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 2025. 9. 3. – 2026. 2. 1
수직적 순환 구조의 공간 특정적 설치
전시 공간은 지하–1층–2층–3층–다시 계단을 통해 지하로 이어지는 수직적 순환 구조를 가진다. 이 구조는 위로 이동할수록 어떤 본질에 가까워지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어느 층위에서도 완결된 결론에 도달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위계는 암시되지만, 마지막 종점이 어디인지는 표시되지않았다.
전시의 시작점인 지하로 들어서면서 부터 관람자는 어둠 속에 고정된 위치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존재로 머물 수 없다. 걷고 올라가는 행위로 직접 이동하며, 몸 전체로 공간을 경험한다. 지하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가는 과정은 인간이 늘 그래왔듯, 세계 안에서 이해하려 하고, 닿으려 하고, 확인하려는 반복적인 시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이동은 탈출이나 해방의 서사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시도되는 접근에 가깝다.
지하는 어떤 본질을 직접 드러내는 장소라기보다는, 그 흔적이나 잔영에 가까운 공간이다. 사물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반사되고 겹쳐지며 왜곡된다.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머문다. 이 공간은 시작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마지막처럼 느껴진다. 위로 올라가며 무언가에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구조는, 실패라기보다는 반복되는 조건에 가깝다.
지하 공연장서 무대 위로 쏘여진 설치물의 그림자는 객석에서 바라보도록 하지 않는다. 관람객의 동선은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놓여 있고, 시선은 지속적으로 객석을 향하도록 유도된다. 비닐로 덮인 객석의 빈 의자를 바라보는 이 경험은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 빈 자리는 누구의 자리였는가, 혹은 비워진 채로 남겨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선의 전환은 보는 행위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1층은 가장 익숙하고 안정적으로 인식되는 공간이다. “이곳이야말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자연스럽게 끌어내지만, 동시에 그 판단이 얼마나 쉽게 형성되는지를 드러낸다.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지점이 가장 의심받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 층의 긴장이다. 건물 전면의 유리창을 통해 외부 세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지며, 이 시각적 연속성은 공간 내부와 외부를 분리된 영역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며, 이 층을 가장 현실적인 공간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이 공간에는 호박과 같은 자연물, 돌, 실제 흙과 같은 재료와 함께 세탁기라는 산업적 오브제가 동일한 층위에서 배치되어 있다. 이들 위에는 기계적 신체가 얹혀 있으며, 자연물과 인공물은 기능적·개념적 위계 없이 병치된다.자연에서 채집된 재료와 일상적 산업 오브제의 결합은 관람자에게 익숙한 스케일과 물질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 결합 방식은 명확한 기능적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층위에서 사물은 본래의 사용 맥락이나 상징적 의미보다, 물질의 직접성과 물리적 존재감에 의해 인식된다.
결과적으로 1층에서 형성되는 현실성은 재현이나 서사에 기반하지 않는다. 현실은 사물의 의미가 아니라, 접근 가능성과 익숙한 물질 조건에 의해 판단되는 상태로 구성된다.
자연물 위에 기계적 신체는 어떠한 저항도 없이 얹혀있으며, 이로서 자연물과 인공물은 위계 없이 병치된다. 무릎을 꿇은 메탈릭 인간 유사체와 키메라와 유사한 변종의 형상이 함께 배치되어,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와 기계의 구분이 명확히 설정되지 않은 상태가 유지된다.
2층에서는 생태, 기계, 새로운 물질들이 뒤섞인다. 나무는 거꾸로 자라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2층은 자연광에 가까운 조명 조건 아래, 뒤집힌 상태로 배치된 나무를 중심 요소로 구성한다. 이 나무의 표면에는 미래적 물질들이 덧붙여져 있으며, 자연적 생태 요소는 더 이상 자율적인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자연물은 구조적으로 전도된 상태에서, 외부의 재료와 결합된 혼합체로 제시된다.
이 층위에서는 생태와 기술, 유기물과 인공물이 분리되지 않은 채 병치된다. 나무는 자연적 성장의 결과라기보다, 다양한 물질이 부착된 구조물로 기능하며, 생태는 변화된 조건 아래 재구성된 상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구성은 자연과 기술을 구분하는 기존의 범주가 더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조건을 형성한다.
이 공간에는 작가의 출신지와 연관된 샤먼적 오브제가 함께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 오브제는 민속적 재현이나 상징적 설명의 대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자연물, 미래 물질, 산업적 재료와 동일한 층위에서 병치됨으로써, 특정 문화적 의미보다는 물질적 존재로서 기능한다. 이로써 지역적 요소는 전통의 표상이 아니라, 혼합된 생태 구조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 요소로 편입된다.
결과적으로 2층은 ‘자연’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고정된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 조건을 공간적으로 배열한다. 이 층위에서 생태는 보호되거나 복원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기술적·문화적 개입이 누적된 상태로 제시된다.
최상층에는 타일로 이루어진 바닥 위에 가스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바닥과 천장의 타일은 동일한 구조를 가지며, 위와 아래의 구분은 흐려진다. 불은 이 공간에서 중심적인 요소로 작동하지만, 단순히 따뜻함이나 밝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불은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반복과 순환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어떤 완성의 지점이라기보다는, 구조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장소처럼 보인다.
3층은 불을 중심 요소로 하되, 천장과 바닥의 타일 구조가 분절된 상태로 구성된 공간이다. 타일은 테트리스 블록과 유사한 방식으로 분리되어 배치되며, 위와 아래는 연속된 구조를 이루지 않는다. 이 분절은 공간의 안정적인 축을 해체하고, 상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불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생존과 사회 형성을 가능하게 한 조건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이 공간에서는 직접적인 접촉이 불가능한 상태로 제시된다. 불은 유리창 안에서 타오르고 있으며, 이는 철저히 관조할 수 만 있다.
유리로 분리된 불의 배치는 불을 물질적 요소이자 동시에 매개된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불은 실제로 연소하고 있지만, 관람자에게는 차단된 상태로 제시되며, 이는 불이 더 이상 즉각적인 신체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관리되고 통제되는 요소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치는 불을 마치 가상 공간 속 이미지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불은 현실의 물질적 조건을 유지하면서도, 사이버 스페이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분리된 공간 안에 존재한다. 이로써 불은 인간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성격과, 현재의 기술적 환경 속에서 관리되는 대상이라는 이중적 상태를 동시에 갖는다.
결과적으로 3층은 불이라는 요소를 통해 인간 역사적 조건과 현대의 가상적 환경이 중첩되는 지점을 구성한다. 이 공간은 불을 숭고한 기원으로 제시하지 않으며, 대신 분절된 구조와 차단된 배치를 통해, 불이 더 이상 직접적인 조건이 아니라 매개된 상태로 작동하는 현재의 상황을 공간적으로 배열한다.
지하에서 출발해 꼭대기층에 도달한 관람자는 다시 지하로 내려온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여정은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며 끝난다. 이때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이 공간 안에서 무엇인가에 도달한 적이 있었는가. 혹은 계속해서 닿지 않는 어떤 것을 향해 움직였을 뿐이었는가.
아드리얀은 명확한 시작과 끝을 제시하지 않는다. 처음과 끝을 구분하려는 순간, 이 구조는 오히려 흔들린다. 처음이라 불린 지점은 이미 지나온 끝이고, 끝이라 여긴 장소는 또 다른 시작처럼 작동한다. 이 순환은 직선적인 이해보다는, 반복과 되돌아옴에 가까운 사고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업은 특정 공간을 전제로 만들어졌으며, 공간의 구조와 동선, 빛의 조건, 재료와 주변 환경이 모두 작품의 일부로 작동한다. 이 장소를 벗어나면 동일한 경험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작품은 어떤 이론을 설명하기보다, 공간 안에서 몸으로 지나가며 마주치게 되는 감각과 구조를 통해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가 특정 개념을 의도했는지, 혹은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작업이 어떤 생각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각적인 경험과 물질적인 조건, 이동과 반복을 통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방식 자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하나의 답보다는 질문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아드리얀이 보여주는 건 개별 요소들의 나열이 아니라, 공간 전체가 하나의 경험으로 작동한다. 동시에 이 장소에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시는 세계에 대한 제시보다,, 세계를 향해 계속해서 움직여왔던 인간의 태도와 구조가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