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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Oct 25. 2023

좀비 해파리, 데뷔하다.

단요 장편 소설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를 읽고


“해파리에 대해 찾아보니 ‘헤엄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수면을 떠돌며 생활한다’고 나와 있었다. 

어쩐지 울컥했다. 헤엄치는 힘이 약하면 수면을 떠돌며 살면 된다.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도대체 지음      


 몇 년 전 도대체 작가의 에세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의 글 일부가 SNS에서 많은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짧은 글과 함께 바다 위에 편히 떠 있는 해파리 그림이 많은 이에게 위안을 주고 있었는데, 그만큼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일 테다. 

 

 이 글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미 해파리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짜장도 좋고 짬뽕도 좋고, 후라이드도 좋고 양념도 좋은 나는 그럭저럭 주변 상황의 흐름에 따르는 사람이다. 새로운 환경과 시도 앞에서 겁이 많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평안을 바라며 가만히 있고 싶어 한다. 어찌 보면 태평하고 어찌 보면 회피하며, 외출 한 번에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나를 위해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일정 구성. 아마 조금이나마 가진 체력으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의 모습이, 프리랜서이면서 쉽게 지치는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물론 짜장, 짬뽕이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의 도덕, 비도덕적 행위와 비교될 순 없지만, 아마 내 머리 위의 수레바퀴는 빨강, 파랑이 적당히 반반 아닐까?

 

 해파리의 생존 방식이 궁금해져 더 찾아봤다. 5억 년 전 지구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는 해파리는, 종에 따라 수면 가까이 또는 수면 아래에서 부유 생활을 한다. 근육 수축으로 물을 아래로 밀어내며 이동이 가능하지만, 물을 밀어내는 것만으로는 해파리가 움직이는데 턱없이 부족해서 주로 조류의 흐름에 의존한다고 한다. 이런 수동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해파리는 플랑크톤(plankton)으로 분류되는데, 플랑크톤의 어원이 그리스어의 ‘방랑자’(planētes)라고 하니 해파리의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좀비 해파리’의 존재도 알게 됐다. 좀비 해파리는 죽은 뒤 썩어가는 몸에서 살아있는 살점들이 떨어져 나와 합쳐지고, 다시 어린 해파리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죽음을 맞은 뒤 5일 안에 일어난다니, 마음만 문과인 사람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경이로움이다. 해류 따라 바람 따라 부유하는 해파리. 신비로운 꿈처럼 멍하니 떠 있는 듯하지만, 물 생활 별거 아니라는 듯 오늘도 어딘가에서 수축, 팽창하는 해파리. 죽어 썩어가도 살아있는 살점을 모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좀비 해파리의 생존을 보고 나니, 내가 해파리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게 괜히 멋쩍어진다. 

 

 첫 번째 그림책이 출간된 지 올 11월에 10년이 된다. 생일보다 마음이 더 일렁이는 걸 보니 그림책 출간 10주년이 내게 더 의미 있는 모양이다. 그림책 작업 기간까지 포함해 12년, 13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니, 내게 다가오는 다정한 이들의 마음에 독침을 쏴댄 것만큼은 해파리와 비슷하다. 그리고 나 하나 감당하기도 버거워 주변 모든 것에 무관심했던 걸 떠올리니, 머리 위 수레바퀴의 파랑이 훅 줄어든다. 


 그만둘까, 했지만 10년이 지나니 할 수 있는 말이 생겼고, 말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이 ‘조금 더 알 것 같다’는 소금 한 꼬집만큼의 희망과 기대, 궁금함에 기대어 나도 ‘그다음’을 생각하는 것 같다. 그냥 떠다니던 평범한 해파리도 이렇게 좀비 해파리가 되는 걸까? ‘아, 이제 파도 좀 탈 줄 알겠는데 죽을 때가 되다니.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하며 살아있는 가능성들이 모여 다시 새로운 해파리가 되는 걸까? 나도 내게 남아있는 작은 창작의 기쁨과 조금의 체력을 모아 다음 책과 그림을 생각해본다. 

 

 지난달 아빠와의 전화 통화가 생각난다. ‘작가는 죽지 않는다. 책과 이름이 남으니까. 이어령도 죽은 게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이어령의 책을 계속 찾지 않냐. 그러니까 놀지 말고 열심히 해라.’ 


어쩌면 작가는 정말로 ‘좀비 해파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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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거대한 동물성 플랑크톤 (이미지 사이언스, 박수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8889&cid=58945&categoryId=58974

⦁해변의 불청객이자 방랑하는 육식 동물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2015. 7.25)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484278&cid=46693&categoryId=46693

⦁팀플래너리 박사의 동물 세계 대탐험 - 물에 사는 동물 '해파리'

https://www.kidshankook.kr/news/articleView.html?idxno=4626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_수레바퀴 이후>

단요 장편소설 | 사계절,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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