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아온 Feb 13. 2017

고3이라는 것.

고3을 끝낸 후에.

희망을 심어주었는지 모르지만,


정시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에, 예비 고3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참패(慘敗)'했다.




수능으로 가는 정시는 수능 성적표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원서접수까지의 시간이 3주가량이나 남았지만 이미 갈 대학은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성적표를 받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거나 '하!'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성적표의 숫자를 보기도 전에 어느 정도 예상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순간 여태까지 지나왔던 나의 1년간 세월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분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어째서? 왜? 노력만 한다면 된다며!




이런 성적을 받은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아니, 부모님이 말한다.


'네가 무슨 노력?'

'밤에 폰 하며 놀았잖아.'


안 했다.라고는 하지 못했다. 했으니까!


타인의 입장에서 들으면 기가 막힐 일이었다. 공부를 하겠다고 노력했다면서 노력의 기초 중에 속하는 '딴짓'을 하다니.


그렇지만 나는 노력했다고 말한다. 어처구니없는 말인, 내 멋대로 얼마든지 꾸밀 수 있는 말인 '내 나름대로'란 것으로.


'내 나름대로'란 말을 갔다 붙이면 누구나 다 열심히 했다고 말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고등학교 1-2학년 때 하루에 2-3시간씩 밖에 못했다면 3학년 때는 최소 6시간에서 10시간을 왔다 갔다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다 뭐란 말인가. 내가 많이 하든 공부하는 방식이 잘못되든 결과가 이런데? 부모님의 타박에 울었다. 뭘 잘했냐고 타박당했다. 해줄 것 다 해주었는데 왜 이리 나왔냐고 타박당했다. 재수는 절대 없다던 아빠의 말이 번복되어 재수 하란 말이 나왔다.


끝난 후에는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용기가 없을지라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부모님의 말에 짜증내기도 억울해하기도 잠시, 최종적으로는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의 말대로 안 해준 것은 없었다. 내가 해달라 한 것은 다 해주셨다. TV에 나오는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함 없이 살았다. 적어도 의식주는 다 챙겼고,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조르면 보내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보답하고 싶었다. 새벽 일찍 나가며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던 아버지와 가사까지 힘들었으면서도 간간히 아르바이트와 뒷바라지를 해준 어머니께 보답하고 싶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그런 부모님의 노력이 체감되었기에. 


처음엔 그저 좌절했다. 그야 당연했다. 도합 12년간의 세월을 투자한 것이 이리되었는데, 내 생에 있어 최초이자 긴 세월을 건, 유일하게 보답할 방도를 이리 망쳤는데 어찌 좌절을 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런 나에게 당신은 실패자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그럼 나는 실패자라고 말할 것이다. 변명할 생각도 없고, 내가 아무리 간곡히 호소해도 당신은 귀 기울여 주지도 않고 믿지도 않을 테니 실패자라 말할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난 실패자다. (실제로 내 성적을 듣는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의 9할 이상이 그리 답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 나는 내 인생에서 실패자라고 속삭이고 싶지 않다.

 

억울했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닐 텐데 벌써 실패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의 세월에게 실례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부모님에게 보답을 아직 하나도 하지 못했다. 최근엔 거의 간다는 그 흔한 세계여행조차 가지 못했고, 따뜻한 내복도 사드리질 못했다. 그것들을 해주기 전까지는 더 이상 좌절을 하면 안 되었다.


나는 수능 실패를 인생의 제 1의 실패라고 명명할 것이다. '1'의 숫자답게 잊지도 못할 것이고 무엇보다 특별할 것이다.


이곳에서 실패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나는 되도록 실패를 바랐다. 웃기는 말이지만 그랬다. 실패를 해야 성공이란 말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패 중에 1번 실패했다. 다만 그것이 너무나도 컸을 뿐이다.


나는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나 스스로 그리 명령했다.





후기: 그다지 별것 아닌 글이지만, 쓸 때마다 울었습니다. 이것이 제 안에서 큰 요소를 차지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곧 털어내고 일어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수능을 망친분들, 아니 어쩌면 인생에서 있어 큰 밑거름을 얻은 당신에게 어떠한 방식이든 일어서길 바라고, 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경험은, 성공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고3이 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