아빠는 내가 하고 싶다는 거 심하게 막고 그러지 않으니까.


엄마: 그래, 그래도 그 가운데 건강을 꼭 지켜야 해. 운동 같은 거 한 가지씩 꼭 하고.

  

나: 맞아, 엄마. 나는 오늘도 아침에 운동하고 왔고, 따뜻한 물도 한 잔 마셨어. 아빠랑 엄마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우리도 여기서 건강하게 잘 지낼게.


#5. 예순다섯 엄마의 꿈, 여행과 춤


나: 엄마 만약에 지금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고, 엄마가 돈도 많아. 되게 자유롭다고 상상해봐. 그렇다면 엄마는 뭘 해보고 싶어?


엄마: 일단은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이랑 취미 생활을 하겠지.


나: 취미 생활은 뭐하고 싶어?


엄마: 춤, 요가 이런 거. 몸을 건강하게 해 주는 것을 계속하고 싶어. 조금 주변이 좋다면, 나는 춤을 배우고 싶어.


나: 엄마 생각이 나한테 많이 들어왔나 봐. 나도 돈 벌면 춤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엄마: 자연적으로 내 동작을 하나씩 하면서 정신이 활활 날아가는 생각을 하면 너무 좋아. 나는 원래 무용 같은 것도 잘했어.


나: 맞아. 엄마는 다재다능해.


엄마: 몸매도 때미리 여자가 내 몸매가 최고래.


나: 응?ㅋㅋㅋ 그래. 엄마 나이에 몸 관리 그렇게 한 거면 진짜 잘한 거야.


엄마: 정선 교정하는데 그 원장도 엄마 보고 슈퍼 아줌마가 여기 오는 손님 중에 몸이 제일 좋대.


나: 인정할게 엄마.ㅎㅎ


엄마: 내가 자궁 수술하고 이런 것 때문에 이제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수술을 안 하고 이랬으면 엄마 몸이 더 좋았을 거야.


나: 엄마 자궁 무슨 수술을 했어?


엄마: 자궁에 혹이 났었어. 그 수술을 했더니 자궁이 없으니까, 이제 힘을 많이 쓸 수가 없어. 그래서 힘든 일을 못하는 거지.


나: 힘든 일은 하지 마.


엄마: 몸이 힘들 때는 아빠를 따라가려니까 힘이 들어 헉헉댔었어. 요새는 몸이 내가 봐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 회복도 많이 됐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거는 진짜 음악이 좋은 데서 멋진 춤을 추고 싶어. 나는 그것만 하고 꼴까닥 죽어도 원이 없겠어. 옛날에 필라테스 다닐 때는 선생님이 틀어주는 음악도 좋았고, 아주 거기에 푹 빠져들어 동작을 했었거든. 너무너무 행복한 거야 진짜로.


나: 엄마, 그럼 여행 가고 싶고 그런 거는 없어?


엄마: 여행 가고, 춤추는 게 내 꿈이지.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야. 요새 요가 다니는 것만으로도 좋아. 지금은 아흔 넘은 할머니도 어디 안 가고 참고 있는데 내가 어딜 가겠어.


나: 지금 코로나라서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긴 해.


엄마: 100명한테 물어보면 100명 다 여행 가고 싶어 할 거야. 당연히 나도 다니고 싶지.


나: 엄마는 그리고 확실히 외향형이야. 사람들도 꼭 만나고 다녀야 하는 거지?


엄마: 그래. 혼자 사는 나는 사는 것 같지 않아. 나 혼자 사는 거는 진짜 싫다고. 그리고 내가 얘기하고 이래도 나는 단 둘이서 소곤소곤하는 것도 싫어. 여럿이 있는데서 잘난 척하고 살고 싶어.


나: 와, 엄마는 진짜 나랑 다르다. 아빠랑도 너무 다르고.ㅎㅎ


엄마: 나는 사람도 많고, 누가 알아주고 그런 게 좋아.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이제 뒤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를 배우고, 가만히 있어도 괜찮고 그래.

 

나: 엄마가 60년 넘게 참 많은 것들을 참아 오면서 살았다.


엄마: 그래도 살아갈 수 있던 건 너네 애들 생각해서 그랬지. 이제는 진짜 바랄 것도 없어. 운동이나 하고,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너네하고 한번 어디 여행을 가고. 그 소원을 다 풀었으면 그다음에 깨까닥 해도 되고. 욕심은 없어. 진짜 이 정도만 돼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여기도 다 정리가 잘 돼 있어.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세 명도 시스템이 잘 돼 있어.


 울며, 웃으며 엄마와의 대화가 끝났다. 예전에는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랐다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수술이 있었는데도 모르고 챙겨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그래도 엄마답게, 씩씩하게,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찾으면서 즐겁게 사는 엄마는 여전히 멋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코로나가 끝나고 나도 돈을 벌면, 평생토록 해외여행 못 가본 부모님과 함께 여행 가보고 싶다. 엄마와 함께 춤을 배워보는 상상도 해본다.


(CoverImage by Ryan Moreno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힘든 육아의 순간을 견디게 한 "꿈"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