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한 파주 헤이리마을 여행
친구는 입맛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면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입맛이 없는게 아니라, 나이들어서 입맛이 고급이 되어서 그려! 파주 도토리 국수 맛있었잖여"
그렇다. 친구와 나는 입맛이 없는게 아니라 서울 음식이 맛없다 생각하는 것이다. 친구는 전라도, 나는 충청도 출신이다. 충청남도 논산 평야 출신으로서 윤기가 돌지 않는 퍽퍽한 쌀밥과, 달지 않고 비싼 딸기는 용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친구는 전라도 출신으로서 야박하고 푸석한데 값이 비싼 서울의 밥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우리는 여행을 갔다하면 "서울에는 이 맛이 없어"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하게되었다.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날이면 카톡으로 "입맛이 뚝 떨어져"라고 냅다 올리고 보는 것이다.
이 둘이 파주로 나들이를 갔다. 이 나들이는 2024년 봄, 사진도 모두 그때 찍은 것이다.
심학산 도토리국수라는 집의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다. 그렇게 서울이 야박하다 정이없다 차갑다 욕했지만 우리도 서울 사람이 다 되었던 것이지. 파주 시내도 아닌 구석에 그렇게 사람이 많다는 것에 깜짝 놀라버렸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대기표를 뽑아야 하고 그것도 한참 뒷 번호를 받았다. 시골에 가니까 대충 가면 되려니 생각했던 서울놈들의 뒷통수를 도토리국수가 세게 친 것이다. 언제 들어갈 수 있냐고 물어도 그건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포기하고 갈 순 없었다. 도토리 국수를 우리가 얼마나 기대했는데! 밖에 서서 한시간 반을 떠들었다. 친구의 새로운 취미활동 얘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갔다. 젊은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는 것 같아 부러웠지만, 도저히 같이 할 엄두는 안나는 취미생활이었다. 이렇게 기다려 들어가 먹은 도토리쟁반국수와 도토리전은 정말 말도 못하게 맛있었다.
도토리쟁반국수가 2인분 정도, 전도 1.5인분은 되보이게 컸는데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깨끗하게 먹고 나왔다. 이날 이후로 "입맛이 없는게 아니라, 나이들어서 입맛이 고급이 되어서 그려! 파주 도토리 국수 맛있었잖여"가 시작되었다.
국수를 먹고 헤이리 마을로 이동해 '카메라타 뮤직 스페이스'라는 곳에 갔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곳인데, 음향 장비가 좋아 들을 맛이 났다. 앉아서 책을 보거나 일기를 쓰거나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날 친구는 '코'라는 소설을 읽은 얘기를 해줬다. 주인공이 자고 일어나니 코가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어느날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코에게 가서 제발 돌아와달라고 애원하고 코는 그를 무시하는 내용이란다. 지금 찾아보니 니콜라이 고골 작가의 '코'라는 작품인 것 같은데, 읽겠다고 얘기하고 아직 안 읽었다...
헤이리 마을을 산책했다. 서울에는 벚꽃 시즌이 끝나가는 때였는데, 북쪽이라 그런지 아직 벚꽃이 있었다. 2023년에는 포천에서 벚꽃을 봤는데, 2024년에는 파주에서 벚꽃을 봤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좀 늦더라도 벚꽃이 피어있으니 괜히 봄도 더 길어지는 것 같다.
봄에 헤이리마을은 아기자기하게 아름다웠다.
이날 헤이리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나무로 액막이 명태를 만들어놓은 것을 샀다. 차에 타자마자 걸어두었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도 차에 그대로 걸려있다. 볼때마다 그때의 파주 나들이가 생각나고 기분이 좋다. 이후로 무사고였으니 제 역할도 하는게 아닌가 싶다.
이 친구와 올해 통영 여행도 같이 간다. 서울에서 집나간 입맛이 통영에서 얼마나 돌아올 것인지 기대가 된다. 통영 여행이 우리에게 또 다른 도토리국수를 만들어주기를, 또 다른 헤이리의 봄을 보여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