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차(煎茶)_꿀벌과 천둥

이룰 수 없는 꿈을 계속 꾸는

by 윤소희

어제 오후 느지막이 손에 들었는데, 7백 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소설 한 권을 기어이 끝까지 다 읽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원래 온다 리쿠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꿀벌과 천둥’이라니. 촌스러운 제목 때문에 첫 장을 여는 데까지는 오래 걸렸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도무지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소설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남녀가 뜨겁게 사랑을 나누기는커녕 손 한 번 잡지 않는다. 겨우 2주 간 열리는 피아노 콩쿠르를 묘사할 뿐이다. 피아노 콩쿠르를 그리는 소설을 7백 페이지(원고지 2천3백 매)나 쓴, 그것도 단숨에 읽어내리도록 쓴 온다 리쿠에게 감탄을 하다가, 나중에는 너무 얄미워서 잠을 설쳤다.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기에 새벽에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눈이 저절로 떠졌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환하게 불을 밝히고 책을 읽고 있는, 열 살짜리 아들을 보니 그나마 남아있던 잠마저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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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차의 대략 75~85% 정도를 차지한다는 센차(煎茶)를 마시며, 온다 리쿠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가 보려 한다.

책 속에서 어린 천재 피아니스트가 연주회 전에 마시던 보온병 안에 든 따뜻하고 달콤한 홍차를 떠올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새벽에 달콤한 건 왠지 피하고 싶어 맑은 센차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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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구상만 하고 결국 쓰지 못했던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인 소설도 떠올라, 더욱 얄미운 온다 리쿠. 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글이 내 안의 뭔가를 자극한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계속 꾸는 거로군. …”

(온다 리쿠 <꿀벌과 천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