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를 달리는 자전거
아흐준이 그렇게 자랑하고 자랑하던 여름이 왔다. 그간 코로나 때문에, 혹은 혹독한 겨울 날씨 탓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몬트리올 정경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몬트리올로 이사 오기 전에 나는 공용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곤 했다. 인천 연수구에 쿠키 자전거와 카카오 자전거가 있다면 몬트리올에는 BIXI가 있다.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BIXI를 타고 아흐준이 미리 발굴해 둔 여러 장소를 돈다.
몬트리올에는 웬만한 곳에 자전거 도로가 깔려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도로도 당연히 있다. 그럴 땐 자동차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야 하는데, 나에게는 무지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나를 믿을 수 없었다. 자전거 타는 건 좋아하지만 눈앞에 사람이나 자전거만 있어도 중심이 흔들리는데 차도라니. 그리고 운전자들을 믿을 수 없었다. 캐나다 사람 구경도 못 해봤는데, 차를 어떻게 믿으라고. 게다가 이곳의 자동차들은 한국의 자동차보다 덩치도 커서 살짝만 부딪쳐도 입원 신세가 되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선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꼭 타고 싶었으므로 나는 헬멧을 주워 쓰고 아흐준을 따라 나섰다.
그냥 볼 때는 몰랐는데 자전거로 직접 도로를 달려 보니, 도로가 상당히 넓었다. 나는 뒤에 오는 차의 진로에 방해될까 봐 최대한 주차된 차쪽으로 붙어서 페달을 밟았다. 그러자 아흐준이 옆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가끔 주차된 차 문이 열릴 때가 있어서 늘 간격을 두고 달려야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러면 뒤에 오는 차는? 뒤에 오는 차가 뭐? 내가 도로 중앙을 달리면 뒤에 오는 차는 어떻게 앞으로 지나가? 그 차는 알아서 갈 거야. 너는 사람만 조심하면 돼. 여전히 겁났지만 차문에 부딪쳐서 사고가 나는 모습이 생생히 머리에 그려져서 나는 조금씩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눈이 뒤에 달린 것도 아닌데, 차가 뒤에 있음이 느껴질 때면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런데 뒤에 있던 차가 중앙선을 가뿐히 넘어 우리를 비켜 갔다. 헐. 그 다음 차도. 다다음 차도. 그럼 건너편에서 오던 차는 더욱 옆으로 비켜 주거나 잠시 서서 기다려 주기도 했다.
한번은 자동차 뒤에 정지하고 있다가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이 됐길래 90도로 꺾어서 도로를 건넜다. 그러자 아흐준이 또 주의를 주었다. 이건 돌발행동이야. 사람들이 놀랄 수 있어. 네가 차라고 생각하고 도로를 이용해야 해.
도로 위의 차는 바퀴가 네 개 달렸으니 바퀴가 두 개 달린 자전거에게 맞춰 주고, 바퀴가 두 개인 자전거는 바퀴가 없는 사람에게 맞춰 주고. 장비를 덜 갖춘 상대를 우선시 여기는 도로 위의 무언의 약속을 따르며, 나는 그 약속을 도로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나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속도와 비례하게 몬트리올의 풍경이 시야 뒤로 흩어진다. 아쉬워서 속도를 낮춰 보기도 하고 바람을 만끽하고 싶어서 속도를 높여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속도를 달리하며 매순간을 만끽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