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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나 Jan 01. 2017

식탁의 위로

그렇게 너의 위로를 먹는다.


나... 기억하려나?


늦은 저녁.

버스를 기다리는 나에게 잠잠히 다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말을 건네는 너는.


너와 내가 처음 만나던 14살,

그때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사이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어버린 넌.


여전히 키가 작고,

여전히 손이 가늘고,

여전히 갈색 머리에,

여전히 예뻤다.


나는 네가 지금 다시 교복을 입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의 넌,

항상 눈에 눈물이 가득한 소녀였다.

그리고 그런 너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늘 친구들에게 외면받고 울던

어린 시절 나의 모습과 닮았다 생각했기에.


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너를 볼 때마다 고개를 돌렸고

너를 볼 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너에게서 나를 본 것이다.




너는 나에게 처음으로

'위로'란 단어를 알고 싶게 해 준 사람이었다.


나를 닮은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나 또한 웃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래서 울고 있던 너에게 말을 건네었다.

"우리 집에 갈래?"




누군가를 우리 집으로 초대한다는 건,

나에겐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거짓 없이 보여준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으며,

그것은 누군가에게 나의 의심을 거두고

전적으로 신뢰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에.


나는 놀란 눈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너의 손을 붙들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너는 내 마음에 첫 발을 디딘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온 가득 기름 냄새가 풍겼다.

엄마가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부침개였다.


나는 부침개의 느끼한 기름 냄새를

목 뒤로 꾸역꾸역 삼키며 엄마에게 말했다.

"부침개 좀 주세요."


그제야 뒤를 돌아본 엄마는,

나의 옆에서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없이 젓가락 두 짝과

짭짤 시큼한 간장이 담긴 하얀 종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우린 그렇게 식탁에 마주 앉아

묵묵히 부침개를 먹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말이 없는.

침묵만이 가득한 식사였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한참을 소리 없이 부침개를 먹던 너는

고개를 들어 엄마를 향해 말했다.

"부침개... 너무 맛있어요..."




그 순간.

그 별거 아닌 너의 말 한마디에

우리 모두가 웃음이 터졌던.


그 순간을 너는 기억할까.


나는 그제야 활짝 웃는 너의 얼굴을 보며,

그 싫던 부침개가 처음으로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음식이 주는 따뜻한 위로의 힘을 믿는다.


서로가 몸을 마주하고,

서로가 눈을 바라보고,

서로가 마음을 맞춰야 가능한.


그 따뜻한 한 끼의 식사는.


상대방의 언 마음을 녹이는 일은 아닐지.

상대방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닐지.

상대방에게 무언의 위로를 건네는 것은 아닐지.




때문에 우리는,

나의 섣부른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위로'가 아닌 '위선'이 될까 두려울 때.


이렇게 말을 건네는지도 모른다.


"같이 밥 먹을래?"




어두컴컴한 버스 뒷좌석.

나의 옆자리에 앉은 네가 조용히 묻는다.

"배고프다. 혹시 저녁 먹었어?"


평소 저녁을 챙겨 먹지 않는 내가 대답한다.

"아니 아직. 나도 배고프다."




12년 전.

내가 너에게 그랬듯이.


는 네가 나의 손을 붙들고

그 어딘가로 향한다.


눈 앞에 새하얀 식탁이 보인다.

그 위에 따뜻한 음식들이 올려져 있다.


그렇게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

그렇게 너의 위로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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