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덕질 시대입니다.
이 각박한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마치 오아시스를 찾듯이 어떤 대상에게 호의를 갖고 몰두하곤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요즘은 어떤 대상을 깊게 좋아하는 행위는 취미의 연장 선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 대상은 아이돌일 수도 있고, 만화나 게임의 캐릭터, 혹은 각종 창작물, 혹은 자신이 아끼는 사물이나 행동 양식일 수도 있겠죠.
좋아하는 대상에게 정성을 다해 시간과 마음을 쏟는 일을 우리는 덕질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전부터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덕질에 관한 글을 공개해 왔습니다.
저 역시 한 명의 덕질러로서, 인생 중 덕질을 하지 않았던 기간을 꼽기 힘들 정도로 오랜 시간 무언가의 덕질을 해왔습니다. 힘든 시기에 덕질을 통해 큰 위안을 받은 경험도 있죠. 한편으로는 현업 마케터로서, 제삼자의 시점에서 팬들의 애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덕질이 보편화되고 덕질러가 충성고객으로 인식됨에 따라, 마케팅 분야에서 덕질은 핫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기적인 매출 확보는 물론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의 구축까지 마케팅 전반에 덕질을 활용하는 사례들도 부쩍 늘었죠.
최근 일본의 마케팅 전문지 [선전회의(宣伝会議/ 2024년 10월호)]에서 현업자가 주목하는 트렌드 1위로 덕질이 뽑히기도 했습니다. 업계의 수요를 따라가듯 덕질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 또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매거진에서도 여러 관점과 사례들을 통해 덕질을 풀어보며, 요즘 덕질에 대한 해상도를 높여보려 합니다.
우선 매거진 첫 글이니 만큼 서론으로서 거룩한 척하는 이야기들을 좀 해볼게요 (ㅎㅎㅎ..)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저는 이 시가 덕질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대상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가 나에게로 와서 최애가 되는 것이니까요.
흔히들 최애는 신내림과 같다, 입덕은 하늘에서 점지해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입덕 순간은 주체자가 처한 상황이나 경험, 즉 고유의 맥락이 관여합니다. 주체자만의 고유한 스토리를 통해 대상에 대한 인지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덕질을 해석하는 서적 [최애의 과학(推しの科学 / 저자 : 쿠보 카와이 나미코)]에서는 '투사(프로젝션)'에 대입하여 덕질을 대상자의 내면과 세상을 잇고자 하는 행위 그 자체라고 표현합니다.
인지과학이 말하는 '투사'는 사람이 어떤 정보를 수용할 때, 그 정보의 표상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그 결과 물리 세계가 의미를 가진 세계로 바뀌게 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본 서적의 후반부에서는 영국의 진화 심리학자 로빈 던바의 말을 인용하여, 사람만이 가지는 문화적인 측면으로서 '종교'와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종교와 이야기 이 두 가지는 양쪽 다 마음속에 있는 가상의 세계에 의존하며, 일상생활과 다른 세계의 존재를 상상하지 못하면 성립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언급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적 능력의 혁명적인 변화 = 허구의 존재를 논하고 믿으며 공유할 수 있는 능력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어떤 대상을 재해석하고 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과정을 덕질에서 빼놓을 수 없듯이, 덕질의 메커니즘은 '투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덕질은 사피엔스의 특성에서 비롯된, 사피엔스이기에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덕심을 노리는 마케팅 사례들을 보면 종종 단기적, 단발적인 성과에 집중하는 HOW 위주의 플랜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타깃과 팔고자 하는 물건이 명확하다 보니 단기 성과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물론 장기적인 브랜딩 관점에서 키워나가는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덕질이라는 수단을 활용하기 이전에, 덕질을 하는 사람들을 소비자로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케팅은 소비자 이해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소비자가 원하는 건 드릴이 아니라 벽에 뚫린 구멍이다'
고객은 자신이 가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품을 구매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이 말은 마케터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덕질을 하는 사람이 사람이 덕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다양한 감정과 이를 통해 얻는 카타르시스라 생각하는데요. 인간에게 있어 감정이 움직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그 자체이므로, 사람들이 덕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실감이기도 할 것입니다.
최근 마케팅 프레임워크 중 STP (세그멘테이션 / 타기팅 / 포지셔닝)의 무용론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의 변화로 인해 연령 및 지역의 경계가 약해지면서, 고전적인 인구통계학 관점에서의 STP는 점점 그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덕질과 관련된 마케팅 분야에서는 취향 및 기호에 따른 STP가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연령, 성별과 같은 요소로 타깃을 한정시키기보다, 주체자가 덕질을 통해 가지는 감정의 보편적인 맥락을 읽어내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덕질을 활용해 감정을 판매하는 것, 바꾸어 말하면 덕질을 통해 누군가에게 잠깐이라도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끼도록 돕는 것. 그것이 대덕질 시대의 마케터의 사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덕질이라는 프레임의 재정립
덕질이라는 단어가 트렌드 워드로 부상할 만큼, 시장이 커지고 그 의미가 침투했음에도 불구하고, 덕질이라는 행위와 그 행위의 주체인 덕질러는 여전히 저평가되기 십상입니다.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속된 말로 덕질이 후려쳐지고 있는 이유는 태생에서 시작된 프레이밍이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합니다. 덕질의 뿌리에 있는 오타쿠/빠순이 같은 단어가 비하의 목적에서 시작되었고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있죠. (이 매거진에서는 단어 순화를 위해 가급적 오타쿠라는 말대신 덕질러 등 다른 표현을 사용하려 합니다.)
덕질 대상의 경계가 넓어진 만큼 덕질러가 소비자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덕질이라는 단어에 씌워진 프레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롭고 이상적인 덕질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덕질의 이미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덕질 : 고도화된 취미 생활 혹은 취향을 내적 및 외적으로 표현하는 행동
덕질러 : 취미/취향의 적극적인 소비자이자 표현자
좀 더 심플하게 정의하면, 덕질은 '적극적 취미생활' / 덕질러는 '적극적 취미 소비자'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마케터라는 직업 이전에 nn년차 덕질러로서, 진심으로 덕질러가 소비자로 존중받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덕질이란 하나의 취미로 나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며, 좋아하는 것에 무한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거대한 긍정 에너지의 표출입니다.
이 긍정 에너지는 이윽고 각자의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우선 나부터 덕질에 당당해질 것. 자신을 구성하는 취미의 하나로서 소중히 할 것.
외부의 프레임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가진 내부의 프레임도 바꾸는 것이 건강한 덕질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첫 스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