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인사철 어수선함

시절인연의 마침표에서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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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헤어짐’에 유난히 약한 아이였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매년 봄마다 이별을 연습했습니다. 같은 반이 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친했던 아이들과 반이 갈라질 때마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자주 만나자.” “바로 옆반이니까.” 쉬는 시간이면 낯선 교실을 지나, 익숙한 얼굴들이 있는 반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곳에만 가면 안심이 되었으니까요. 쉬는 시간마다 옆 반으로 달려가 복도 창문에 매달려 얼굴을 확인해야만 안심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습니다. 친구 반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점점 줄었고, 어느 순간 나는 새 반의 공기와 새 친구들의 웃음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학교는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하루하루’로 가르쳤습니다. 처음엔 비극 같던 이별이, 어느새 다음 시간표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는 과정. 그렇게 우리는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근육을 조금씩 키우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다른 종류의 헤어짐을 배웠습니다. 초중고처럼 같은 공간에 매일 묶여 있는 관계가 아니라, 마음과 선택으로 이어지는 관계. 그래서 더 어렵고 더 많이 흔들렸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인간관계의 모양을 따라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오니, 헤어짐은 또 다른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고, 같은 프로젝트를 버텨내고, 서로의 피로를 말없이 알아보던 동료가 어느 날 퇴사를 합니다. 누군가는 다른 부서로 이동합니다. 누구는 더 넓은 곳으로, 누구는 더 빛나는 곳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마음속에 이상한 파문이 일어납니다.


‘나는 여기 이렇게 있어도 되나?’
‘저 사람은 저렇게 떠나는데… 나는 뭘 하고 있지?’


업무에 익숙해질수록, 새로운 부서로 가는 일이 귀찮고 두려워집니다. 이만큼 쌓아 올리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겁이 납니다. 그렇다고 계속 머물자니, 어딘가 고인물이 되어 도태되는 느낌이 듭니다. 움직이자니 불안하고, 머물자니 답답한 마음. 어느 쪽에도 마음이 온전히 놓이지 않습니다. 이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우리는 늘 흔들립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보다 어린 후배들이 부담스러워할까 조심스러워지고, 나는 내가 점점 작아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어느덧 거울 속의 나는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선배’가 되어 있습니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회사라는 공간에서 혼자 이리저리 부초처럼 떠도는 기분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어떤 선택이 나를 덜 후회하게 할까’를 고민하지만, 정답은 늘 내일로 미뤄집니다.


가끔은 회사 안에서 혼자 고립된 기분이 듭니다. 이러는 것이 맞는 건지, 또 다른 도전이 필요한 건지. 다른 사람들의 이동을 바라보며 복잡해지는 생각들은 어쩌면 내가 아직 단단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단하면, 누군가 떠나도 흔들리지 않을 텐데. 단단하면, 비교 대신 응원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감정은 아주 오래된 기억을 데려옵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마지막에 혼자 남아 있던 순간. 햇빛이 서서히 기울고,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공간이 갑자기 넓어 보이던 그 시간. 나는 그때도 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나만 남았구나.”라는,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함.


어쩌면 나는 아직도 ‘세상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동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짐을 싸는 모습에서 저는 다시 그 시절의 놀이터를 봅니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가로등 불빛 아래 혼자 남겨진 아이.


비워진 옆자리를 바라보며 퇴근길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달이 떠 있습니다. 늘 그 자리에서, 말없이 밝습니다. 누가 떠나도, 무엇이 바뀌어도, 달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빛을 보며 생각합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어쩌면 이별을 덜 아프게 하려는 위로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현실적인 안내서인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만나고, 붙잡고, 다짐하지만 결국 각자의 길로 흘러갑니다.


그럼에도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고, 잠시 같은 방향으로 걷습니다. 그리고 헤어짐을 통해, 혼자 서는 법을 조금씩 배웁니다. 오늘도 나는 완벽히 단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봅니다.


달은 여전히 밝고, 나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누군가 내 곁을 떠나는 것은 내가 부족해서도, 그 사람이 냉정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그와 나의 '함께할 시간'이 다했을 뿐입니다.


비워진 옆자리는 누군가의 배신이 아니라, 나에게도 곧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고장일지도 모릅니다. 떠난 이의 뒷모습에 서운해하기보다, 그가 머물다 간 자리에 남은 온기에 감사하며 나만의 속도로 다음 정거장을 준비해 보려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영화 속 주인공이고, 조연들이 퇴장하는 이유는 주인공의 서사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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