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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초 Mar 30. 2020

독서는 이력서용 취미가 아닌데.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시간이 뜨거나, 약속 없는 휴일엔 꼭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른다. 서점은 혼자 가는 것이 가장 좋다. 타인의 구애를 받지 않아야 읽고 싶은 만큼 보고 올 수 있으니까. 가면 우선 베스트셀러 칸에 뭐가 바뀌었는지 구경하고, 신간을 구경하고, 평소에 궁금했던 책을 검색해서 들여다본다. 나는 꽂히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서적을 죄다 뒤져보는 버릇이 있는데, 서점에 가서도 작가명을 위주로 책을 검색한다. 알랭 드 보통, 유시민, 문유석, 이병률, 이석원, 박준, 무라카미 하루키 등.. 요새는 중국 작가들이 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중한으로 옮겨진 책이 꽤 괜찮은 게 많아 놀랐다.


누군가가 굳이 묻는 다면, 독서가 취미로 된 지는 5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책이야 꾸준히 읽어왔지만, 취미라는 정의는, 없는 시간을 만들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지속적인 일이 되면서부터였다. 지금 생각하니 예전에는 당당하게 내 주장을 피력하고 세상을 아는 척했다는 게 참 순진했다 싶고, 약간 부끄러운 마음까지 든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 주장을 강하게 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모순적인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너는 취미가 뭐야?

- 나는 책 읽는 거 좋아해.
- 아, 그런 거 말고, 진짜 취미가 뭐야?


책을 읽는 것이 이력서에 한 줄처럼 어색해진 사회에서 독서를 취미라고 하면, 소개팅이나 면접을 볼 때 말하는 정석 같은 대답이라며 오히려 믿어주질 않는 웃픈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이런 사회적 문화에선 한국 특유의 겸손과 자기 비하 그 사이 경계에서 풍자스럽게 던지는 농담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도 '독서'가 포함된다.


- 나는 책을 1장만 넘기면 잠이 들어서 숙면용으로 봐.
- 나는 책이랑 진짜 안 친해. 1권도 찾아본 적이 없다.
- 독서? 그게 뭐야? 먹는 거야?


책을 꾸준히 읽기 시작하고, 비로소 취미라고 생각하게 된 후로부터,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은 결코 내가 당당할만한 일이 아니며, 반대로 독서하는 것이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느낀 차이는,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의 넓이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부터 비로소 세상을 바라볼 때 사회나 현상 너머까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확장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왜 책을 읽을까?


어떤 종류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와 닿게 말하면 나는 선생님이나 친구 정도로 생각한다. 책을 꾸준히 읽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니, 아마도 불안한 어른으로 홀로 서기를 하면서부터 였다. 학교, 부모, 선생님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잔소리하고 꾸짖어 주는 존재가 사라지면서 생각과 가치관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존재가 책이 되었다. 조금 극단적으로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어른은 남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바른 생각, 선조의 지혜, 타문화 타산업의 넓은 시야를 거절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어른은 생각과 마음이 틀에 갇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지 않아" 따위에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은 이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라고 선입견을 가져버리곤 한다. 그리고 그 선입견을 깨준 사람은 드물다.


나를 성장시켜주는 당근과 채찍 같은 존재로 책을 두다 보니 생긴 버릇이 있다. 바로 휴대용 포스트잇으로 책에 표기하는 것. 감명 깊은 문구나 내가 배울 만한 이야기는 색을 구분하여 책에 붙여 놓는다. 한 권을 마치고 나면 그대로 블로그에 옮겨 놓고 두고두고 본다. 서평을 따로 적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나의 서평이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얕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평은 따로 일기로 적어놓고 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해외에서 자랐다. 그때는 해외에서 한글로 된 책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소포로 보내 주거나, 어쩌다 한국 마트 끝 모퉁이에 책 코너에 업데이트되는 이미 지나고 지난 베스트셀러 정도.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어렸을 적 부모님이 서점에 자주 데려가 주거나,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어서 자연스럽게 취미로 독서를 갖게 된 경우를 종종 보았다. 참으로 현명한 교육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가 나에게 자연스럽게 취미로 귀결될 환경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아쉽게 생각한다. 요새는 이북 시장도 활발하고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한국 서점도 해외에 많이 생기면서, 더 좋은 환경이 제공되고 있어 다행이다. 실제로 재작년, 미국에서 지낸 1년 동안, 알라딘 서점이 맨해튼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집이 그리울 때 그곳이 숨통을 터주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되어 주기도 했다.


무엇이 사회를 '책 읽는 것'이 그저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거짓 취미'라는 인식을 갖도록 한 것일까. 치열하고 냉정한 한국 교육 문화 때문일까, 남들 다 보고, 그래서 보지 않을 수 없는 교과서에 십 년 가까이 파묻혔던 아이들에게 책이란 '족쇄'같은 기분이 들어서일까. 우리나라 교육의 개선점에 대해 할 말은 끝없이도 많지만, 세계에서 높은 비율로 인재를 창출해내는 시스템인 것은 오해의 소지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을 터, 아프지만 눈 감는 슬픈 현실이다.




만약 당신도 비슷한 고민으로 망설이고 있다면


나보다 책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많아 스스로 책 읽는 것이 취미라고 하는 게 민망할 때도 있지만, 가끔 지인들에게 책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대부분 물어보는 질문이 비슷하다.


- 요새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거를 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추천해 줄 만한 책 있어?

- 어떤 책이 읽고 싶은데?

- 가볍고, 질리지 않고, 어렵지 않은 책이랄까..


그렇다. 지인들은 모두 삶을 사회가 원하고 옳다 여기는 절차대로 살아왔고, 뭐든 그렇게 시작하는 습관이 들어 입문을 "제대로" 혹은 "옳은 방법"으로 시작하고 싶어 해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보통 유명 에세이, 아니면 여행 산문집, 혹은 시집을 추천한다. 술술 읽히기 좋은 책으로.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으면 해서


내가 책을 추천받는 노하우는, 책을 읽고 싶은데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을 땐, 평소 말이 잘 통하는 지인에게 책을 추천받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끝까지 읽기 재밌는 책을 추천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거나 작가의 가치관이 나와 비슷해야 재밌게 읽히는 법, 우리는 어디서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아간다. 자기 계발서도 결국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나 '나보다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본받고 싶어서 읽는 것이고, 그런 작가의 글을 읽어야 나에게 강한 영감을 준다고 믿는다. 하여, 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접근하지 않고 '나보다 삶을 오래 산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이렇게 대처했구나.', '나도 이런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지.'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조금은 더 흥미롭게 읽히지 않을까 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문학적 소양을 쌓는 데엔 산문, 시집만큼 좋은 게 없을 것이다. 특히 시집은 짧고 책이 가벼워서 소지하기도 좋으니,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시집을 읽고, 여행을 갈 땐 여행 산문을 들고 가면 삶의 질이 높아질 거라 나는 보장한다. 가까운 미래에, 패션 아이템 같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최근 카페에 보이는 카페랑 1도 상관없는 킨폭스 잡지가 놓여있는 것을 연상해서, 오늘 코디나 기분에 따라, 오늘은 임경선의 <자유로울 것>을 들고나가고, 여행길엔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들고나가고, 혼자 센치해져 카페로 가는 길엔 이석원의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을 들고 가는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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