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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하 Oct 01. 2021

양동이를 차기 전 해야 할 게 있어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본 게시글은 영화 Knockin' on heaven's door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차에서 내린 두 남자가 한곳을 향해 걷는다. 두 남자의 발걸음이 닿은 곳에는 검푸른 바다가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펼쳐져 있다. 슬픔인 듯 기쁨인 듯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바닷바람과 함께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간다. 바닷가를 거닐던 두 사람은 데낄라 한 병을 나누어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바다를 바라본다. 그리고 기다린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영화 Knockin' on heavens door의 마지막 장면이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기까지의 여정은 두 사람이 나누어 마신 데낄라 한 병에서 시작된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마틴과 골수암 말기 환자 루디는 우연히 같은 병실에 배정받는다. 같은 병실이라는 것 외에 일말의 접점도 없던 두 사람은 누군가가 숨겨둔 데낄라를 발견하고, 함께 데낄라를 나누어 마시며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 You've never been to the ocean? Then, you'd better run. You're running out of time. "

바다를 본 적 없어? 그럼 달리는 게 좋을걸. 시간이 없어.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루디를 위해 두 사람은 병원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스포츠카를 타고 바다를 향해 떠난다. 하지만 그들이 훔친 스포츠카에는 마피아의 공금 100만 마르크가 실려 있었고, 뜻밖의 돈을 얻게 된 두 사람은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하나둘씩 실현해간다. 졸지에 시한부 환자에서 경찰과 조직원에게 쫓기는 2인조 범죄자가 된 그들은 추격전에도 굴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누구나 루디와 마틴처럼 마음속에 버킷리스트(The Bucket List)를 품고 있다.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을 의미한다. 낭만적인 의미와 달리 버킷리스트의 어원은 다소 살벌하다.




'죽다'라는 뜻을 지닌 관용어 중 '양동이를 차다(Kick the Bucket)'라는 말이 있다. 이 관용어는 중세 시대의 죄수들이 밧줄을 목에 걸고 양동이에 올라선 다음 양동이를 발로 차 죽음에 이르게 했던 교수형에서 유래되었다. 버킷리스트의 'Bucket'은 바로 이 양동이를 의미한다고 하니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버킷리스트란 단어가 왠지 엄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구 멸망 직전의 버킷리스트

만약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누구나 한 번쯤 지구 멸망 직전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으리라. 특히 요즘처럼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고 환경 문제가 그 어떤 사회 문제보다 중대한 이슈로 떠오른 시국엔 더욱 그럴 것이다. 나는 가끔 쓸데없는 공상으로 뇌를 식히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디스토피아적 공상들은 내 과열된 머리가 만들어내는 주된 레파토리다.




지구 멸망까지 24시간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뉴스 속보와 망연자실한 채 TV 앞에 앉아 있는 나의 뒷모습에서부터 공상이 시작된다. TV를 끄고 나니 제일 먼저 가족들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다음으론 노트에 적어 둔 100가지 버킷 리스트가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름다운 피날레가 되겠지만 각자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해 주기로(?) 결심한 나는 100가지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해치우기로 마음먹는다. 몇 년 전 작성한 후 처박아 놓은 버킷리스트를 펼쳐본다. 갈라파고스에서 마린 이구아나와 함께 헤엄치기, 스카이다이빙하기, 10kg 감량하기, 나만의 자서전 출판하기... 24시간 안에 도저히 지울 수 없는 항목이 100가지 중 99가지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원대한 사람이었던가? 아뿔싸, 불필요한 자책으로 벌써 한 시간 하고도 5분을 써버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를 초토화시킬 소행성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일단 공항으로 가서 남은 비행기 티켓이라도 건져볼까. 현재 시점으로부터 가장 빨리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하면 비교적 가까운 국가 정도는 24시간 안에 도착하고도 남을 테지만 속보가 뜬 시점에서 좌석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아니, 그전에 지구 멸망을 앞두고 평소처럼 출근하는 공항 직원은 없을 것이다. 설사 출근한다 해도 온갖 종류의 범죄가 판치는 출근길을 통과하는 동안 죽음의 위협을 피하긴 힘들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지만 나에겐 22시간 55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이 남아 있고, 지워야 할 버킷리스트가 산더미지 않은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현실적으로 이동 가능한 물리적 범위는 집으로 한정된다. 결국 평화롭고 덤덤한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심한다. 친구들, 주변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지구멸망 해시태그 콘텐츠를 웃픈 기분으로 관람한다. 마지막으로 침대에 올곧은 자세로 누운 채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한다.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고 나니 지구 멸망까지 남은 시간은 18시간. 지금이라도 수면제를 사러 나갈까 고민하지만 방범창을 깨부수고 들이닥친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었을 약국의 처참한 풍경을 떠올리고 포기하기로 한다. 아쉬운 대로 수면제 대신 감기약 몇 알을 털어 넣고 잠이 오길 기다린다.




왜 더 늦기 전에 시작하지 않았을까. 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왜 버킷리스트를 지우기 위해 좀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그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못다 한 고백,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버킷리스트, 또라이 상사에게 된통 깨진 날 편의점 가판대에서 먹었던 컵라면의 냄새와 편의점에서 흘러나오던 유행가의 한 소절, 침대 위에서의 무위를 위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앞세워 캔슬 한 약속들, 수치로 얼룩진 불면의 밤들, 실패한 혁명과 반역이라는 오명.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게 죄 그런 것들이었다. 불순한 충동으로 들썩거리는 몸을 침대에 억지로 묶어놓을 순 있지만 한 꼬집의 후회가 암전 된 시야 위로 하나둘씩 떠오르는 건 도무지 막을 길이 없다. 초 단위로 쌓여가는 시간의 껍질에 파묻힌 채 마틴의 말을 떠올린다.




Then, you'd better run. You're running out of time.

그럼 달리는 게 좋을걸. 시간이 없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

인간이 죽기 전 가장 후회하는 건 무엇일까. 지구 멸망을 하루 앞두고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떤 종류의 후회들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불면의 밤을 채울까.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요양원에서 말기 환자들을 돌보던 간병인 브로니 웨어는 자신의 블로그에 수년간 죽음의 문턱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시로 기록했다. 그 기록은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그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그 밖에도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 옛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 내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못한 것 등 비슷한 답변들이 뒤를 이었다. 대다수의 후회는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 · 관계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국내에서 진행된 설문조사 답변들도 비슷한 결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손에 넣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지만 죽음을 코앞에 두고 떠오르는 후회란 1000달러가 부족해 포기해야 했던 페라리나 베버리힐스 꼭대기의 초호화 호텔에서 보내지 못한 여름휴가가 아니다. 죽음 직전 우리를 후회의 망망대해 한가운데 뗏목 하나 없이 던져놓는 건 페라리의 텅 빈 조수석과 초호화 호텔에서 홀로 맞이하는 여름휴가다. 소유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느라 등한시한 청춘과 그 청춘의 사각지대에서 쓸쓸히 잊혀져가는 기념일이다. 그럼에도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을 위한 욕망은 항상 지나칠 만큼 유혹적이라 우리는 양 극단 사이를 간음질하며 최선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 어쩌면 타협점을 찾기 위한 방황이 현대인들의 인생 자체이자 정체성이 아닐까.




100만 마르크보다 중요한 것

마틴과 루디가 병원을 떠났을 때 두 사람은 100만 마르크를 실은 스포츠카를 소유한 채였다. 시작은 100만 마르크와 함께였지만 바다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의 손에 쥐어진 건 모든 여정의 시작인 데낄라 한 병이었다. 두 사람은 무소유 상태로 그 어떤 불순물이나 방해꾼의 개입 없이 생의 마지막 순간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열망의 파도와 성취의 기쁨을 온전히 직시한다. 100만 마르크는 뜻밖의 행운이자 언제든 잃어버릴 수도, 타인에게 빼앗길 수도 있는 가변적인 열망이다. 그것은 타인으로부터 잠시 임대한 권력에 지나지 않지만 바다는 삶의 기저에서 출렁이며 끓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그래서 우리를 멀미나게 하는 불변의 열망이다. 그 열망이야말로 나를 비로소 나일 수 있게 하는 유일무이한 소유다.




버킷리스트의 순기능은 실현의 순간이 아닌 열망에의 추구와 과정에서 온다. 양동이를 차고 싶을 때마다 나는 아직 지우지 못한 버킷리스트를 떠올린다.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때론 비분하게 하며 현실로부터 달아날 용기를 주는 본질적인 열망 - 나만의 '바다'를 떠올린다. 그러니 우리는 대단원의 마지막 장에 후회란 단어를 끄적이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 뭐든 끄적여야 한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100만 마르크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시시한 바람이어도 좋다. 없다면 또 없는 대로 좋다. 어차피 마지막 순간에도 배는 고플 거고, 지구 멸망을 앞두고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죽었다 깨나도 못 잊을 맛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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