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99
그는 99일째까지 약속을 지켰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서서 공주의 창을 올려다보았다. 누구도 그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사랑은 형식 그 자체처럼 성실했고, 신앙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하루,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병사가 공주의 창 아래를 지킬 때,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이른 새벽 불을 켜면,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어둠이 조금 물러나고, 단어들이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누군가 내 귀에 속삭였다.
“100일이 되면, 너는 변해 있을 거야.”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어떤 날은 아무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때면 창문 틈새로 젖은 흙냄새가 들어왔다. 단어들은 비를 맞은 나뭇잎처럼 눅눅하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하루의 무게만큼 문장을 썼다.
시간이 흐르고, 글이 쌓였다. 어느덧 99개의 글이 모였다.
‘100일 챌린지 글 잘 읽고 있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누군가의 하루에 스며든 한 줄의 힘을 느꼈다. 누군가는 위로받았다고, 누군가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럴수록 내 안에는 기쁨과 함께 두려움이 자랐다. 마지막 문장을 쓰면,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은. 완성은 종종 사랑의 종결이 된다.
병사는 왜 100일째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는 알았을 것이다.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 사랑이 식을 수도 있다는 걸. 그는 완성하지 않음으로 사랑을 지켰다. 그의 부재는 그의 진심이었다.
매일 글을 쓰며 깨달은 게 있다. 고심 끝에 지운 단어, 남겨둔 여백, 쓰지 않기로 한 문장이 종종 가장 큰 고백이 된다는 걸. 사람들은 완주를 찬양하지만, 나는 여백을 믿는다. 완성은 끝의 다른 이름이다. 남겨둔 하루, 쓰지 않은 문장, 그 안에서 사랑과 문장은 계속 숨을 쉴 수 있다.
쓰지 않는다는 건 포기가 아니다. 언어가 감당하지 못하는 진실의 무게를 인정하는 일이다. 말보다 깊은 침묵의 층위를.
때로 쓰지 않는 것이 가장 깊이 쓰는 일이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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