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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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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나 Dec 11. 2016

머리카락의 비명

이별은 미련을 잘라내는 것


언제 이렇게 자랐지?


남자처럼 짧던 내 머리가

어느새 어깨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

훌쩍 자라 버린 긴 머리를

정수리부터 찬찬히 매만져보았다.

부드럽고 차가웠다.


그런데 매만지는 손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거친 촉감이 내 손가락을 휘감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상한 머리카락이었다.

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귀가 드러날 정도로 짧은 나의 머리를

몹시도 싫어하던 너였다.


너는 늘 불만스럽게 말하곤 했었다.

짧은 머리보다 긴 머리가 예쁘다고.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등 떠밀리듯 

너를 위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머리를 빨리 길러야 했기에,

머리끝이 갈라져도 절대 자르지 않았다.


갈라진 끝을 조금이라도 다듬으면,

힘겹게 기른 머리가 미세하게나마 짧아질 테니까.

짧아진 나의 머리를  화낼 너였으니까.


무엇보다 갈라진 머리카락 끝을 잘 보살피

다시 좋은 머릿결로 돌아갈 것이라 믿었기에.




하지만 나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갈라진 머리카락 끝을 자르지 않으면,

점점 위로 타고 올라와 결국

머리카락 전체가 상해버린다는 걸.


그리고 너는 나에게

갈라진 머리카락 끝이었다는 걸.




갈라진 머리카락 끝처럼

너는 나를 점점 상하게 했다.


사소한 일조차 거짓말을 일삼던 너는

나를 의심이라는 감옥에 가두었다.

권위적인 행동과 폭력적인 말투

너를 만날 때마다 겁에 떨게 만들었다.


난 그렇게 너의 앞에서 울고 있었다.

난 그렇게 너의 곁에서 상해 가고 있었다.




갈라진 머리카락 끝 미련을 못 버렸듯이.


나는 거칠게 변해버린 너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었다.


내가 좀 더 믿어주고

내가 좀 더 용기내고

내가 좀 더 맞춰주면


날 처음 만나던 그때의 모습처럼

그렇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었다.

하지만 넌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난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너는 원래부터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것이 너의 본모습이었다는 걸.




나를 상하게 하는 건

애초에 미련 없이 잘라버렸어야 했다.


그게 갈라진 머리카락 끝이든.

나에게 상처 주는 인연이든.




나는 이렇게 이별을 통해 또다시 성숙해진다.

그리고 알게된다.


이별에도 때가 있다는 걸.

이별은 미련을 잘라내는 것이란 걸.


그렇게 나를 위한 가위질을 해나간다는 것.




미용실로 향했다.


서걱서걱 갈라진 머리카락 끝이

날카로운 가위 날에 잘려나간다.


그렇게 내 미련도 잘려나간다.


잘려진 머리카락이 비명을 지른다.

비명소리가 너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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