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몽, 프로슈토, 그리고 후추 이야기
다양한 종류의 햄과 치즈가 정갈하게 담긴 ‘샤퀴테리(Charcuterie)’ 플레이트,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혹시, 스페인의 하몽과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이 둘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계신가요? 아마 많은 분들이 ‘하나는 스페인 거, 하나는 이탈리아 거’ 정도로만 생각하실 텐데요.
사실 이 얇은 햄 한 조각에, 인류의 역사를 바꾼 대항해 시대의 서막을 연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오늘은 바로 이 이야기, 짭짤하고 고소한 햄 한 조각에서 시작해 광활한 바다를 건너 신대륙 발견까지 이어진 거대한 여정을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하몽과 프로슈토의 미묘한 맛의 차이부터, 그 배경에 있는 인류의 생존과 욕망, 그리고 위대한 탐험의 역사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될까요.
본격적인 비교에 앞서, 우리가 흔히 ‘햄’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유럽에서는 어떻게 불리는지 잠시 정리해 볼까요. 프랑스에서는 육가공품을 총칭해 ‘샤퀴테리(Charcuterie)’라고 부릅니다. 살코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셰어(chair)’와 익혔다는 뜻의 ‘퀴(cuit)’가 합쳐진 말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소금에 절인 육류를 ‘살루미(Salumi)’라고 부릅니다. 이 용어들만 들어봐도, 이것이 단순한 공장식 햄이 아니라 유럽의 오랜 전통과 자부심이 담긴 식문화 유산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몽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은 흰 돼지로 만드는 ‘하몽 세라노’고요. 하지만 스페인 햄의 진정한 자부심은 바로 ‘하몽 이베리코’에서 나옵니다.
이름 그대로 스페인 토종 흑돼지인 ‘이베리코’ 품종으로 만드는데요. 여기서도 등급이 나뉩니다. 최고 등급은 ‘이베리코 데 베요타’라고 불리는데, 이 돼지들은 드넓은 초원에 방목되어 오직 도토리만을 먹고 자랍니다.
자유롭게 뛰노는 충분한 운동량 덕분에 근육 사이사이에는 실핏줄처럼 섬세한 마블링이 배어들고, 도토리에서 온 고소한 풍미가 지방층에 가득 차게 되죠.
이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짧게는 2년(24개월), 길게는 4년(48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건조하고 숙성시키면, 마침내 명품 하몽이 탄생합니다. 입에 넣는 순간 혀의 온기에 스르르 녹아내리는 지방의 감칠맛과 견과류처럼 고소한 향, 씹을수록 쫀득하게 응축된 육향이 폭발하는 작품이죠.
이번엔 이탈리아로 가볼까요? 이탈리아의 대표 주자는 프로슈토입니다. ‘건조하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동사 ‘프로슈가레(prosciugare)’에서 이름이 유래했죠. 프로슈토는 하몽 세라노처럼 흰 돼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베리코 흑돼지로 만드는 하몽 이베리코와는 시작점부터 다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프로슈토 디 파르마’인데요. 재미있게도 이 지역의 또 다른 명물,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을 돼지에게 먹여 키웁니다. 그래서인지 프로슈토 디 파르마에서는 특유의 은은하고 달콤한 너트향이 느껴진다고. (저도 아직은 못 먹어 봤어요)
여기서 하몽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프로슈토는 숙성 과정에서 돼지 지방과 쌀가루 등을 섞어 만든 ‘수뇨(Sugna)’라는 반죽을 햄의 표면에 발라줍니다. 이 지방층이 보호막 역할을 해서, 햄 내부의 수분이 과도하게 증발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는 겁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햄의 철학이 갈립니다. 하몽이 수분을 날려 맛의 정수를 극한으로 응축시키는 길을 택했다면, 프로슈토는 수분을 지켜내 부드러움을 극대화한 것이죠. 그렇기에 하몽을 강렬하고 단단한 ‘남성적인 햄’에, 프로슈토를 섬세하고 부드러운 ‘여성적인 햄’에 비유하는 것 아닐까요?
왜 유럽에서 이토록 육가공 문화가 발달했는지는 약간 슬픈 장면을 떠올려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때는 냉장고는커녕 전기도 없던 중세 유럽. 겨울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람이 먹을 식량도 부족한데, 가축들에게 먹일 사료는 더더욱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 대부분의 가축을 도축해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남은 엄청난 양의 고기를 어떻게 보관하느냐였습니다. 겨우내 가족들이 먹을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 그것이 바로 ‘염장(鹽藏)’, 즉 소금에 절이는 기술이었습니다. 소금에 절여 수분을 빼내면 미생물 번식을 막아 고기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즐겨 먹는 소시지(Sausage)의 어원이 소금에 절인다는 뜻의 라틴어 ‘살수스(salsus)’에서 유래했다는 사실만 봐도, 이 염장 기술이 당시 유럽인들에게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생존을 위한 지혜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냄새’였죠. 소금에 오래 절인 고기에서는 특유의 누린내가 나기 마련이었고, 이건 당시 유럽인들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바로 그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투수가 극적으로 등장합니다. 바로 ‘후추’였죠. 후추의 알싸하고 강렬한 향은 지긋지긋한 고기 누린내를 마법처럼 잡아주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중독적인 풍미는 밋밋했던 염장 고기를 최고의 요리로 변신시켰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후추를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라고 할 정도였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추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인도에서 생산된 후추가 머나먼 육상 무역로를 거쳐 유럽에 도착하면, 그 가격이 원산지의 100배 가까이 뛰어올랐습니다. 그야말로 ‘검은 황금(black gold)’이라 불리며, 후추는 단순한 향신료를 넘어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황금보다 비싼 후추를 구하는 길이 막혀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십자군 전쟁이었죠.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유럽과 중동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기존에 아랍 상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육상 무역로가 사실상 막혀버렸습니다. 유럽으로 들어오던 후추 공급이 급감했고, ‘검은 황금’의 가격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까지 폭등했습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유럽의 왕들은 “아랍을 거치지 않고, 인도로 직접 가는 새로운 바닷길을 찾아라”라는 지시를 내리게 됩니다. 이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은 인도로 가는 직항로를 찾기 위해 경쟁적으로 탐험가들을 바다로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대항해 시대’의 서막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탐험의 시대는 두 명의 역사적인 인물을 탄생시켰습니다.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마침내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그니 서쪽으로 계속 가면 인도가 나올 것이라 믿었죠. 그가 인도를 찾아 출발했다가 도착한 곳이 바로 아메리카 대륙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고기를 소금에 절여야 했던 한 가족의 식탁에서 시작된 고민이, 그 고기를 조금 더 맛있게 먹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으로, 그리고 그 욕망이 ‘검은 황금’ 후추를 향한 거대한 갈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갈증이 바스코 다 가마와 콜럼버스를 미지의 바다로 내몰았고, 마침내 인류의 지도를 영원히 바꿔놓은 것입니다.
이제 레스토랑 메뉴판이나 마트에서 하몽과 프로슈토를 보게 되면, 그저 맛있는 와인 안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 짭짤한 풍미 속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고기를 절여야 했던 중세인들의 절박함과, 그 고기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검은 황금을 찾아 나섰던 탐험가들의 뜨거운 열망을 맛보게 될 겁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음식에는 이처럼 인류가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