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미혼>4

에피소드 4. 너 말고 니 후배

by 집녀

정호는 그나마 친구니까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분노까지 느낀 적도 있다.

선혜를 더 이상 ‘누군가에게 소개해 줄 대상’이나 ‘결혼 범주에 넣을 대상’으로 전혀 보지 않는 듯한 그런 시선(시선에 그치면 낫다)과 말투.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회사 후배, 지금은 회사를 나간 후배가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친한 후배기에 오랜만에 온 전화가 반가워 선혜는 목소리를 높였다.


“어쩐 일이야? 잘 지내? 왜 이리 연락이 없었어. 요즘 뭐하고 지내는데?

‘아. 네 00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

“어 거기? 완전 좋은 곳이잖아. 잘 됐다. 정말 여기서 개고생 하더니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거야?”

“에이 선배님 회사가 더 낫죠. 근데 뭐 거기서 맨날 야근하고 힘들었던 거 생각하면 여기서는 돈은 별로 못 벌어도 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요 “

“그래 다행이다. 어찌 됐든 잘 적응한다고 하니, 네 마음이 편하면 그걸로 된 거야. 그래 어쩐 일이야? 이렇게 연락을 다 주고?”

“아 너무 연락이 소원했다 싶어서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고...”

“야야 고맙다. 내 안부 물어주는 사람 없는데 눈물 나네.”

“결혼은 하셨어요?”

“아.. 아직... 너는 애들은 잘 크고?”

“돈 먹는 하마죠 뭐... 근데..”

“응? 말해!”

“저 교회 다니잖아요. 교회에서 얼마 전 아는 형을 만났는데요, 최근에 미국에서 들어왔거든요. 집에 돈도 많고 사람도 괜찮아요...”

“어? (오 설마 나와 연결해준다는 뜻인가?) 그래? 좋네 나이가 몇 살인데?”

“35살이요”

“아 그래?(오.. 나랑 나이차도 얼마 안 나네? 물론 많이 난다) 뭐하는데?”

“아 미국서 공부하고 들어와서 아버지 사업 이을 건가 봐요”

“사업?(오 이것은 흔히 말하는 가업승계? 금수저 구만) 집이 잘 사나 봐 부럽다 야.(그래서 나랑 언제 소개해 주겠다는 거지?)”

“네 좀 살죠 그래서 말인데... 선배네 회사에 괜찮은 여자 후배 없어요?”

“어? 후배?(뭐라고 이 새끼. 지금 결혼 못한 나를 두고 다른 여자를 찾으려고 전화했다는 말이야?)”


선혜는 분노가 치밀어 오만상을 찌푸린다. 어차피 전화상이라 보이지도 않으니 표정관리가 안 된다. 아니 안 한다.


“네.. 그 형이 한 20대 중후반 여성분을 찾던데 선배가 생각나서요(내 생각난 게 아니라 내 후배들을 생각한 거잖아 이 개자식아!) 선배는 여자 후배들 많으니까...”


선혜는 얼굴이 벌게지며 화가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그래 나 여자 후배 많다. 그리고 나 결혼하기에 늦은 나이인 것도 안다. 그런데 굳이 많은 사람을 두고 왜 나한테 여자 후배를 소개해달라고 하는 것이냐 말이다. 그럼 소개를 해주는 나이 많은 나는 얼마나 기분이 안 좋을지 생각이 안 든단 말인가? 내 결혼 포기하고 남의 결혼 중신 서주는 뚜쟁이라도 됐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이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35살이면 왜 나랑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남자는 무조건 나이 많은 여자는 아예 제외한다는 것인가? 그래 다 차치하고 지네들이 원하는 상대를 찾는 거야 나쁜 게 아니지. 그런데 왜 굳이 그걸 나한테 물어본단 말인가!


“아. 미안 나 여자 후배들이랑 별로 안 친하잖아(있어도 안 해 줄 거다 이 나쁜 놈아)”

“아 그래도 이 형이 원체 조건이 좋아서 한번 말해 주시면...”

“미안. 난 내가 급해서 남 신경 써 줄 시간이 없네? 아... 누가 찾아서 우리 다음에 통화하자~(다시는 연락하지 마 이 나쁜 놈아)”


선혜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 말고’란 뜻으로 바라보던 그 숱한 시선들.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회사 사람들과 식당을 찾은 선혜. 마침 다른 테이블에 경쟁 회사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경쟁회사이긴 하지만 다 아는 사이고 또 친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서로 인사를 했다. 특히 경쟁회사에 있는 남자 후배와 선혜는 친한 사이라 소소한 안부인사까지 묻다 뒤늦게 회사 사람들 테이블에 앉았다.


“너 진석이(경쟁회사 남자 후배)랑 잘 아는가 봐?”

“아 네. 인사도 잘하고 애가 성격이 참 좋더라고요.”

“얼굴도 잘 생겼지”

“그렇죠. 참 훈훈하죠”

“쟤가 몇 살이지?”

“아 저랑 4살 차인가.. 아마 그럴 거예요. 쟤 동안이라 그렇게 안 보이죠?”

“아 생각 외로 나이는 좀 있네.(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 회사 미진이 소개해줄까?”

“네?(무슨 뜬금없는 미진이야. 그리고 걔는 남자 갈아타기 선수인데) 미진이는 왜 갑자기?”

“아니 둘이 나이차도 얼마 안 나고 어울릴 것 같아서”

“미진이한테도 의견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작심하고) 왜? 저는 안 어울려요?”

“농담하지 말고!”


여기서 선혜는 다시 어퍼컷을 맞았다. 아니 무슨 농담? 내가 농담한 것처럼 보이냐? 아니 문맥에 어디 농담할 공간이 있냐? 진심인데?


“농담 아닌데요? 왜 농담이라고 생각하세요?”

“네가 나이가 몇인데 쟤랑 맞다고 생각해?”


아이고야. 네네. 네네. 네네. 제가 나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굳이 저 남자와 안 될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만에 하나 0.0001%의 가능성이라도 그 남자애가 연상을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인데. 뭐 이런저런 이유를 다 떠나서 선혜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해버리는 그 회사 선배의 말에 선혜는 정말로 기분이 슬프다 못해 우울했다. 항상 이런 식이다.


어느 순간부터 선혜는 결혼 소개 대상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남들을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소개 이야기가 나오면 절대 나는 아닐 것이라는 마음도 먹기 시작했다. 괜히 헛된 기대로 실망하고 화를 내느니 그냥 처음부터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이 마음이 덜 상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선혜는 깨달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차례 어퍼컷을 맞고 나자빠질뻔한 충격을 받고서야 선혜는 바보같이 뒤늦게 깨달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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