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특성상 여름 방학, 겨울 방학이 있다.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국어라는 주요 교과의 콜라보는 허울 좋은 방학일 뿐, 사실 내게 주어지는 방학의 기간은 일반 직장인들이 연차를 써서 여행을 떠나는 기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냥 연차내지는 휴가라는 것보다는 방학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명사의 파워는 실로 막강하다. 실제 여름 방학은 생기부 교과 세특 작성 및 출장, 연수 등의 일정을 제외하면 3-4일 남짓, 난 아이의 유치원 방학 일정에 맞춰야 하는 터라 억지로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방학’이란 이름이 너무도 초라하지만, 우리는 긴긴 한 학기의 고달픔을 그 짧은 두 글자에 마음을 기대로 기대면서 버텨내곤 한다.
세상살이가 쉬운 법이 어디 있으며, 돈벌이가 쉬운 곳이 어디 있겠는가. 여유란 사치, 치열한 노력과 자기 계발이 유효한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내 자신의 가치의 유효성을 테스트하며 돈을 벌어낸다는 것 자체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이런 대단한 일들을 해 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럼 이런 일터와 여행의 관계는 무엇인가 생각해 볼 부분이다. 한 학기가 시작되면 구글맵을 켜고 가고 싶은 도시들을 살펴보고, 이들 간의 교통편과 이동 거리를 체크해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뇌가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러다 항공권을 드디어 결제하면, 그걸로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당겨서 해 놓은 상황. 이 티켓을 누릴 가치에 대해 스스로 의미부여를 하며 왜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다. 공항에 발을 디디는 사람들의 이유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노력과 성실을 증명하는 삶을 여행으로 보여주는 나의 방식에는 단순한 관계성을 넘어선다.
여행으로 일상의 삶의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 이 둘은 단순한 비례 관계도 발산 관계도 아닌 한데 뒤엉켜 나의 삶을 꾸려나가는 수렴 관계일 뿐. 사실 우리 삶의 서사는 단순히 날실 씨실처럼 쉽게 분리할 수 없는 다양한 층위가 얽혀 있다. 그저 고단함에 약간의 재미와 여유를 더하는 게 직장인이 갖는 여행의 의미일 뿐. 다시 건강한 현실로 돌아갈 탄력성을 충전하는 시간으로, 일상만큼의 무게는 아니라고들 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갖는 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