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장편영화 두편을 감독한 영국출신의 젊은 감독은 차기작으로 토스받은 한편의 시나리오를 선택한다. 명작가 필립 K 딕의 원작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를 각색한 시나리오였다. 그는 이 시나리오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암울한 미래상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이미 2년전에 <에이리언> 을 통해 한차례 발휘된 자신만의 비주얼아트를 집대성하고자 했다. 본래 더스틴호프만이 주연을 맡기로 했으나 때마침 <인디아나존스> 의 촬영을 끝낸 <스타워즈> 의 캐릭터 '한솔로' 가 극적으로 캐스팅되었다.
그렇게 리들리스콧 감독과 해리슨포드 는 영화 역사상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 <블레이드 러너> 를 만난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영화가 재평가 받기 시작한다. 소수의 관객들에 의해 추앙받는 컬트문화가 자리매김하면서 소위 '저주받은 걸작' 대열에 <블레이드 러너> 가 오른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정점을 찍은 비디오테이프 보급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개인적인 생각) 한국에 이 영화가 소개된 것도 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영화팬들은 SF영화의 금자탑에 이 영화를 의심없이 선택하고 있고 이후의 영화들에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대를 앞선 명작으로 평가한다.(21세기의 반고흐 같은 작품)
그로부터 무려 40년이 흘렀다.
이 영화의 속편 <블레이드러너 2049> 가 개봉했다. 데커드와 비슷한 연령대의 블레이드러너 형사 'K' 가 새롭게 등장하고 1편보다 더 확장된 미래 L.A 를 배경으로 한다. 1편과 2편 사이에는 '대정전' 에피소드가 있는데 모든 데이터와 기록들이 사라지며 통제와 질서가 무너진 시대를 그리고 있다. 그로부터 또 20여년이 흐른 시점이 바로 이 영화의 무대이다. K가 임무수행 도중 찾은 한 리플리컨트 유골에서 출산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덮으려는 경찰조직과 자신의 과거 기억과 맞물리며 정체성을 혼란을 느끼는 K, 그를 이용해 업그레이드 된 리플리컨트를 생산하여 세상을 바꾸려는 월레스. 그리고..데커드.
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레이드러너 2049> 는 원작과의 연계 속에 속편으로서 전혀 손색없는 수작이다. 드니빌뇌브 감독은 리들리스콧의 기획제작지원사격 아래에 1편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했고 원작에서는 그려지지 않은 세계관을 확장하므로써 마침내 이 영화의 위대한 서사에 방점을 찍는 역할을 해냈다. 어떤 부분에서 이 영화는 굳이 1편의 후광이 없이 혼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라고 본다. 말하자면 원작에서 그려놓은 암울하고 어두운 도시 이미지와 심오한 주제들이 그대로 데생작업이 된 채, 이번 작품에서는 촘촘하게 채워 넣은 미장센들과 반젤리스에 버금가는 한스짐머의 음악들로 덧칠까지 잘 해낸 느낌인 것이다.
이 영화들을 거의 갈아마시다시피 하는 숱한 해석들과 철학적 물음들은 정말 오랜만에 텍스트로서의 영화가 재림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물음은 결국 '무엇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가' 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영혼의 무게 라고도 하며 누군가는 선한의지 라고도 한다. 영화속에서는 넥서스모델들과 인간 사이의 구별법 중 하나를 눈동자로 말해주고 있지만 역시나 그들이 갖고 있는 기억이 진짜추억이냐, 조작된 추억이냐로 설정을 해놓고 있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K 에게 집중된다. 전작과 달리 초반부터 그가 리플리컨트임을 밝혀놓고, 그가 유골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자신이 리플리컨트 사이에서 출생한 생명체이고 데커드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의 흐름을 관객도 따라오게 만든다. 빌뇌브 감독은 러닝타임 내내 이 흐름에서 일탈하지 않도록 K의 추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조각말을 붙여놓는다. 조각말은 1편에서 데커드의 꿈속에 등장하는 유니콘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 유니콘은 데커드가 리플리컨트임을 의심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되었고 조각말은 K의 정체성 혼란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다움' 에 대한 질문에서 원작에서는 로이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극중 넥서스모델들이 4년밖에 살지 못하고 인간과 다른 눈동자를 갖고 있기에 타이렐사 회장을 찾아가 눈알을 아작내버리는 장면은 인간답게 '보이고' 싶은 욕구의 상징이다. 또한 데커드의 손을 잡고 그를 구하는 장면에서는 인간성의 역전을 보여주며 그 유명한 'tears in the rain' 을 말한다. (이 장면은 애드리브 였다고 한다) <블레이드러너 2049> 에서는 조이의 역할에 무게감을 더한다. 조이는 원작의 '로이' 와 '레이첼' 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고 본다. 조이는 Being human 을 대변하며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K의 옆을 지킨다. 이것이 독립된 조이의 인격인지, 아니면 이 회사에서 나온 모델들이 모두 똑같은 '제품' 인지 햇갈릴 정도다. 그런점에서 인간의 몸을 빌려 조이가 싱크되는 장면은 <사랑과 영혼> 의 패트릭스웨이지와 우피골드버그가 합치는(?) 장면만큼 충격적이다. 그러고보니 어떤면에서는 일맥상통하는듯하다. 육체와 영혼의 단일화야말로 사랑의완성을 가능하게 하니까.
<블레이드러너 2049> 는 인간이 과연 다른 존재와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Skinner(껍데기) 인건 과연 영혼 없는 인간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인간과 똑같은 리플리컨트인지. <블레이드러너> 이후의 영화들은 줄곧 이런 고민들을 함께 해왔는데, 그 대상은 사이보그, A.I , 혹은 복제인간등으로 풀이되곤 했다. 그 영화들은 <터미네이터> 나 <아일랜드> <바이센테니얼 맨> 등이었고 그들이 내놓은 공통된 결론은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을 지키자' 는 것이었다. <블레이드러너 2049> 에서 눈내리는 장면들의 의미 역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수성과 순수함을 강조한 부분이라고 본다.
올해 미국에서는 자신의 딸 심장을 이식한 루몬스잭씨을 만나기 위해 1400마일을 달려간 아버지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한 바 있다. 비록 딸은 세상에 없지만 다른 누군가의 몸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거라 믿기때문에 아버지는 2500Km 를 달려온 것이다. 잭은 그에게 당신의 딸 심장소리를 들어보라며 청진기를 건내기까지 한다.
바라건대, K가 데커드의 아들이라고 여겨도 된다고 본다. K는 데커드의 딸이 갖고 있는 기억을 이식받았고 조각말을 발견한 뒤로 데커드에 대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둘이 한 카메라에 잡힌 투샷에서 둘이 부자관계인것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비록 부녀 관계로 결론내려졌다 하더라도 K의 믿음을 완전히 부정하기에는 영화상의 두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블레이드러너 2049> 는 원작이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매듭지어줬다. 그것은 단순히 고전답습하기가 아니라 시리즈의 종결을 의미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리들리 스콧과 달리 하고싶은 말을 그냥 다 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최근 헐리우드는 고전을 다시 읽고 더 확장된 세계관을 그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드니빌뇌브 감독은 물론이고 JJ 에이브럼스나 샘멘데스, 크리스토퍼놀란 같은 감독이 그 중심에 있다. 무려 40년이란 시간을 견뎌낸 이 시리즈는 그간 온갖 논쟁과 논란 속에서도 헐리우드 SF영화의 다양성을 넓혀왔다. 그리고 이 이후의 영화들이 '인간' 에 대한 어떤 묘사를 할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