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나쁨, 좋음, 크리스마스, 클럽, 산책, 각자의도시

by 윤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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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내리쬔다.
밤새 버스를 달려 비야리카에 도착했다.
그리고 푸콘행 버스를 탔다.
대형버스에 나와 '그 녀석' 그리고 몇 명뿐이다.
어제의 충격으로 '기분 나쁨' 모드를 유지하며 좌석에 쭈구리고 앉아 눈을 치켜뜨고 가방을 끌어안고 버스 밖 풍경을 둘러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무성한 나무들과 예쁜 집들과 한적한 예쁜 도로가 보인다.
'기분 나쁨' 모드에서 '기분 좋음' 모드로 서서히 바뀌면서 쭈구려져 있던 몸이 거의 다 펴졌을 즈음 푸콘 작은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새소리가 들린다.
버스 정류장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웃어줬다.
기분 좋다.
가방이 가볍다.
내 목소리가 높아진다.
발걸음도 빨라진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서는 오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단다.
얼마 만 내면같이 저녁식사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단다.
그래. 크리스마스 파티는 당연히 참석해야지.
얼마면 되니.
방에 들어갔더니 익숙한 얼굴이 다른 침대에 짐을 풀고 있다.
산티아고 같은 숙소에서 만났던 한국인 D다.
지금 온천 투어를 하러 가야 해서 짐만 챙기러 왔단다.
투어 회사에서 지금 버스 출발하기 전에 수영복만 챙기러 다녀올 시간을 특별히 준 거란다.
빨리 가야 한단다.
내일부터 크리스마스라서 아무 투어도 없을 텐데 뭐라도 해야지.
우리도 간다고 했다.
5분 만에 수영복만 챙겨서 나갔다.
돈을 내고 버스에 탑승했다.
야외 온천이다.
몸은 따뜻하고 얼굴은 시원하다.
기분 좋다.
마당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의 조명은 슈퍼문이었다.
호스텔 주인 베니는 지난 3월 이 마당에서 눈앞 비야리카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다녀온 그 온천 투어는 비야리카 화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베니는 그런 멋진 광경은 다시는 못 볼 광경이라고 했다.
우리는 우르르 클럽에 갔다.
라틴계 친구들의 막춤은 너무나도 섹시하고 멋졌다.
나에게도 춤을 알려줬는데 무지하게 끈적했다.
'그 녀석'은 내일 새벽같이 다른 도시로 떠난다고 했다.
나도 다른 도시로 떠난다. '그 녀석'과는 다른 도시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그 녀석'은 12시에 숙소에 들어가서 자겠다고 했다.
12시에 잘 가라고 인사했다.
1시에 신나게 춤추고 있는데 내 옆에 '그 녀석'이 팔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며 춤추고 있다.
모든 예체능의 유전자는 나에게 유전된 것이 확실하다.
저것은 분명 군인 아저씨 춤이다.
창피했다.
'그 녀석'과 눈 마주치자 저기 라틴계 여자애들이 자기 보고 귀엽다고 했다며 좋아했다.
집에 가자고 했다.
휘황찬란한 슈퍼문을 가로등 삼아 여행 중 처음 간 클럽에 여전히 흥분한 채 우리는 시골길을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걷는 새벽 1시의 산책이 심장을 진정시켜 주었다.

이제 우리는 처음으로 따로 헤어져 다른 도시로 떠난다.
나는 발디비아로. '그 녀석'은 어딘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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