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2025.12.01

by 윤모닝









2025.12.01


올해 들어 예상치 못하게 2번이나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두 번째로 입원하게 되었던 가을에는

수술을 하게 되면서 첫 번째에 비하면 더 다이내믹한 입원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중 정말 많이 들었던 생각은 놀랍게도..

"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무심한 간호사였나."였다.




내가 받기로 한 수술은 복부수술이었기에 수술 전날 관장을 했어야 했는데 손바닥 크기의 하제 20cc를 항문에 주입한 뒤 15분간 참았다가 화장실을 가야 했다. 보통 환자들에게 약물관장 처방이 났을 때, "하제를 주입하고 나면 그 즉시 배변하고 싶은 마음이 들 텐데 약 효과를 보려면 무조건 있는 힘을 다해 15분 동안 참았다가 화장실 가셔야 해요. 안 그러면 또 해야 하거든요!" 라며 또 이 과정을 반복하는 건 서로에게 힘든 일임을 설명하며 한 번에 성공하자고 강한 염원을 담아 말하곤 했다. 그러면 대략 5명 중에 3명은 용케도 15분을 견뎌내고 배변에 성공한다.



그래서 담당간호사가 나에게 관장을 설명할 때 환자들도 해내는데 어려운 거 아니겠지라며 의기양양하게 하제를 받아 들었다. 그러곤 화장실에 들어가 항문에 주입한 뒤 TV 앞에 앉았는데 웬걸 예상보다 너무 참기 힘든 자극이 그 즉시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간호사고, 15분 당연히 잘 참을 수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게 있는데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라며 나의 내면은 복잡한 소용돌이로 휘몰아쳤고 몸에 엄청나게 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나? 라며 폰을 보는데 어찌나 시간이 안 가던지 8분밖에 지나지 않았고 더 이상 신호를 이길 수 없었던 나머지 나는 15분이 아닌 8분 만에 종료를 선언하고 말았다...


그때 머릿속에 지나갔던 건 환자에게 약을 넣은 뒤 무조건 15분 참아야 한다며 관장을 설명하던 내 모습이었다. 소위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어려움들을 환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얼마나 무심했던가 환자들에게..





그 외에도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복부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간 나는 쨍한 조명으로 눈이 부신 수술대에 누웠고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의료진을 믿고 눈을 감아라는 마취의의 말과 함께 필름이 끊겼었다. 그렇게 2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나는 회복실에 돌아왔다. 의식이 돌아오려는 무렵, 처음 내 감각을 깨운 건

두 귀에 들려온 뚜뚜뚜 모니터 알람소리와 의료진들의 목소리, 그리고 코에 이상한 바람..?이었다.


전신마취 수술을 하게 되면 환자에게 마스크로 마취가스를 주입하여 재운다. 그렇게 되면 마취상태에 있는 환자는 자가호흡이 불안정해지게 되는데 이때 환자의 기도로 튜브를 삽관을 하여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게 되고 환자의 호흡은 이 호흡기가 대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마취가스로 인해 폐가 수축하게 되는데 이 상태가 오래되면 환자는 자가호흡 회복 속도가 느려지고 마취가스 환기가 되지 않아 의식 회복이 더디게 된다. 그래서 수술이 끝난 뒤 회복실에서 환자의 의식 회복속도를 높이기 위해 고농도의 산소를 주입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High flow nasal cannula라는 고유량 산소공급기이다. 이 기구는 저유량 산소공급기의 5-6배가 되는 농도를 주입할 수 있기에 환자의 airway에 가해지는 바람의 세기는 훨씬 세다. 마치 자동차 히터를 코앞에서 가장 최대로 한 채로 트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어어억..!"


이게 뭐지? 코에 뜨거운 바람이 엄청난 세기로 들어오자 모든 감각이 깨어나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수술로 인한 통증 보다도 내 코에 들어오는 바람이 궁금해졌던 나는 옆을 돌아본 뒤 고농도 산소기구를 보고서 아 요즘은 이 기구로 회복을 빠르게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또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무심한 간호사였나..


코로 들이쉬는 들숨에는 이 기계가 공급해 주는 고농도 산소와 방향이 같아서 괜찮았지만 날숨에는 이 기계와 반대방향으로 내쉬다 보니 코 안에서 공기가 서로 부딪히게 되어 불편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나는 천천히 쉬고 싶은데 이 기계가 계속 바람을 코에 쏘아주니 꺼억꺼억 하며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이 기구는 내가 일하는 병동에서도 많이 쓰인다. 고유량 산소기구이다 보니 저유량으로 호전되지 않는 저산소혈증 상태의 환자 또는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가스교환이 원활히 잘 되지 않는 호흡부전 환자에게도 쓰이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환자들이 있는 경우 담당의에게 recommend 해서 기계 세팅을 한 뒤 숨차다며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무턱대고 적용해 왔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해보니 가만히 숨을 쉬기도 어려운 기구였던 것이다.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어려움에서 구해준 사람도 정작 어려움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 일상에서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은 일들이 있다. 오늘도 이렇게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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