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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하 Aug 31. 2021

우연이냐 필연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우리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두 가닥의 실이 종횡으로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구조물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두 가닥의 실은 복잡한 공정 과정 속에서 촘촘하게 교차되고 때론 불규칙한 패턴으로 어긋 매어져 마침내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형태학적 구조를 완성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가 먹고 마시고 행하는 모든 건 우연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필연이 도사리고 있다.




우연 (偶然)
1.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2. 어떤 사물이 인과율에 근거하지 아니하는 성질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누구나 한두 번쯤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왜 '하필이면' 수많은 사람 중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예기치 못한 불운과 직면했을 때 우리는 때때로 비약적인 생각에 골몰한다. 불운의 발생 빈도가 잦을수록 우리의 무의식은 자연스럽게 필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단어로 중심축을 이동한다. 살다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사건이 실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닐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특정 현상을 두고 우연과 필연을 논하는 문제는 일상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여기 A라는 사람이 있다. A는 중요한 면접을 앞둔 취준생이다. 고대하던 면접을 앞두고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A는 서두르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기껏 세팅한 머리는 헝클어졌고, 비싼 정장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수습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소요됐지만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 덕분에 여유가 남아 있다.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고민하던 A는 교통 체증을 염려해 지하철역으로 향했으나 지하철이 연착되어 면접에 불참하고 만다.




이날 A에게 일어난 사건을 우연과 필연 중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본질은 달라진다. 돌부리와 연착된 지하철을 우연의 연속으로 치부한다면 그날의 경험은 술자리에서 안줏거리 정도로 복기되는, 재수 더럽게 없었던 날로 남을지 모른다. 물론 지하철 연착은 승하차 지연, 기관사의 정차 실패, 관련 종사자들의 파업 등 수많은 경우의 수가 프로세스에 끼어들어 필연적으로 발생한 결과지만 A의 낙방과 아무 상관관계도 없기 때문에 인과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단순한 현상에 불과하다.




반면 필연은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면접 낙방을 다음 직장으로 가기 위한 단계 중 하나로 해석한다면 돌부리는 '돌'이란 물성을 지닌 사물에서 운명적인 장치로 탈바꿈하고 지하철 연착은 필연이란 그림의 완성을 위한 화룡점정이 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평행선인 두 개의 선이 측면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선으로 겹쳐 보이듯 관점의 변화는 연속선상에 시간순으로 놓인 현상들을 일련의 과정으로 꿰매어버린다.




우연과 필연은 결과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A가 이를 계기로 자신을 갈고닦아 모두가 부러워할만 한 직장에 입사한다면 무질서하게 흩어진 과거의 방점들은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하나의 필연으로 귀결되어 완벽한 서사를 만들어낼 것이다. 성과를 인정받아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고 직장 동료와 결혼에 골인한다면 필연에 대한 A의 믿음은 갈수록 견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각각의 독립된 우연을 하나로 꿰어낸 건 A 스스로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낸 결과, 즉 필연이다. 반대로 A가 아무 노력 없이 주어진 시간을 탕진하고 그저 그런 직장에 입사해 열정 없는 하루하루를 반복한다면 이는 의미 없는 또 하나의 방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결국 우연과 필연을 구분하는 잣대란 우리 인생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삶에서 임의로 발췌해낸 한 단락의 마지막 장면이다.




필연 (必然)
1. 사물의 관련이나 일의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
2. 틀림없이 꼭.




죽음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죽음은 삶의 마지막에 '틀림없이 꼭' 일어나는 중대한 이벤트이며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결과'다. 죽음 자체가 인간의 공통적인 필연이라는 데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방법과 시기는 저마다 다르다. 자연재해나 연쇄 추돌사고로 인한 사고사 등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은 불운의 호명을 받아 생긴 우연한 사고로 여겨지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 어떤 죽음은 운명적으로 느껴진다. 영화 '데스티네이션'처럼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등장인물이 호시탐탐 뒤를 쫓는 죽음의 손길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운명에 굴복하는 스토리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한 소년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




우연한 죽음과 필연적인 죽음 사이의 간극

1958년, 한 소년이 죽었다. 소년의 이름은 시드니 베린저(Sydney Barringer)다. 시드니 베린저는 열일곱의 나이에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발견 당시 시드니 베린저는 배에 총을 맞은 상태였기 때문에 검시관은 타살을 주장했지만 유서가 발견되어 소년이 투신자살을 시도했다는 게 확인됐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시드니 베린저가 아파트 옥상 난간에 서 있던 순간 6층에서는 한 부부 - 폐이와 아서가 총을 들고 서로를 협박하며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싸움 도중 감정이 격해진 폐이는 우발적으로 총을 발사했고 아서를 빗겨간 총알은 때마침 6층을 지나고 있던 시드니 베린저의 배를 관통했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한 소년의 자살 사건에 휘말려 졸지에 살인 혐의자가 된 부부는 폐이 베린저와 아서 베린저로 시드니 베린저의 부모였다. 총을 발사한 혐의를 묻자 폐이 베린저는 이렇게 답했다. 




" 아내가 늘 총을 들고 위협했지만 단 한번도 총을 장전해 놓은 적 없어요. "




놀랍게도 총을 몰래 장전한 건 시드니 베린저 본인이었다. 부모님의 잦은 싸움으로 조성된 폭력적인 환경은 보살핌이 필요한 열일곱의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고통이었기에 시드니 베린저는 충동적으로 총을 장전했다. 순간의 충동은 미국 법의학 학술대회 사례로 발표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을 야기했고 폐이 베린저는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시드니 베린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범으로 기록됐다.




총알이 배를 관통했을 때 그는 이미 추락 중이었기에 최종 판결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시드니 베린져가 떨어진 자리에 3일 전 깔아놓은 안전 그물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모두들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한 소년의 투신자살, 장전된 총, 안전그물, 부부 싸움. 인과율 없는 우연들은 소리보다 2.5배 빠른 총알이 9층 높이의 건물에서 추락 중인 소년의 배를 정확히 관통할 수학적 확률과 맞아떨어진 덕분에 신이 의도적으로 설계해 놓은 변인처럼 느껴진다. 이런 미신적인 사고를 거둬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시드니 베린저의 죽음은 사고에 불과하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외면했을 때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밖에 없는 불행의 말로라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보편적인 자살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을 한 소년의 죽음을 필연으로 귀결시킨 건 천문학적 확률이 아니라 베린저 부부의 방임과 폭력이었다. 




우연히 태어나 필연적으로 죽는 삶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이렇게 정의한다.




청탁 없이 이 세계로 내던져진, 유한한,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어두운 극 사이에 처박혀진, 
해명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 불안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주위세계를 배려하고 동료 인간들을 심려하고,
자기 자신에는 염려로 처신하는, ‘아무 것도 아닌 피조물(nichtigen Kreatur)




그의 말처럼 인간은 청탁이나 선택 없이 '별안간' 세계로 내던져진 존재다. 수억 개의 정자 중 한 개의 난자가 결합하여 탄생한, 수동적이며 우연적인 존재이며 자유 의지와 무관하게 던져진 존재(being thrown)다. 삶 역시 우연의 산물이지만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우연의 망망대해 위에서 항로를 개척하고 나아갈 방향을 진두지휘하는 건 인간에게 주어진 필연적 과제다. 우리는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삶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변화의 잠재력을 지닌 허브인지, 흘려보내야 마땅한 좌초의 징조인지 늘 기민하게 파악해야 한다. 때론 우연의 충돌이 만들어 낸 강한 조류가 우리 삶 전체를 손바닥 뒤집듯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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