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입자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태를 공유할 수 있다
양자역학이 열어 준 세계는 이상하고 신비롭다. 그중에서도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는 현상은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질문을 절로 품게 만든다. 양자얽힘은 두 입자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상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입자의 상태를 측정하면, 순간적으로 다른 입자의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이를 ‘spooky action at a distance(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이라고 부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고전물리학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 현상이, 최근에는 양자컴퓨터의 핵심 원리로 떠오르고 있다.
양자얽힘이 처음부터 학계의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1935년, 아인슈타인과 두 동료(보리스 포돌스키, 네이선 로젠)는 EPR 논문(Einstein-Podolsky-Rosen 논문)에서 양자역학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들은 특정 실험 설정에서 두 입자가 얽혀 있을 때, 한 입자의 상태를 측정하면 다른 입자의 상태가 ‘동시에’ 결정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이 있을 수 없다는 상대성 이론에 비추어 볼 때, 양자역학이 놓치는 요소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미지의 요소를 “숨은 변수(hidden variable)”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후대 물리학자들은 실험적 검증을 통해 양자역학이 예측한 얽힘 현상을 실제로 확인했다. 특히 1960~70년대에 존 벨(John Bell)이 제시한 벨 부등식을 바탕으로 수많은 실험이 이뤄졌고, 그 결과 숨은 변수를 가정한 고전적 모델이 아니라, 양자역학 자체가 맞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이는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전달된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과는 조금 다르지만, 적어도 멀리 떨어진 두 입자의 상태가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고해졌다. 물론 이 연결이 실제로 “신호를 보내는” 것과 동일한 의미인지는 아직도 물리학자들의 해석에 따라 의견이 갈리지만, 얽힘 자체가 부정할 수 없는 물리적 현상임은 분명하다.
얽힘의 가장 놀라운 점은 ‘서로 간에 즉시 영향을 미친다’는 듯한 효과가 관측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얽혀 있는 두 광자(A와 B)가 있다고 치자. 광자 A의 편광 상태(수직 혹은 수평 같은 빛의 진동 방향)를 측정하는 순간, 멀리 떨어져 있던 광자 B의 편광 상태도 순간적으로 정해진다. 두 광자가 각각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이 현상 자체는 거리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이처럼 얽힘은 시공간의 상식을 깨뜨리는 현상처럼 보이지만, 양자역학이 제공하는 엄밀한 수학적 틀 안에서는 정확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양자얽힘이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는 이유는, 바로 양자컴퓨팅의 작동 원리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큐비트(qubit)라는 정보를 단위로 삼는데, 이 큐비트들은 보통 중첩(superposition) 상태를 유지하면서 얽힘을 형성해 연산을 수행한다. 얽힘 상태에 있는 큐비트들은 서로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특정 연산이나 측정 결과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병렬적이고 지수적인 계산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렇게 얽힌 큐비트들은 고전컴퓨터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연산 속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편으로, 얽힘은 양자통신(quantum communication)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역할을 한다. 양자암호(quantum cryptography) 기술에서, 얽힌 광자를 사용하면 도청 시도가 있을 경우 그 사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다. 관측 행위 자체가 얽힌 상태에 변화를 주기 때문에, 통신 과정을 훔쳐보려 하면 이상 신호가 포착되는 것이다. 이 특성은 기존 암호 방식이 이론적으로 뚫릴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원칙적으로 완벽한 보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을 선사한다.
이처럼 양자얽힘은 이론적 호기심을 넘어 실제적인 활용 가치까지 인정받게 되었다. 다만, 그 작동 원리가 우리 직관에 쉽게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인류가 무수히 쌓아 온 고전 물리학적 경험으로는, 멀리 떨어진 두 물체가 즉각적으로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양자역학을 통해 보면, 얽힘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 미시 세계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다.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남아 있지만, 바로 그 점이 더 많은 연구와 실험을 자극해왔다.
양자얽힘을 둘러싼 논쟁과 연구는 물리학의 지평을 넓혔을 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까지 던지게 한다. 두 입자가 분명히 다른 공간에 있음에도, 관측 결과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일부 해석에 따르면, 얽힘은 객체의 ‘개별성’을 약화시켜버린다. 우리가 별개의 존재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더 깊은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고전적인 상식’만으로는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 덕분에, 우리는 기존에는 상상도 못 했던 실험과 기술을 실현해 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양자얽힘은 가장 기묘하면서도, 가장 가능성이 큰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양자컴퓨팅과 양자암호화라는 꿈같은 분야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지금, 얽힘의 존재는 “이걸 정말 활용할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혁신이 가능할까?”라는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양자역학의 세계에 들어오면,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순간적으로 서로를 알아본다는 ‘미스터리’가 결코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처럼 우리 상식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과학적 실험으로 뒷받침되고, 나아가 실용 기술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양자얽힘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연결인 동시에, 21세기 과학과 산업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어떤 발견들이 펼쳐질지, 그리고 그 발견들이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도, 이 얽힘 현상이야말로 양자역학이 왜 매력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