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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 May 15. 2016

환상적인 불시착,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사막과, 일곱빛깔의 호수와, 셀 수 없는 별이 뜨는 곳

이름만으로 외계행성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곳,  칠레의 북부에 위치한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이 생소한 곳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외계인인 도민준이 지구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바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려 했던 우리의 일정에 이 외계행성같은 곳이 급하게 추가되었다. 에콰도르에서 출발해 페루, 볼리비아를 거쳐며 내려오다보니 브라질에서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올라오는 여행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 중 다수가 칠레의 아타카마라는 곳을 최고로 꼽는 것이었다. 그 곳에 가면 달 표면 같은 사막과 수없이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아타카마에 가려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일정을 줄여야 했다. 원래의 계획에 따를 것이냐, 충동에 따를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이번이 아니면 평생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급하고도 대담하게 아타카마행을 결정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우유니에서 새벽 4시 버스를 타고 장장 11시간에 걸쳐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라는 곳에 떨어지게 되었다. 




달의 표면에서 맞은 일몰

아타카마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달의 계곡'이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이 곳에 펼쳐진 사막은 마치 달의 표면같이 생겼다고 하여 달의 계곡(valle de luna)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달의 계곡을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 사막으로 달려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으로 황색의 모래와 바위들만 있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모래를 밟고, 바위를 올라 높은 곳에서 달 표면 같은 사막을 아낌없이 감상했다. 바람의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신기한 모양의 바위도 보고, 동굴 안을 기어서 통과해보는 경험도 했다. 수천 년간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낸 바위와 지형은 정말이지 지구가 아닌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것 같게 만든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이 낯선 풍경 앞에서 우리는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인이 된다.

 달의 계곡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일몰 감상이다. 해가 질 즈음 투어를 마친 사람들이 일몰을 보기 위해 같은 장소로 속속 모인다. 절벽 밖으로 톡 튀어나와 있어 일명 코요테 바위라 부르는 이 곳은 인기 포토존이다. 다들 재미난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칵테일을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다가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갈 즈음엔 다들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한다.

일상에서 맞는 일몰과는 너무도 다른 아타카마의 일몰. 달에서는 아마 이렇게 해가 질 것 같았다. 누구는 연인과, 누구는 가족과, 누구는 친구들과 함께 앉아 달 표면 같은 사막에서 서서히 지는 일몰을 바라본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자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저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일몰을 감상한다.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뒷모습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꼭 껴안고 일몰을 감상하는 연인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빛깔의 소금호수

아타카마를 달의 계곡과 같은 사막만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오산이다. 이 곳의 매력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로 다채로운 풍경을 품고 있는 데 있다. 그 매력 중 하나는 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이 사막에 7가지의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는 소금 호수가 있는 것이었다. 1년에 비 한 방울 내리기 힘들다는 이 곳에 호수가 있다는 말을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을 것 같아 곧장 투어를 신청하고 나섰다.

소금호수로 가는 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내 사막이 펼쳐졌다. 그러다 어느덧 도착한 이 곳에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빛을 품은 호수가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다. "너 어떻게 여기 있니....?"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모래와 흙 가운데 홀로 영롱히 빛나고 있는 호수. 맑은 하늘의 구름을 아름다운 빛깔 안에 그대로 품고 있는 호수는 하늘에서 똑하고 떨어진 것 같았다.

하늘에서 떨어트린 눈물 같은

수백만 년 전 바다가 융기하여 생긴 사막이기 때문에 바닷물로 만들어졌다는 소금호수. 아무리 과학적인 설명을 들어도 이 신비로운 빛깔은 머리로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소금때문에 짭짤한 맛이 나던 호수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눈물 같았다.

놀라운 건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가 자그마치 7개가 있다는 것이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7개의 호수들을 하나씩 만날 수 있었다. 황갈색의 흙과 돌을 밟으며 걸어가다 보면 저편에 하얀 소금에 둘러싸인 한없이 맑고 투명한 호수가 고여 있었다. 마치 사막에서 걸어가며 보석을 하나씩 발견하는 것 같았다. 7개의 소금호수는 정말 저마다 7개의 다른, 아름다운 색을 품고 있었다. 호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 색을 설명해야 이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난 자신이 없다.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담아온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할 밖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빛깔의 호수
gopro로 촬영한 사진. 황량한 사막 가운데 하늘에서 내려온 듯 홀로 존재하는 호수



별을 바라보고, 별을 얘기했던 시간

아타카마는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기후와 더불어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세계에서 별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세계 각국의 천문학자들이 별을 관측하기 위해 몰려온다는 이 곳에서, 별을 보지 않고 지나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아타카마에서 마지막 밤을 '별 투어(space tour)'로 장식하기로 하였다. 특히나 우유니에서 보름달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 많은 별을 보지 못했던 터라 별 투어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별. 투. 어 라니! 오로지 별을 보기 위한 투어라니! 그것은 여행자의 낭만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달이 아직 지평선으로 뜨기 전인 밤 11 시. 숙소 앞으로 우릴 태우러 온 작은 승합차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 15분 정도를 달려간다. 어느덧 주변의 불빛이 하나씩 사라지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공터. 차에서 내리자 오늘의 투어를 이끌어줄 가이드 두 분이 머리에 헤드라이트만을 켠 채 우리를 맞아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순간, 다 같이 말문이 막혀버린다. 까마득한 하늘을 말 그대로 한가득 채운 별들. 마치 별을 가득 담은 그릇을 머리 위에 덮어놓은 듯 온 사방은 별들로 가득하다. 아직 달이 모습이 드러내기 전 별들은 제 빛을 마지막으로 자랑하듯 마음껏 빛을 발하고 있었다. 태어나 가장 많은 별들을 본 그 순간, 들어보기만 했던 'milky way'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순간. 아타카마 사막의 쏟아져 내릴듯한 별들 아래서 하늘 위로 고개를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처음으로 삼각대를 안가져 온 것을 후회한 순간이었다. 이 별들을 담고 싶은데 어떻게 해도 다 담을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가이드께서 별과 우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해주셨다. 별들로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있는 법, 주요한 별자리들과 별들의 특징과 이름들까지... 별에 대해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해주시던 그분은 단순히 투어 가이 드라기보단 별을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영어와 스페인어로 번갈아가며, 손짓, 발짓을 사용하며 별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해주시던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말이지 그 분 덕분에 별이 더 반짝여 보였다.

어느새 달이 서서히 떠오르자 환한 달빛에 별이 점점 빛을 감추기 시작했고 우리는 망원경으로 별과 달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로지 달빛과 별빛만이 있는 까마득한 곳에서 우리는 와인과 다과를 마시며 별을 관찰했다.

오직 별을 바라보고 별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 별에 대해 질문하는 이 그리고 답하는 이, 서서 누워서 가만히 별을 바라보는 이들만이 그곳에 있었다. 별빛빼곤 아무런 불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우린 서로의 국적도, 얼굴도 잘 몰랐지만 그 순간 모두에게 별이 아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불시착[명사] :  계획된 착륙 지역이 아닌 곳에 착륙하는 것.


남미 여행 중 불시착하게 된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이 외계행성 같은 아타카마에의 불시착은 감히 최고라 말할 수 있는 성공적인 착륙이었다. 달 표면 같은 곳에서 일몰을 바라보던 시간, 일곱가지 빛깔의 소금호수를 만난 시간, 또 쏟아지는 별빛들을 보고있으면서도 계속 계속 눈에 담고 싶던 그 시간은 아마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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