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허브+진입 장벽+공산당 형님들(?)
러에코(乐视生态). 최근 1~2년 동안 스마트카 양산을 위해 돈을 쏟아부으며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기업입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러에코: 중국어로는 乐视生态라고 불리며 2004년 자웨팅에 의해 설립된 회사. 이 회사는 고객단의 전자제품, 자동차, 영화 등의 비즈니스를 한다. 지주사인 Leshi Holding (Beijing) Co., Ltd로 잘 알려져 있다. — 위키피디아
실시간 방송 영상 사이트인 LeTV(乐视)이 먼저 떠오르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조금 검색해도 러에코는 콘텐츠와 이를 위한 모바일 기기만으로 잘먹고 잘살아온 기업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플래텀이 작년 초 정리한 내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2015년도 실적 발표 내용에 따르면, 2015년 매출액은 130억1,700만 위안(한화 약 2조3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90%가 넘는 성장률을 보였다. 단말기 사업 매출 역시 60억8,900만 위안으로 전년대비 122% 성장했다. 시가 총액은 2016년 2월 기준 1,091억 위안(한화 약 19조6,400억 원)으로 2010년 이후 6년 만에 21배나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창업판 상장사 495개사 중 식품기업 원스를 뒤이어 시가총액 2위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자체 보유 컨텐츠 수도 방대하다. TV 프로그램은 10만 편을, 영화 프로그램은 5천 편을 보유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16편의 영화를 직접 제작했다. — 동영상에서 스마트카까지…BAT를 잇는 샤오미 최대 경쟁자 러에코(플래텀)
러에코의 2016년은 참혹했습니다.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문이 이곳저곳에서 나왔습니다. 러에코 자금난의 핵심 이유로 꼽히는 것은 ‘전기차’였습니다. 그간 전기차를 필두로한 자동차 사업에 약 150억-160억 위안의 거금을 투자해왔는데, 깨진 독에 물붓기였던 것이죠. 아무리 동영상 콘텐츠 영역에서 매년 흑자를 낸다고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11월에는 “샤오미 창업주 레이쥔이 러에코의 자금난을 소문내고 있다”는 내용의 위챗 대화가 러에코의 공식 웨이보 계정에 올라오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죠.
11월초 선전 증시에서 이틀 동안 러에코 주가 8%가 급락하며 한화 약 1조3400억원의 가치가 증발하기에 이릅니다. 자웨팅은 회사 자금난을 공식 인정합니다.
자웨팅 회장은 전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편지를 통해 “회사가 자금난을 겪고 있으며 확장에 초점을 맞추던 전략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 회장은 편지에서 “대기업병에 걸려 개개인의 성과가 저조해졌으며 중복되는 인력구조를 갖고 있다”며 향후 비용을 절감에 나설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주주들에게 사과하며 자신의 연봉을 1위안(약 168원)으로 깎겠다고도 밝혔다. — 전기차 투자 패착였나..中러에코..자금난에 ‘휘청’(이데일리)
이에 자웨팅과 장강상학원을 같이 다녔던 동문 10여명이 6억 달러를 투자하며 긴급 수혈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천운이었던가요. 12월 말 러에코는 익명의 투자자로부터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을 투자받으며 한숨을 돌리기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러에코는 전기차에 대해 계속해서 투자를 멈추지 않습니다. 같은 달 저장성에서 120억 위안(2조782억원)이 투입된 전기차 공장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러에코는 올해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가전 제품 박람회(CES)에서 자사가 2014년 투자한 패러데이 퓨처를 통해 자체 개발한 전기차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호평일색이었습니다. 한 번 충전으로 최대 700km를 주행하며, 무인주행, 무인주차 시스템도 갖췄죠. 심지어 가속력에서는 테슬라보다 빠르단 평가를 받았습니다.
관련 기사: 테슬라 대항마 FF91, 투자기업 중국 러에코 수퍼카 꿈 붕붕(뉴스핌)
하지만 러에코가 전기차를 비롯한 스마트카에 투자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비관적인 정서가 대부분인데요. 동영상 스트리밍하던 업체가 굳이 전기차에 투자하는 것은 뜬금없다는 게 대다수의 생각입니다(특히 국내에서는 더욱 비판이 심하죠).
그렇다면 러에코는 도대체 왜 전기차 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는 걸까요. 3가지 요인을 들 수 있습니다.
10여년 전에 우리는 온라인으로 연결하기 위해 액티브엑스…으아니 ’웹브라우저’를 켰습니다. 인터넷익스플로러를 열면 야후, 프리챌(이거 알면 아재),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로 연결됐습니다. 이러한 연결의 경험은 2010년 스마트폰의 등장 후 웹에서 앱으로 이동했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 카톡, 라인, 위챗과 같은 메신저가 포털의 자리를 대체했죠.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최근 아마존이 공개한 ’아마존 고’라는 무인 쇼핑 프로세스가 꽤나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과거엔 웹브라우저, 스마트폰 메인 화면을 장식하는 앱이 연결의 구심점이었다면,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공간이 그 자리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곧바로 떠오르는 게 집과 자동차일 것입니다.
집의 영역에서는 아마존과 구글이 스마트홈 생태계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고, 샤오미 역시 호시탐탐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테슬라, 러에코 및 BYD 등이 있죠.
러에코가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동영상 콘텐츠, 즉 미디어를 쥐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디어 콘텐츠는 어떤 형태로든 인류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머물러 왔죠. 종이->텔레비전->컴퓨터->스마트폰으로 껍데기만 달라졌을 뿐. 러에코에 ‘자동차’의 존재감은 차세대 콘텐츠가 오가는 중요한 통로 그 이상일 것입니다.
텐센트 산하 인터넷 산업추세 연구 분석 전문 기관인 ‘치어즈쿠(企鹅智酷)’에서는 스마트카, 무인차의 미래를 스마트 콘텐츠 플랫폼(智媒) 관점에서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요약했습니다.
즉, 미래의 자동차는 사람과 자동차, 자동차와 자동차, 자동차와 환경을 아우르는 콘텐츠의 허브가 될 것이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는데요. 러에코가 자동차를 선택한 것은 콘텐츠 기업으로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미래 전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동차 산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며칠 전 중앙일보 차이나랩의 이승환 기자가 페이스북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하며 러에코의 전기차 전략을 호평했죠.
각종 보고서에서도 자동차 제조업에 대해 ‘규모의 경제로 유지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이라고 평가합니다. 공장 설비 투자 측면에서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죠. 그 자체가 진입장벽이라는 방증입니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고 난 뒤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자동차는 이와는 전혀 다른 분야인 셈이죠. 러에코로서는 당장에 테슬라가 1인 독주 체제로 있는 스마트카 사업을 노리는 게 사업 영위의 측면에서 현명한 결정이란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망하면 어쩌려고?
러에코의 스마트카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는 마치 태양열 산업과도 유사하단 느낌이 듭니다. 당장에 돈이 되지 않은 산업 분야에 무모하게 돈을 쏟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중국 정부를 빼놓고 내린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 스마트카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우선, 전기차는 현재 베이징을 중심으로 들끓고 있는 대기 오염 문제의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국 인터넷 매체 제몐(界面)은 11일 2017년 중국 자동차산업(부품 업계 포함)에 영향을 미칠 8대 정책을 소개했다. 이들 정책과 최근 중국언론에 나온 주요 자동차 관련 새 조치들을 합쳐 10대 정책으로 정리한다. 이들 정책은 대부분 친환경으로 요약된다.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는 한켠 신에너지 자동차와 배터리의 질적 성장을 위한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에서 111월 생산된 신에너지자동차는 40만28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44.27% 증가했다. — 새해 중국 자동차 산업 영향 10대 정책(조선비즈)
더 중요한 것은 중국 당국의 스마트카(전기차) 시장 선점 의지입니다.
산업 전환기를 맞아 전기차 시대를 선점하겠다는 중국의 의지는 또렷해졌다. ‘국가독점자본주의’에 가까운 중국 당국의 정책 의지는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다. 2012년 ‘에너지 절약형 및 신에너지 자동차 발전계획(20122020)’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판매량을 내년까지 50만대, 2020년까지 500만대로 늘리기로 했다. 중국은 앞으로 신에너지차 보조금을 내년부터 20% 줄이고, 2019~2020년은 40%로 낮추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 뒤로는 아예 보조금을 없애기로 했다. 이는 500만대로 보급하면 자국 전기차가 자립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달리 말하면 약 4년 안에 중국에서 전기차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 중국 ‘전기차에 꽂힌’ 두 가지 이유(주간경향)
정리하면, 중국은 자국의 친환경 경제 정책과 더불어 신산업 영역인 전기차 산업의 융성을 위해 정책적인 허가 및 지원 의지를 계속해서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러에코가 스마트카 사업을 못한다고 하면 다른 기업을 시켜서라도 이 시장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란 방증입니다.
러에코가 미래의 허브가 될 스마트카에 투자하는 것은 과도한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위의 그래픽에도 나타났듯 자동차는 텔레비전, 스마트폰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결국, 스마트카는 10-20년 뒤 콘텐츠의 허브를 점유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그리고 생존을 위한 선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