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 만난 이탈리아의 봄 풍경
하루아침에 달라진 세상..!!
지난 주말 인천공항에서 은빛 날개를 달고 아드리아해 너머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날아온 아내에게 이탈리아는 가혹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상밖의 일들이 며칠 사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꼬로나비루스 때문이었다. 나의 브런치에 이와 관련된 글을 절대 끼적거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틀 후면 아내가 돌아온 지 두 주가 되는데 요 며칠 동안의 일을 생각하면 수개월이 훌쩍 지난 듯 까마득하다. 남의 일 같았던.. 강 건너 불 같았던 일들이 우리들 곁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틀 전(현지시각), 바닷가로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결국 못 볼 걸 보고야 말았다. 두 남자가 바닷가에서 울타리에 기대어 아침부터 맥주병을 앞에 두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 바닷가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유일한 노숙인들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던 두 개의 천막이 불에 타 주저앉은 것이다. 대개는 시유지에 무단 점유한 시설물은 한 두 차례 경고 후 철거를 하지만, 아예 살림살이 전부를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위 자료사진은 꼬로나비루스와 관계없는 것들로 농부들이 해충방제로 밭이랑 곁의 풀숲을 불태운 모습이다.
자전거는 물론 가재도구 전부가 불에 탔고 상자에 담긴 파스타가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이들의 시설이 비위생적이어서 시 당국이 불을 질러버린 것이라 단정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는 세 개의 현(바를레타-안드리아-뜨라니)이 하나의 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정부가 발표한 꼬로나비루스 현황에 따르면 이곳에 한 명의 확진자가 생겼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마감 뉴스가 들어왔다. 이랬다.
Ultime notizie in diretta sull’emergenza Coronavirus, dall’Italia e dal mondo, nella giornata di oggi giovedì 5 marzo. 3858 casi, 148 morti e 414 guariti, questi gli ultimi numeri sulla diffusione del Covid-19 nel nostro Paese. A Roma morta una donna positiva al primo test. Rinviato il referendum sul taglio dei parlamentari previsto il 29 marzo. Conte annuncia: “7,5 miliardi per sostegno a famiglie e imprese, ora unità Paese”. Scuole e università chiuse fino al 15 marzo. Franco Locatelli (Consiglio superiore Sanità): “Sacrificio che serve. Lo slogan è uniti ma distanti”. Stop anche a tutti gli eventi affollati. Per tutti distanza di sicurezza di un metro. Tutte le partite del campionato di calcio di Serie A si giocheranno a porte chiuse fino ad inizio aprile. Primi contagi in Valle d’Aosta. In Cina superata la quota 3.000 vittime. Stato di emergenza in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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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5일 현재, 꼬로나비루스 확진자 수는 3,858명이며 148명이 죽었다. 특이할만한 일은 로마에서 한 명의 여성이 코로나비루스 때문에 죽은 사실이다. 이탈리아의 현재 표정은 반토막난 관광객 수와 함께 급속히 불어나고 있는 사망자 수 때문에, 14세기 유럽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은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당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은 7500만~2억 명이었다. 패스트 균(Yersinia pestis) 때문이었다.
아침 산책을 마친 아내와 나는 이탈리아 북부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소식으로부터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아직 남부지역으로 크게 확산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아예 당분간 아침운동을 생략하기로 했다. 가능하면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한편, 방콕(?)을 통해 사태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음흉한 뉴스로부터 멀어지는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우리는 조금 전, 저 멀리 바닷가로부터 밭이랑을 따라 작은 언덕까지 진출했다. 그곳에 우리에게 친근한 유채꽃이 널따랗게 피어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이 같은 일은 아내의 오래된 호기심 때문이자 우리의 여행 본능이 함께 작용했다. 미시세계가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는가 하면 거시 세계는 봄의 요정을 쏟아부어 괜히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이다. 이런 때 보리밭이라도 만났다면 횡재한 것이나 다름없겠지..
보리밭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
-노래 문정선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아내는 저만치 앞서가며 상념에 젖은 모습이다. 불과 열흘 전 한국에서 본 풍경과 사뭇 다른 곳에 다다라 봄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가수 문정선 씨가 부른 가곡 '보리밭'은 여러분들이 애창했다. 그중에서도 시원한 창법으로 부른 문정선 씨의 노래를 좋아했다. 그게 어느덧 50년(49년)의 세월이 흘렀으므로 까마득한 시간 저편의 노래가 유채밭으로 소환된 것이다.
노랫말에 고향의 보리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는데 바를레타의 유채밭에서 불현듯 어릴 적 집 근처에 있던 보리밭이 생각난 것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보리밭은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그런가 하면 보리밭에 얽힌 로맨스까지..
보리밭에 얽힌 이런 풍경들 때문에 정작 몸살을 앓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보리밭 주인..!! 저만치서 보리밭 주인의 모습이 보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다시 보리밭 속으로 숨어들었으므로, 보리밭 꼬락서니는 두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는 비옥한 농토에 올리브와 포도 과수원 등으로 야채와 과일이 풍부한 곳이다. 아드리아 해 주변의 토양과 바를레타 근교에서 만난 과수원 풍경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중해 주변 국가들이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숲을 베어낸 이후 더 메마른 반면, 이곳 아드리아해 연안의 농토는 지표로부터 불과 1미터 아래까지 물이 철철 넘치는 곳이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세상 사람들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 내외가 발품을 팔며 기분 좋은 봄 여행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글쎄.. 잠시 행복했던 시간이 불과 열흘만에 휴식기간에 접어든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못 만나게 될 유채꽃밭에서 보리밭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랄까..
그런 잠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봄 풍경을 끼적거리는 동안 자꾸만 자꾸만 북부 지방의 소식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또 글을 쓰는 동안 곁에 있던 아내가 휴대폰을 열어 비루스 소식을 전하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부터 습관 된 비루스 신드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지인은 페이스북에 "챠오 짱~"이라며 안부 삼아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그동안 그의 메시지에 응답을 하지않았었다. 그가 걱정한 건 한국에서 최근에 돌아온 아내였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 당분간 이탈리아인들을 만나지 않을 거야!!)
CANTANDO NEL CAMPO DI COLZA
il 06 Marzo 2020,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