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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나 Jan 21. 2018

촛불 인연

마음을 태워 전한다


초가 벌써 다 타버렸네?


얼마나 오랜 시간입니까.

길따랗던 촛불이 어느새 모두 불타

매캐한 연기만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렇게 촛불 하나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종료되었음을

무언의 신호로 경고합니다.


시간이 너무도 빨리 흘러버려

이토록 서운할 수 없다는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우리가 시간을 불태웠네요."





무엇이 타버린다는 건

당신의 생각보다 낭만적입니다.


어쩌면 우린 무엇을 태움으로써

또 다른 무언가를 태워 오기도 하거든요.


믿기지 않겠지만

수많은 태워지는 것들이

수많은 인연을 태워 데려오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태움의 증명인 나의 부모님,

아니 어느 오랜 연인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그러니 촛불 하나만 더 태우면서

내 이야기 좀 듣고 래요?





자, 우리 앞에 놓인 이 촛불.

기다란 촛불 앞에 마주 앉은 우리처럼.


30년 전.

딱 우리 나이의 앳된 한 처녀 총각이

서울의 어느 지하 커피숍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답니다.


내키지 않게 억지로 선자리에 끌려 나온.

그래서 시간이나 때우고 헤어지마음먹었.


 무심한 두 남녀가

커피숍에서 처음 눈이 마주치마자

실내의 모든 불이 정전되었다지 뭐예요.


그 칠흑 같던 암흑 속에서

낯선 두 남녀가 얼마나 낯설었을까요.


그러니 불을 켜야 했죠.


어둠을 밝히기 위해.

서로의 얼굴을 밝히기 위해.





아주 길따랗고 투박한.

새하얗고 단단한 그 촛불의 심지 위에.


곧이어 작은 불꽃이 살포시 내려앉았고

그 불꽃이 은은히 주변을 밝히고 나서야

서로의 어둑한 얼굴을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었던.


흐릿했기에 서로에게 더 집중했고.

조용했기에 서로에게 더 조심했던.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촛불은 바닥 심지까지 다 타버려 꺼져있었다던.


그렇게

촛불을 홀랑 다 태워버린.

시간을 홀랑 다 태워버린.


어느 두 남녀의 이야기.





그와 동시에, 서로의 마음을 목적지로

불꽃이라는 급행열차에 낭만이라는 승객을

태워 보내는데 무사히 성공했다는. 


촛불을 태워버림으로써

평생의 인연을 태워 데려 온.


그런 촛불 이야기예요.


지금. 

우리 둘 앞에 놓인

이 촛불처럼요.





그때 태운 촛불이 출발이 되어

그들은 수많은 데이트를 하며 서울 도심 속  

카페의 예쁜 초들을 셀 수 없이 태웠고.


결국엔 혼인의 맹세로 화촉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엔

서투른 요리를 대접하려다 밥을 태우고.

가난한 신혼집을 데우기 위해 연탄을 태우고.


그래도 눈이 나리는 결혼기념일에는

조그마한 케이크에 축하 촛불도 태우고.

그렇게 마음을 불태우다 한 아이가 생기고.


이젠 그 아이의 생일이면 초를 하나씩 태우고.

그 아이의 생일 초가 채 4개가 되기도 전에

또 다른 아이가 초를 안고 태어나고.


그렇게 그들은

수많은 '촛불'을 함께 태워갔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함께 태워갔습니다.


그리고 그 태움이라는 것이 비단

촛불에만 국한되는 일이었을까요.





데이트를 할 때는

뜨거운 사랑에 애태우고.


결혼 후엔

끝없는 가난에 애태우고.


식구가 늘어나며

한 아이의 울음에 애태우고.


셀 수없는 현실에 애태우고.

울 수없는 현실에 애태웠을 겁니다.


태워지는 촛불만큼

그들의 마음도 타버렸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촛불을 태우는 건

어쩌면 마음을 태우는 일.


그것은 비단

마음이 문드러지도록 타버리는 것만이 아닌

서로의 마음, 촛불에 담아 뜨겁게 전해 보는 일.


뜨거운 열에 촛농이 녹아 흐르고

그 촛농이 굳으면 단단해지듯이.


마음 타고나면 서로의 믿음

더욱 견고 해지는 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시간을 촛불을 타고.

인연은 촛불을 타고.


마음을 촛불을 타고.





외따로이 놓여 있는

우리는 촛불과도 같습니다.


초가 타는 동안 당신은

틈을 타서 나를 떠날 수도 있고

틈을 타서 나를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심지의 불꽃이 일렁이며 태워지는 동안

우리의 마음도 일렁이며 태워질 수도 있고.


남은 심지까지 모두 태워져 불이 꺼지는 순간

우리의 마음도 갑자기 식어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태워진 촛불 위론

매캐한 '연기'만이 우리 곁을 맴돌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알까요.

'연기'라는 단어.


불교에선

'인연 연(緣) + 일어날 기(起)'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서로 의존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뜻.


때문에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변화한다는 뜻.


즉,

모든 인연의 얽힘.

모든 만남의 얽힘.


그리고 그 결과로써의 증명인

우리의 얽힌 인연(因緣).





그러니 지금.


나는 이 태워진 촛불의 연기를 보며

우리의 인연이 얽히기 시작했음을 느낀다고.


그렇게 앞으로 서로에게 의지

많은 시간을 함께 태워나갈 것임을

직감하고 있다고.


아무래도 우리,

인연인 것 같다고.





참.

낯 부끄러운 이야기라고요?


글쎄요.

촛불 하나로 시작된 연인의

태움의 결실로 맺어진 저인지라.


오늘 함께 촛불을 태워버린 당신에게

문득 마음을 걸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어쩌면

불이 붙어 번지고 불꽃이 일어나듯이

당신에게 따뜻한 마음 번지게 하고 싶은

그런 소소한 욕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어느새 우리의 두 번째 촛불도 다 타버렸습니다.

우리가 함께 태운 시간이 이렇게 또 늘었습니다.


앞으로도 나와 함께

수많은 촛불을 태워주세요.

수많은 시간을 태워주세요.


그리고 그 촛불 속에

따뜻한 마음 함께 태워주세요.


그리하여

지금.





이 촛불 앞에 앉아.

이 촛불 앞의 당신과 함께.


이 촛불을 함께 태우며.

이 시간을 함께 태우며.

 

내 마음을 태워 보낸다.

내 마음을 전해 본다.


마음을 걸어 본다.







To. 나의 시간


당신의 서운하던 바람이
씨가 되어 꽃으로 피었습니다.

다시는 피우지 않겠다
다짐했던 반성이 무색하게도.

생각지 못한 이른 계절에 피어버린 이 꽃을.

나는 과연
부여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용서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가증스럽게도
서럽도록 잘 지낸다 말합니다.
서럽도록 잘 지내라 말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맘이 몸을 이기는 날
우린 득도에 이를 테니까요.

맘이 몸을 이기는 날
우린 시간을 이길 테니까요.






* 본문에 언급된 불교의 '연기(緣起)'는 불이 연소함으로써 생기는'연기(煙氣)'와는 뜻이 다르지만, 동음이의어로써 개인적인 견해와 해석을 적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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