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rosoft에서 이직을 결심하다 - 5
면접 준비를 하면서 LinkedIn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은 리크루터들과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세 곳, 대기업 네 곳과 일단 전화 면접을 보기로 했다.
이상적으로는 내가 가장 관심이 없는 회사부터 먼저 시작을 해서 인터뷰 감을 익히고, 뒤로 갈수록 정말 가고 싶은 회사들 위주로 인터뷰를 보는 것이 맞았겠지만,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정 조율에 제한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관심 있는 회사들과의 면접을 우선적으로 보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첫 번째 면접은 요즘 한창 성추행/폭행 관련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차량 공유업체와의 전화면접이었다. 내가 면접을 볼 당시만 해도 이런 안 좋은 일들에 대해서 알려진 것들이 거의 없었고, 상장 시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질 가능성이 높은 회사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다만 샌프란시스코 본사에 있는 데다 내가 별로 관심이 없는 infrastructure 부서의 포지션이라는 점이 마음에 좀 걸렸다. 모든 method의 time complexity가 O(1)인 특정 자료구조를 만드는 문제였는데 쉽지는 않았지만 준비를 하면서 비슷한 문제를 풀어보았기에 큰 무리 없이 풀었다. 며칠 있다 리크루터에게서 다음 단계인 현장면접으로 넘어가도 좋을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곧 스케줄을 잡기 위해 전화를 주겠다던 리크루터가 그 후 이 주가 넘도록 전혀 연락을 주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먼저 메일을 보내니, 며칠 동안 휴가를 다녀왔다며 곧 연락을 주겠단다. 짜증이 몰려오는 것을 참으며 며칠을 기다리니 전화가 왔는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전화 면접을 보던 당시에는 TO가 있었는데 회사 사내 이동이 진행되면서 자리가 없어져서 새로운 팀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회사가 조그만 스타트업이면 몰라도 직원 수가 만 명이 넘는 큰 규모의 회사에서 겨우 머릿수 하나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이런 식으로 면접자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는 것도 화가 치밀었다. 한참을 따지니 다시 전화면접을 진행하지 않고 바로 다른 팀과 현장면접을 볼 수 있도록 조율하겠다고 하기에 전화를 끊었다. 그즈음 돼서 CEO의 성폭행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면접 과정에서의 경험과 회사 이 사진의 문제가 더해져서 회사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그리고도 이주쯤 지나서 다시 리크루터에게 연락이 왔다. 아직도 맞는 팀을 찾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전화를 받았을 무렵에는 나도 다른 회사에서 받은 오퍼들을 손에 들고 있었고 더 이상 기다릴 수도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면접을 진행하지 않기로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두 번째 회사는 LinkedIn을 통해서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다. 곧 IPO를 앞두고 있는 스타트업인데 면접을 볼 생각이 있냐는 메시지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Identity as a Service,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이었다. 본사는 실리콘밸리에 있는데 클라우드 기반의 사업을 하는 팀이 시애틀 근교에 있고, 회사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어서 지금이 합류하기 최적의 시기라고도 했다. 지금까지 몇 년 간 클라우드 컴퓨팅 쪽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터라 내가 클라우드 전문가가 되려 한다면 꽤나 좋은 기회일 듯도 싶었다. 관심 있다는 메일을 보내고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내일 오후에 인사팀과 짧게 인포세션을 가질 수 있냐는 답장이 돌아왔다.
다음날 오후, 약속한 시간에 전화가 걸려와 받아보니 인사팀이 아니라 회사의 Vice President였다. 인사팀보다는 자신이 더 내 질문들에 대답을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전화했단다. 일개 개발자 채용에 VP가 직접 신경을 써준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한 회사의 상무나 이사가 말단 사원을 채용하는데 개인적으로 전화를 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업무가 어떤지, 회사의 가능성이 어떤지를 떠나서 VP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날 밤 인사팀에게서 전화가 와 면접 일정을 잡았다.
면접 당일, 회사에 도착하니 첫 번째 면접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헤드헌터는 같이 점심을 먹고 면접을 보게 될 거라고 했는데 정보전달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바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덕분에 하루 종일 굶은 채로 면접을 볼 수밖에 없었다...) 총 다섯 명과 알고리즘 + 시스템 디자인 관련된 면접을 봤는데 난이도로만 보면 대기업들보다 훨씬 난이도가 있고 복잡한 문제들을 제시하는 편이었다. 다만 그 이유가 그만큼 더 뛰어난 사람을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뽑아내려 하는 듯했다. 제시한 문제를 풀고 나면 잠시도 숨 고를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조금 더 어려운 난이도의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화장실 한번 다녀올 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다섯 시간이 넘게 인터뷰를 보고 나서야 채용 매니저와의 면담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보통 며칠에서 몇 주가 지나야 인터뷰의 결과를 알 수 있는 대기업들과는 다르게 매니저는 바로 내게 채용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주었다. 자세한 조건은 인사팀과 조율을 마친 뒤 알려줄 수 있지만 나를 면접했던 팀원들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전달받았기 때문에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내 생각을 물었다. 솔직히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은 너무 좋았지만 쉽게 함께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직의 목적 중 하나가 다른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것이었고 하루 동안 면접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사무실의 분위기도 내가 바라던 분위기와는 조금 달랐다. 마이크로소프트 출신들이 많아서 그런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일단 생각보다 빨리 결과를 알려준 것에 대해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고 현재 진행 중인 다른 회사와의 면접을 마무리한 뒤에야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달했고 매니저는 고맙게도 자신도 이해하고 동의한다며 며칠 뒤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을 해 주었다.
하루 종일 계속된 면접에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를 하나 없었다는 사실에 마음은 훨씬 가벼워져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바로 다음 날은 대기업 중 내가 가장 염두에 두고 있던 회사와의 면접이 있었다. 일정이 꼬여서 가장 먼저 전화면접을 보았던 회사였다. 지금 생각해도 절대로 쉽지 않은 문제인 데다가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찌어찌 운 좋게 통과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는 말을 듣고도 실감이 나기는커녕 그 치열했던 긴장감에 몸서리가 쳐져서 가능한 준비를 많이 하려는 마음에 본 면접을 최대로 뒤로 미뤘었는데 어느새 면접일이 다가온 것이다. 면접이 아침 일찍 시작이었기 때문에 씻고 바로 누우려고 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인터뷰 문제를 몇 문제 더 복습한 뒤에야 수면제 한 알을 먹고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면접을 보게 될 회사 로비에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