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 보이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 맥심 2015년 8월호 편집장의 글 중
1988년 미남 배우 톰 크루즈를 세상에 턱 하고 내놓은 영화 <칵테일>. 그 속엔 느긋한 여름 해변가 분위기를 통째로 갈아넣은 노래 ‘코코모(Kokomo)’가 삽입됐다. “아루바, 자메이카, 우~ 아워너 테큐투 버뮤다~ 바하마, 커~먼 프리티 마마~” 모르는 이가 없을 이 유명한 곡은 우리에겐 ‘서핑 USA(Surfin’ U.S.A.)’란 노래로 잘 알려진 그룹 비치보이스가 활동 끝물에 내놓은 곡이었다.
어린 시절, 이 곡을 듣고 내 머릿속엔 ‘비치보이스=촌스러운 트로피컬 셔츠’란 공식이 강하게 각인됐다. 게다가 매 여름만 되면 거리와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귓구녕에 틀어주는 통에 이 노래와 비치보이스는 나에게 ‘지겹다’는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스물두 살의 겨울, 다시 듣게 된 그들의 노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 엔딩곡 ‘God Only Knows’였다. 부모 죽인 철천지원수도 연인으로 만들 정도로 강력했던 이 영화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다. 이 노래는
한마디로 너무 예쁘다. 사람을 들뜨게 하는 사랑스러운 멜로디와 리듬이, 이 영화를 커플 양산의 장으로 만든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단 저 끝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연인을 향해 들뜬 표정으로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는 젊은 남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달까. 지겨웠던 비치보이스의 노래는 그렇게 내 연애사에서 가장 중요한 BGM이 되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늘 스물둘의 겨울로 돌아간다.
팝 음악사에서 천재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사람이 비치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이다. 비틀스의 업적과 비교되는 비치보이스의 1966년 명반 <펫 사운즈>는 ‘서핑 USA’나 ‘코코모’ 같은 여름 주제곡과는 다른 독특하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러브 앤 머시>는 <펫 사운즈>를 끌어낸 천재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적 집착과 병적인 실험정신을 잘 보여준다.
이 영화를 계기로 요즘 그 음반을 자주 듣는데, 가장 많이 찾아듣게 되는 곡은 2분 24초의 짧은 연주곡 ‘Let's Go Away For A While’이다. 차분한 종소리로 밝게 시작해서 여러 음으로 장엄하게 퍼지며 폭발할듯 상승하다가, 순간순간 강렬하게 음을 터뜨린다. 구성은 역동적인데 전체 리듬은 끝까지 차분함을 유지한다. 그러다 갑자기 조용히 사그라진다. (내 뇌가 음탕한 생각에 특화되어 있어서 그런가? 이건 100% 교미를 연상시키는 진행이다.) 이 곡을 들으면 감정이 벅차올라 지금 눈앞의 현실이 아닌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우리 잠시 동안 떠나있자’며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 어떤 말보다 설득력이 있다. 마침 여름이라 엉덩이가 더욱 가벼이 들썩인다. 지금처럼 여유 없는 일상 속 나에게 이 노래는 ‘도피의 유혹’이다.
비치보이스의 음악은 내게 각기 다른 시절, 각기 다른 감정을 주었다. 그렇다면 이 여름, MAXIM은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어떤 독자에겐 닳고 익숙해진 지겨움, 또 어떤 독자에겐 처음 만나는 설렘,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일상을 잠시 탈출할 도피처일 거다. 어떤 기분이든 당신의 현재를 함께할 친구로 MAXIM 8월호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게, 지금부터 시원하고 화끈하고 흥분되고 오싹하고 즐겁고 눈 돌아가게 멋지고 약 쪽쪽 빤 듯 재미있는 MAXIM으로의 바캉스를 시작하겠다.
Let's Go Away For A While!
음악 직접 듣기: https://youtu.be/89aFiYDiF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