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아름답게 사용하고 싶다

정말 느린 느림

by 윤소희

정말 느린 느림


- 이문재


창밖에, 목련이 하얀 봉오리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목련 꽃 어린 것이 봄이 짜놓은 치약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이런, 늦잠을 잔 것이었습니다, 양치질할 새도 없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뿌리들은 있는 힘껏 지구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태양 아래 숨어있는 꽃은 없었습니다, 꽃들은 저마다 활짝 자기를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호객행위였습니다.


만화방창, 꽃들이 볼륨을 끝까지 올려놓고 있는 봄날 아침, 나는 생명에 가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도심으로 빨려들어가야 했습니다, 자유로로 접어들자 차가 더 막혔습니다, 흐르는 강물보다 느렸습니다.


느린 것은, 느려야 한다 느려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내 마음뿐, 느림, 도무지 느림이 없었습니다, 자유로운 자유가 없는 것처럼, 느린 느림은 없었습니다.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구절을 발견하고 잠시 책을 덮었다.

한가한 오후 시집 한 권 펼쳐 놓고 느긋하게 읽고 있었다면 와 닿지 않았을 말.

‘정말 느린 느림’이라는 시를 읽고 있던 그 순간에도 읽어야 할 책들이 눈앞에 쌓여 있었다. 이 책과 저 책 사이를 바쁘게 오가다 발견한 말이었던 것이다.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사용을 잠깐 멈추어 볼까,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억지로 끌려다니며 나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들 사이를 바삐 날개 저으며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싶다.


하지만 마구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대가의 손에서 오래도록 연주되어 길이 잘 든 악기처럼

나는, 나를 아름답게 사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