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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r 06. 2024

교장실에서 수업하는 학교장입니다.

학생과 소통하는 방법

.



1학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교장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업 내용은…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면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지?, 나의 꿈과 재능을 찾아 진로와 적성에 맞는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친구와 선생님과의 바람직한 관계 맺음은 어떻게 하는지?, 학교와 교장의 비전과 목표는 무엇인지?, 학교장이 바라는 우리 학생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50분 동안 오랜만에 아이들 눈을 보며 이야기 나눴습니다. 주제 자체는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어 제가 살아온 삶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수업했습니다.


교실이 아닌 교장실에서 수업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각 반 교실에서 하려고 했으나 이 기회에 교장이 어떤 공간에서 일을 하는지도 보여줄 겸 교장실에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교장실에서 수업하는 속내는 따로 있습니다. 공간이 주는 힘을 빌리고 싶었습니다. 분필을 잡은 지 10년이 넘어서 학생들이 주인인 교실에 선뜻 나서기가 많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어색하고 낯선 첫 만남이 주는 침묵을 제가 이겨낼 수 있을까 많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교장실에서 수업을 하기로 맘먹었습니다.


다행히 학급당 학생수가 많지 않아서 의자 몇 개만 더 준비하면 됐습니다. 교장실에서의 수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았습니다.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제게 익숙한 공간이 주는 안도감이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반면 아이들은 처음 보는 교장실이 낯설고 어색하고 신기해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학생들은 공식적으로 교장실에 들어온 것이 처음일 것입니다. 수업 마치고 나갈 때에는 교장 책상 위에 뭐가 놓여있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책장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 있나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는 냉장고도 열어서 그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는 간 큰 녀석도 있었답니다.


엄밀히 말하면 교과 수업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교과 수업은 학문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저도 교과 연구를 수년 간 했지만 교편을 놓은 지 오래되어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입생이 학교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오리엔테에션을 한 셈입니다.


교장실 수업을 통해 얻은 것은...


1학년 모든 반을 수업하면서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50분 수업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교장이 된 후 틈만 나면 선생님들께 힘든 수업을 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경험을 다시 해보니 사명감만으로 교사 노릇하기가 녹녹지 않음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의 성장은 교실에서 만나는 교사의 역량과 비례한다는 것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이 힘든 수업을 편안하게 온전히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진심으로 격려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교장실 수업의 장점은 학생들이 온전히 한 인격체로서 존중과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점입니다. 평소 어렵기만 한 학교장이 아이들 앞에서 존댓말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효과가 좋습니다. 이렇게 존중받는 아이는 자기 자신은 물론 친구와 선생님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질문이라도 성실히 답변해 주고 학교장도 학생처럼 동등한 인간이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비전과 목표, 학교장이 생각하는 학교 모습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으로 교장실 수업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집단의 구성원에게 바라는 가치를 조직의 장이 직접 나서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행위는 매우 가치 있다고 봅니다. 우리 학교는 작년까지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교복을 다시 입는 것이 교육적으로 가치 있다고 판단되어 올해부터 교복을 제대로 입고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학생, 학부모, 선생님과 논의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학생이 교복 입고 등교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장이 직접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시간을 갖은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방향과 목표라도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스며들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다소 힘이 들더라도 때론 학교장이 직접 나서서 학생들에게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478



1학년 대상 학교장 수업이 거의 끝나갈 시점에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2학년, 3학년 학생(학부모님)들이 본인도 교장실에서 수업을 받고 싶다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고민이 큽니다. 선생님들처럼 교실 수업은 하지 않지만 학교장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고 더군다나 학기 초에 매우 바쁘기 때문입니다.

이 요구사항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해결할 생각입니다.

여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학생과의 대화의 채널을 항상 열어둘 생각입니다.


수업 후 학생들의 반응은. . .


학생 A : 중학교 때 아무리 교장선생님과 잘 지내고 교장선생님께서 편히 다가와주셔도 교장실에 들어가 직접 말을 듣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 기회가 너무나도 새로운 경험이었고 많은 여러 생각을 들게 해 주시는 수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B :  힘들다고 혼자 꿍하지 말고 담임선생님, 상담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그래도 힘들면 교장선생님께 와도 된다는 말씀이 너무 든든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 C : 힘들 때 친구를 찾고, 선생님을 찾고, 교장선생님을 찾아라! 교장실은 항상 열려 있다. 


학생 D : 최연소 교장선생님이시다!! 너무 학생들과 소통을 잘해주시고 이해도 잘해주신다. 교장실에서 특강을 해주시다니!! 그래서 너무 잘 생기셨다.


학생 E :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학교를 소개해주시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셔서 긴장이 풀리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고등학교 첫 시작이 매우 긴장이 되었는데, 많은 정보를 알려주시고 걱정하지 말라고 친근하게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내 진로를 어떻게 개척해야 할지, 잘할 수 있을지 막막했는데 덕분에 마냥 막연하게만 느껴지지 않았고, 따뜻한 용기를 얻어가는 수업이었다.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내 꿈을 위해 노력하고, 힘들 땐 선생님과 교장선생님께 도움받으며 즐겁고 알차고 슬기로운 마지막 학교 생활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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