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Gold)과 피(Blood)-1

by 윤금현

등장인물


[대학생 부부에서 재벌로 성장-프랜차이즈 식당 재벌-아리랑]

아버지: 이현석/남/54세/아리랑 그룹 회장

어머니: 박미현/여/53세/이현석의 부인, 전업주부

박미현의 친정 어머니: 나현주/여/75세/박미현의 친정 어머니, 전업주부

아들(형):이준영 -> 최준영(입양 보냄)

아들(동생): 이진영/남/27세/이현석의 아들, 아리랑 그룹 상무이사

딸: 이윤영/여/24세/이현석의 딸, 태권도 사범

집사 겸 변호사: 송영구/남/30세/아리랑 그룹 법부실장, 변호사


[최준영을 입양한 중산층 가정-양부는 구청 공무원, 양모는 주부]

양부: 최종환/남/57세/구청 공무원

양모: 송순화/여/55세/최종환의 부인, 전업주부

아들(입양): 최준영/남/27세/최종환의 아들

딸: 최선경/여/24세/최종환의 딸, 교사


[또 다른 재벌가-투자 회사-태화 투자 신탁 회사]

아버지: 손진태/남/54세/태화 투자 신탁 회장

어머니: 강정화/여/49세/손진태의 부인, 전업주부

딸: 손혜정/여/26세/손진태의 딸, 태화 투자 신탁 본부장

아들: 손병승/남/24세/손진태의 아들, 태화 투자 신탁 상무, 화가 지망생


김소희/여/24세/프리랜서 기자, 레프트(LEfFT) 기획실장


김상원/남/31세/태원 새마을 금고 이사장 김태원의 아들, 태원 새마을 금고 부장




1 장.



“어이, 아줌마! 우리 흙 퍼먹고 장사하는 거 아니잖아?”

최준영이 신경질을 내면서 눈을 위 아래로 흘기자, 탁자 건너편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가 움찔했다.

사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수수하게 차려 입은 여자. 앞머리에 이제 흰머리가 살짝살짝 보이고, 눈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나타나고 있었다. 그녀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검정 고무줄로 질끈 묶고 있었다. 조금은 낡아 보이는 검정색 치마 밑으로, 두 무릎이 딱 붙은 채 가녀린 두 다리가 벌벌 떨고 있었다.

여인은 두 손을 맞잡고, 준영에게 빌었다.

“며칠만 시간을 주면 분명히 갚을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부탁합니다. 이렇게 부탁합니다. 제발…….”

탁 하고 탁자를 내려친 준영은 허허 하더니 흰색에 가느다란 파란 줄무늬가 세로로 나 있는 셔츠 앞 포켓에서 담배를 꺼냈다.

“야, 준영아! 이제 그만 하자. 이 아주머니도 안 갚으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 우리가 이해하면 되지, 뭘 그래?”

사무용 책상을 등지고 준영과 여자를 마주보고 앉아 있던 김상원이 최준영을 달랬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빤 준영은 연기를 여인의 얼굴에 대고 훅 불었다.

담배 연기가 얼굴로 밀려와 코로 들어가자, 여자는 캑캑거렸다.

“형님, 상원이 형님, 어째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합니까? 형님은 다 좋은데…….”

상원은 오른손을 머리 옆으로 들었다.

오른쪽 뒤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담배를 하나 꺼내서 상원의 손가락에 쥐어 주었다.

“야, 불 좀 줘 봐라.”

준영은 라이터를 꺼내 휙 던졌다.

“이놈 새끼 봐라? 야, 너 그렇게 밖에 안 배웠냐? 너…….”

“뭐요? 형님,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고?”

준영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며, 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걸 본 상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 보자……. 성함이 장미나 씨인가요? 그렇죠?”

“예.”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그만 가보시죠. 그리고 약속 날까지는 분명히 입금을 하세요. 아시겠지요?”

고개를 푹 숙인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세요. 자, 가세요.”

여자는 상원의 말을 듣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무실 문으로 걸어가서 뒤로 돌더니, 허리를 깊숙이 숙여 상원에게 인사를 했다.

문 옆 의자에 앉아 있던 건장한 젊은이가 여자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여자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더니 얼른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준영은 그때까지도 바닥에서 연기를 살살 내뿜고 있던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짓이겼다. 그리고 천장을 보더니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보스께서 맨날 형님이 바보라고 하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문 앞에 있던 젊은이와 상원에게 담배를 주었던 젊은이가 동시에 살짝 움직였다.

그러나 그 순간 상원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야, 최준영! 우리가 건달이냐? 양아치냐? 우리는 사채업자가 아니란 말이다. 항상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지?”

상원은 침을 꼴깍 삼켰다.

“우리는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사채업자가 사채업자지 무슨 금융……. 회장님도 참……. 그런다고 우리가 사람 등치는 것이 달라집니까? 하려면 확실히 합시다.”

준영은 코웃음을 쳤다.

“너 대체 왜 그러냐? 이 자리가 탐나냐?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해라. 이 부모도 없는 자식아!”

김상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준영은 그 자리에서 훌쩍 날았다.

자신의 장기인 앉은 자세 그대로 일어나기였다.

공중에 붕 뜬 준영은 왼발 돌려차기로 그대로 상원의 면상을 걷어찼다.

퍽 소리와 함께 상원은 일인용 소파 옆으로 떨어졌다.

두 명의 젊은 청년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퉤, 더러운 새끼!”

준영은 사무실 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문에 발길질을 했다.

나무로 된 문짝이 쾅 하고 부서졌다.

그는 계단을 쿵쿵거리며 내려갔다.

두 번 돌아서 일 층까지 내려간 준영은 다시 담배를 꺼냈다.

한 가치 남아 있던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문 준영은 불을 붙인 다음 빈 담뱃갑을 바닥에 버렸다. 빌딩 로비를 가로지르더니 커다란 유리문을 밀고 거리로 나갔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었고, 해는 뉘엿뉘엿 지려 하고 있었다.

빙글 돌아 방금 나온 빌딩을 올려다본 준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여기도 끝인가…….’

입에 문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준영은 고개를 홱 돌리고, 입에 문 담배를 투 하고 뱉어 버렸다.

방금 나온 빌딩의 옆에 서 있는 입간판이 준영의 눈에 띄자, 그는 가만히 서서 간판의 글자를 읽었다.

[고운 손]

“그래, 자고로 여자는 손이 고와야지. 큭큭큭.”

최준영은 입간판 뒤에 있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 * *


이제 해가 완전히 져서, 거리는 가로등과 건물에서 나오는 빛에 의지하여 그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다시 우르르 몰려갔다. 6 월의 밤은 벌써 더워지고 있었다.

[고운 손]이라는 입간판 뒤 지하 계단에서 최준영이 올라왔다.

불그레한 얼굴로 인도에까지 다 올라온 준영은 셔츠 앞 포켓을 더듬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바지 주머니도 더듬었다.

“젠장맞을, 담배가 없잖아.”

준영은 다시 돌아서더니, 방금 나왔던 지하 계단 쪽으로 한 걸음을 떼었다.

“어이, 형씨, 담배 하나 줄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에 준영은 천천히 뒤로 돌았다.

준영의 눈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사채업 사무실에 있었던 두 명의 건장한 젊은이들이었다.

“뭐, 형씨? 아주, 이 새끼들이 죽을라고……. 야! 이 새끼야! 내가 네 친구냐?”

준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왼편에서 죽도가 휙 하고 날아왔다.

준영은 엉겁결에 왼손을 들어 막았다.

팔목이 징 하고 저려왔다.

이번에는 오른편에서 죽도가 날아왔다.

준영은 공중으로 휙 날아 죽도를 걷어찼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마음뿐이었고, 준영은 그냥 그 자리에서 껑충 뛰었을 뿐이다.

“아주 지랄을 하세요. 지랄을…….”

준영은 그대로 죽도를 어깨에 맞았다.

계속 죽도가 좌우에서 날아왔다.

쓰러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준영은 양팔을 무작정 휘두르기만 해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준영은 인도에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왼쪽 어깨를 밑으로 하고 쓰러져 있었다. 준영은 고통으로 끙끙댔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게 아닌데…….’

준영은 두 손으로 길바닥을 긁었다. 오른쪽 관자놀이가 뜨뜻한 것을 느낀 준영은 그 부분을 오른손으로 만져보았다. 축축한 뭔가가 만져졌다.

준영은 “흐흐흐” 하고 웃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웃어?”

쓰러져 있는 그의 몸 위로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준영의 코와 입에서 피가 터졌다.

“악! 악!”

주위에서 여자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준영의 귀에 꽂혔다. 길바닥에 쓰러진 준영의 눈에 자기에게 다가오는 몇 쌍의 남자 구두가 보였다.

“오면 다 죽여 버린다.”

다가오던 남자들이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준영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인도를 벌벌 기었다.

이번에는 배를 걷어차였다. 입에서 아까 마신 밸런타인과 아직 덜 소화된 탕수육이 밀려 나왔다. 준영은 우욱거리면서, 입 안에 가득찬 토사물을 바닥에 뱉었다.

“그래 다 토해라.”

이번에는 허벅지와 엉덩이를 차였다.

준영을 손을 다리 사이로 집어넣었다. 두 손으로 민감한 부분을 꽉 감싸 안았다.

그때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자 최준영을 때리던 두 남자는 쓰러진 준영의 몸 위에다 침을 퉤 하고 뱉었다.

“너 앞으로 여기 오지 마라.”

말을 한 남자가 준영의 얼굴을 걷어찼다.

준영의 입은 피와 토사물로 범벅이 되었다.

“이제 가자.”

바닥에 옆으로 쓰러져 있는 준영의 눈에 점점 멀어져 가는 네 개의 다리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 다음 어둠이 찾아왔다.


* * *


성북동의 근사한 단독 주택 거실 소파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단정한 단독 주택의 이미지에 맞지 않게 거실은 상당히 화려했다. 커다란 백자 항아리 한 개가 텔레비젼 옆에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 이제 저도 독립을 하렵니다.”

이진영은 입술에 힘을 준 채 이현석을 보았고, 현석 역시 진영을 지긋이 보았다.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좋다. 집은 알아보았냐?”

“예. 삼성동에 빌라 하나 전세로 빌렸습니다.”

“진영아, 뭐하러 나가려고 하니? 그냥 집에 있지 그러냐.”

진영의 어머니 박미현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도 이제 혼자 살아보고 싶어서 그래요.”

“흥, 그게 아니겠지. 혼자 맘대로 살고 싶은 거겠지? 안 그래, 오빠?”

“윤영아, 너는 좀 빠져라.”

진영은 하나 뿐인 여동생 이윤영에게 핀잔을 주었다.

“진영아, 그럼 이렇게 하자. 일 주일에 두 번, 월요일하고 목요일은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배워야 한다.”

현석이 엄하게 말하자, 진영은 마지못해 고개만 끄덕거렸다.

“진영아, 말을 해야지.”

“예, 아버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영아, 아무리 우리가 식당을 한다지만, 이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다. 알겠지?”

이번에는 현석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흥, 어디 내가 두고 보겠어.”

윤영은 아직도 화난 듯 했으나, 아무도 아버지 현석의 결정에 토를 달지는 못했다.


* * *


논현동의 고급 빌라의 7 층에 자리한 집.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흔적이 역력한 집안은, 흰색으로 채색되어서 그런지 우아한 분위기마저 흘렀다.

“어디 보자, 오늘은 무슨 새로운 기사가 있을까?”

손진태는 신문을 펼쳐들면서, 소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손혜정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아빠, 그래요. 그거 투자하면 안될까요?”

“…….”

진태는 아무 말도 없다.

혜정은 답답한 마음에 다시 아빠를 불렀다.

“아빠, 뭐라 말 좀 해봐.”

진태는 신문을 한 페이지 넘기면서 말을 했다.

“혜정아, 그 건은 안된다.”

“왜요?”

“그건 가격이 오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난 이번에는 좀 빨리 승부를 보고 싶구나.”

“아빠, 그건 아빠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진태는 이제 신문을 소파들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탁자 유리 위에 놓았다.

“너는 투자 감각도 있어. 좋아. 그런데 시기라는 걸 배워야 한다.”

혜정의 입술이 비죽나왔으나, 진태는 다시 신문을 집어들었다.


* * *


마포구 연남동의 빌라촌. 골목골목마다 4, 5 층 짜리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동네는 묘하게도 아파트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이 되면 동네가 아주 조용했다. 그렇게 조용했던 지난 밤도 지나가고, 다시 해가 뜨면서 어둠이 물러가고 있었다.

그 중 한 빌라의 3 층 철제 현관문에 [최종환]이라는 문패가 붙어 있었다.

최종환, 송순화 그리고 최선경은 식탁에 둘러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참, 깜박했다. 폰을 켜야지.”

선경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그걸 그대로 가지고 식탁으로 다시 온 선경은, “어, 메시지가 많이 왔네?” 하였다.

“밥이나 먹고 해라. 출근해야지.”

종환이 선경에게 주의를 주자, 선경은 얼른 폰의 화면을 꺼버렸다.

“요새 준영이는 잘 지내는지 몰라.”

순화가 종환에게 말했다.

“엄마, 잘 지낸대요. 걱정 마세요.”

“네가 어찌 아니?”

순화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선경을 보았다.

“얘들끼리는 연락하는 모양이지.”

종환은 입에 밥을 가득 넣은 채 말을 했다.

“그래도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되기는 한다만…….”

순화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그럼 저는 갑니다.”

선경은 핸드백을 어깨에 매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현관으로 달려갔고, 그걸 뒤에서 보고 있던 순화는, “너는 항상 그렇게 덤벙대더라.” 하고 말했다.

“여보, 당신도 출근해야지요.”

순화가 종환에게 말하자, 종환은 숟가락을 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먹을래. 오늘은 영 밥맛이 없네.”

“그럼, 오늘 저녁에 고기 먹을까요?”

순화는 종환에게 양복 상의를 입혀주면서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지.”


“어디 보자. 뭐가 왔나?”

선경은 메시지를 읽어보기 시작했고,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졌다.

“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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