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각기 다른 속도를 갖고 있다는 말을 예전에는 무시했다. 실패하는 중인 사람에게 건네는 속 빈 위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정말로 사람마다 속도는 다르다. 나는 원래 달리기가 느렸다. 중학교 때 달리기 시합을 하면 꼴찌를 하거나 뒤에서 이등을 했다. 친구들은 웃었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더 빨라져야 한다고 느꼈는지 모른다(모든 분야에서). 빠르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이 드니 시작하는 것부터 두려웠다. 그래서 포기한 기억이 꽤 있다. 몇 시간, 며칠 내에 해내지 못할 것 같으면 손을 대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꼴찌를 하거나 뒤에서 이등을 하는 기분이 들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난 더 이상 서두르지 않는다. 영어 공부를 하는 지금 텍스트 하나를 필사하기로 마음을 먹는데, 곧장 몇 시간 내에 끝내겠다고 무리하지 않는다. 조금씩 천천히 내게 여유를 준다. 그것은 나에 대한 배려. 그리고 사랑.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로 조금 더 천천히 지내도록 놓아주기를 택했다. 채찍질, 담금질하던 시절은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나를 낳았고 허무와 자기 비난으로 연결됐다. 그래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을 자주 느꼈다. 자신감, 자존감 부족. 무리하게 빨리 달리려는 초조함에서 그것은 시작되었다.
나는 앞서가지도 뒤쳐지지도 않는다. 모래 운동장에 그어진 달리기 레인은 이제 없다. 내가 달려야 했던 10대 시절의 레인도 어쩌면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주파해야 되는 것이 아니었다. 침묵 속에 시간은 멈춰있는 듯하나 초침을 움직인다. 고요한 거실의 공기 밑에서 묵직한 삶의 감각을 느낀다. 무거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나는 내 속도를 찾는 여정으로 지금도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