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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나 Jul 09. 2017

밤향기

당신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밤향기


이름처럼 당신은 밤에 찾아온다.


밝은 빛이 나를 비출 땐 야속하게도 숨어 있다가

저녁 어스름 내가 도심의 거리로 얼굴을 내밀면

은밀하고 은근하게 다가온다.


생각할수록 앙큼하기 그없다.





낯선 향은 언제나

마음을 아득하게 만든다.


당신이 다.


향에 무딘 게으른 코를 지녔기에

이건 나에게 축복이겠다 싶다가도

낯선 당신이 계속 마음을 맴돌았기에.


매일 밤 뒤척이며 당신 생각에

얼굴을 붉혀야만 한다.


그렇게 당신은

나의 밤이 어가고 있다.





나의 밤을 당신에게 들려주고 다.

나의 밤은 손톱이다.


마다 손톱을 깎는 건

나의 오랜 습관이다.


탁-탁-탁

둥글게 깎여나간 손톱은

하얀 초승달을 닮아있다.


신문지 밖으로 깎여 날아간 손톱들을

하나 둘 주워 까만 밤하늘 위로 얹히면

저 멀리 떠있는 초승달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나는 달을 손에 쥔 사람이다.





그렇게 나는 밤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초승달들을 만들어냈으리라.


그리고 늘 그렇듯

한순간 쓰레기통에 털어 버렸으리라.


그렇다면 과연

평생 동안 내가 버린

달들은 얼마나 될까.


평생 동안 내가 버린

가치 있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때문에

나의 밤은 이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연은 나의

억측과 맹신으로 시작되었고

나의 변덕과 불신으로 끝났다.


손톱을 달이라 믿으면 한없이 가치 있다가도

쓰레기라 믿으면 한순간 가치 없어졌듯 


모든 것은 변해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영원한 건 없다.


손톱도, 인연도.

우리의 밤도.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손톱을 초승달이라 믿듯

당신을 인연이라 믿겠습니다.


모두가 당신이 쓸모없다 비난할 때

나만은 당신이 가치 있다 믿겠습니다.


당신에게만은 맹목적인 눈으로

모든 것이 좋다 말하겠습니다.


어떨까요 당신

이런 무조건적인 바람.





신이 속한 여름밤이라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꿉꿉하던 장마의 도.

시끄럽던 도시의 밤도.

곤하던 불면의 밤도.


모두 희미해져 갑니다.

모두 멀어져만 갑니다. 


신기하죠.


이 여름.

이 밤.


그리고 당신.





리고 상상해봅니다.


당신이 어느 날 

손톱을 깎다 깨닫길.


손톱은 저 초승달을 닮았다는 걸.


때문에 당신도 저 초승달처럼

한없이 크고 아름다운 사람이란 걸.


어느 날 문득.

무심하게.





그러니 이 여름.

밤향기를 맡아보길.


조용해서 더 선명한

초록의 풀 냄새가 느껴지나요.

나무의 솔 냄새가 느껴지나요.

구름의 달 냄새가 느껴지나요.


참으로 편안하죠.

참으로 향기롭죠.


여름의 향이네요.

당신의 향이네요.


밤향기네요.





하지만 서럽게도

당신은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매일 밤  곁을 서성이다가

아침에 눈뜨면 한순간 사라지니.


그렇다면

내가 매일 맡는 향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내가 매일 맞는 당신은 누구란 말입니까.


당신은 과연 향이 있긴 합니까.

당신은 과연 존재하긴 합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참.

아무래도 좋습니다.


나는 지금 설레고

나는 지금 행복하고

나는 지금 잠이 드니


여름밤은 어김없이 드높고

시와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책장에 고이 꽂아 둔 

어느 시인의 유고 시집을 펼쳐 드니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떠나가는 것을 사랑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오늘 밤에도 당신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당신이 떠나갑니다.

당신이 사라집니다.


안녕.







To. 나의 손톱


이별은 생각보다 낭만적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겠습니다.

나는 우리의 그 계절이
여름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여름의 밤은 짧고
여름의 향은 가벼우니

잊혀지기 좋은 계절입니다.
사라지기 좋은 계절입니다.

인연을 맺기에도
이별을 하기에도

이보다 더 완벽한 순 없네요.
이보다 더 조용할 순 없네요.

오늘,
여름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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