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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싫어!

100일 챌린지_Day 92

by 윤소희

“엄마,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싫어.”

지인의 아이가 말했다. 초등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너무 넓고 깊었다. 특정한 친구 하나가 아니라, ‘사람’이라니. 단수에서 복수로, 개인에서 전체로 확장된 단어. 아이는 이미 삶의 진리를 깨달은 듯했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 역시 지난 몇 달, 아이와 같은 말을 되뇌었다. 신뢰가 깊었기에 관계가 준 상처가 깊었다. 그녀가 등장하는 악몽을 자주 꾸었고, 배신감은 시간이 흐르자 사람을 잘못 본 나 자신에 대한 질책과 혐오로 이어졌다. 인간이란 참 쉽게 다치고, 또 잔인할 만큼 아픔을 기억하는 존재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불신과 실망은 전염병처럼 번져,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연락을 끊고, 사라지고 싶었다.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싫어. 그 말이 내 마음의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묘하게도 ‘사람’에 반응한다. 가장 강렬한 고통이 사람에게서 비롯되듯, 가장 강렬한 기쁨 역시 언제나 사람에게서 온다. 회복은 읽고 쓰기를 매개로 한 느슨한 연결을 통해 찾아왔다.


나를 위로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테지만, 그가 슬쩍 드러내준 문장들이 내 상처를 어루만졌다. 삶과 죽음을 저울질하던 그의 깊은 어둠이, 가장자리에서 부서지는 파도처럼 잔잔히 번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상처를 주지만, 또 인간만이 그 상처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직접 닿으면 피 흘릴 것 같은 마음을, 문장 속에 두고 바라본다. 글쓰기는 내게 관계 맺기의 또 다른 방식이다. 멀리서 바라보되, 완전히 끊지 않는 거리. 나는 글을 쓰며 누군가를 맘껏 미워하고, 쓰는 동안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문장은 내가 인간을 향해 던지는 최소한의 신뢰이자,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싫어"라는 아이의 말은 미움의 선언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말이다. 사랑하기에 상처받는다. 무관심한 대상이 던지는 그 어떤 화살도 내게 상처를 낼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을 품은 만큼 다치고, 다친 만큼 다시 사랑을 배운다. 고통은 사랑의 또 다른 표정이다.


인간의 잔인함만큼이나 다정함도 실재한다는 것을 예기치 못한 순간 종종 느낀다. 사람이 싫다고 도망치면서도, 결국 다시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완벽하지 않은 관계들, 불안정한 온기,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모인 세계로.


언젠가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하겠지.

“엄마,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싫어… 그런데 또 사람 때문에 살아져.”

그 문장 안에는 이미 인간의 전 생애가 들어 있다. 상처와 회복, 미움과 그리움, 절망과 희망이 함께 숨 쉬는, 그 복잡한 존재의 아름다움이.



IMG_6351.HEIC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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