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

by 곽소민

낙산. 파도 소리가 좋아 문을 열어뒀다.

도착해서 초저녁부터 땀을 흘리며 잠을 많이 잤다.

얼굴에도 한가득 베개 하나도 물로 가득했다.


택시를 타고 낙산사에 들리긴 했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시내에서 바닷가로 오는 동안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내가 ”물곰탕…“하고 간판을 읽었는데

기사님이 “주말인데 쓸쓸하네요.“ 겸연쩍어 하셨다.


낙산사 근처 바닷가를 지날 때,

파도가 잘 직조된 레이스 끝단처럼 예뻐서 보는데.

기사 아저씨는 어디서 나온 에너지인지 모를 텐션으로

“와 바다다!”하고 아이같은 목소리를 내셨다.

웃으면서 바다를 감상했다.

바다는 매일 보실텐데 감사했다.

숨이 시원하게 쉬어졌다.


깨끗하고 조용한 호텔에 내려주십사 했더니

바닷가 근처 좋은 곳에 데려다주셨네.


소파에 앉아 있는데 먼저 다가와서

추우실텐데 걱정이 되서요 하고 참 예쁘게 말을 하던.

철학적이고 묵직한 예레미야 비슷한 향이 나서 친근하게 느껴진 어린 호텔리어분이 있었다.


그분 재량으로 룸 업그레이드를 하고 고층 방을 받았다.

단촐한 가방을 보더니 치약칫솔 없으시면 그냥 드릴게요 하면서 유료 어매니티를 건네주시며 차분하고 착한 얼굴로 보는데 조금 울컥했다. 내가 당신에게 언제 무엇을 해드렸기에 이런 마음을 받을까.

작은 마음이지만 향기롭고 따뜻했다.

마음이 활짝 열리고 세상이 잠시 온순해지는 느낌.

내일 체크아웃하며 스키틀즈 사드려야지.


새벽에 바닷가를 좀 걷다가 일찍 낙산사에 가봐야겠다.

외할머니랑 어렸을 때 절에 갔던 기억이 불쑥 난다.

할머니집에 맡겨져 있을 때. 할머니 무릎을 베고 염불 소리를 듣다 잠든 것. 귀에 웅웅거리던 그 염불소리 좋았던 것.

향냄새. 절하는 할머니의 나물밥에서도 나던 향냄새들.


시간이 지나 다시 바닷가 할머니집에 살 때도 떠올랐다. 음악 들으면서 매일 걷던 바다. 딱 한번 소중한 친구가 찾아와 한낮의 바다를 끝에서 끝까지 뺨이 얼얼할 때까지 걷던 일. 만나면 별 말이 없던 우리 낡은 카페에서 향긋한 쟈스민 차 마시던 일. 꽃이 풀리는 걸 가만히 보던. 고작 나눈 말 중 기억 나는 건 ‘저 유리병 속에 든 범선 어떻게 들어간 거야?’ 하던.


가슴 속에서 일렁이고 빛나는 하나의 불빛을 본다.

거대한 바다가 알아서 남은 미망을 처리 해줄 거다.


열이 계속 났는데 머리에 얼굴에 있던 게

이제 가슴 정도까지 와서 다행이다.

내일 절을 좀 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생명과 부활에 대한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