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전시: 말달리자로 읽는 홍대 인디 30년 서사
☞ ****<인디에서 전설까지 크라잉넛 30주년 기획 프로젝트>는 크라잉넛과 드럭레코드, 캡틴락컴퍼니, 상상마당이 함께 기획하는 크라잉넛 30주년&홍대 인디를 기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crying.nut/
크라잉넛 전시를 기획하다
여름의 열기가 완전히 시작되기 전, 아직 공기가 봄의 길이를 붙잡고 있던 4월.
그 무렵에 불쑥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우리 이제 30주년 준비 들어가려고 해. 네가 전에 말했던 그 전시 아이디어 있잖아, 기억하지? 멤버들이랑도 같이 얘기해 봤는데, 좋겠다고 하더라고. 네가 우리의 결을 함께 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같이 해줄 수 있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답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죠. 이거야말로 제가 정말 바라고 하고싶어하던 프로젝트잖아요! 아시자나요!”
음악을 전시한다는 것
사실 음악을 ‘전시’의 문법 안에 가져오는 시도는 1960-70s대 전통적인 예술의 언어를 무력화하려던 플럭서스(Fluxus)나 해프닝(Happening)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전시는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보이는 것에 큰 비중을 둔다. 장르와 매체를 깔끔하게 구분하는 태도가 오래된 것임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 경계를 늘 무력화시키고 싶다
공간의 예술이라 불리는 시각예술을 전공하고, 그 기반 위에서 연구하며 살아온 나에게 ‘음악과 공연’이라는 분야는 늘 조금 다른 세계였다.
특히 음악가들이 소리와 움직임, 시간성과 현장성이라는 감각들을 어떻게 엮어내는지 가까이 보게 되면서,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낯설고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나는 오래도록 공간을 중심으로 사고해 왔고, 사운드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공간성 vs 시간성이라는 주제만 가지고도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언젠가 이 부분만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그런 나에게 음악이라는 매체를 ‘전시’의 언어로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점점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음악, 그중에서도 인디 음악과 펑크록 같은 장르를 전시 형식으로 풀어낸 사례는 거의 없다.
뮤지션이 회화나 글, 사진처럼 다른 예술 매체로 확장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는 경우는 드물게 있었지만, 그들의 음악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이를 시각적 형식으로 번역하고 예술가의 작업으로 회고해 온 시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그 지점에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다.
음악이 가진 시간의 결, 무대 위에서 몸으로 흘러가는 에너지, 청중과 공간이 함께 만들어내는 감정의 구조.
그 모든 것을 전시라는 형식 안에서 시각적 언어로 다시 구축해 보는 일.
어쩌면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시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제안은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나에게 오래 묵혀둔 가능성을 드디어 꺼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꾸준한 록 키드였다.
K-pop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한국 음악이 통째로 묶여버리는 현실 속에서도, 인디 뮤지션들이 지난 30년 동안 스스로 살아남으며 실험을 지속해 나갔고, 이 장면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왔는지 알리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그래서 관련 국제 컨퍼런스에도 나가고, 한국 대중문화 이야기가 나오면, 인디 생태계를 확산시키고 알리는 일의 가치를 강조하며 말하곤 했다.
결정적으로는 2023년 런던에서 본 전시들이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에서 열린 <DIVA>전시,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 전시 레퍼런스를 마주했던 기회.
그 공간에서 나는 음악의 서사와 퍼포먼스, 이미지와 패션, 시대정신이 어떻게 하나의 전시 안에서 다시 구성되는지 보았고, “우리도 이런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후 거의 2년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뜬금없이 “록음악의 레거시는 전시되어야 해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사람들이 ‘얘는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을 짓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예술학자, 미술사학자라는 사람들은 결국 시대의 예술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아카이브 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의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찾게 된다. 내게 의미 있는 예술은 늘 ‘새로운 시대를 열거나,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 이들의 결과물’이다.
그 대상은 어느 순간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자기 손으로 음악을 쓰고 부르고 연주하는 뮤지션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의 예술을 가장 생생한 언어로 쓰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거의 2년 가까이 ‘음악 전시’를 외치고 다니며 질문을 던지고 짧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내게, 바쁜 시간을 쪼개서 선뜻 답해준 뮤지션들이 있었다.
그분들이 바로 이번 <너트 30> 페스티벌에서 열띤 공연을 하고 계신 분들이다.
늘 좋은 음악과 공연에도 열정적이면서도, 뜬금없는 학자의 질문 마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기꺼이 힘을 보태주는 그런 사람들.
그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와 존경을 전한다.
이 전시는 단순히 크라잉넛의 30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인디 음악의 30년을 함께 바라보고, 이 음악이 어떻게 한국 음악 장면을 넓혀왔는지, 어떤 청춘들의 몸짓과 시대의 감정들이 여기에 담겨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전시를 만들며 우리는 다시 확인하고 있다.
‘기록’이란 결국 누군가의 시간과 열정, 실패와 실험, 그리고 끈질긴 지속을 세상에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이 30년 전 홍대에 새로운 음악에 대한 불을 지피었듯이,
아직 시작일 뿐이지만, 우리는 지금 이 작업의 첫 걸음을 함께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