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나을까 생각하다, 두 개의 상자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개의 상자는 '판도라의 상자'와 '슈뢰딩거의 상자'다.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 테고, 말하려는 주된 내용도 아니라 늘쩡거리지 않고 말하겠다.
알다시피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에서 불을 훔쳤고, 뒤끝작렬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산에 묶어 독수리에게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했고, 이것도 모자라 그와 불경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내고,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선물이라며 상자를 건네면서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했지만 호기심 강한 판도라는 결국 상자를 열었고, 그 안에서 인간의 온갖 불행이 풀려난다. 슬픔, 미움, 역병, 광기, 시기, 원한, 가난, 전쟁, 욕심, 질투, 복수 등 온갖 불행이 나오자 깜짝 놀란 판도라는 급히 상자를 닫았지만 마지막 한 가지 불행이 남는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불행이다. 마지막에 남은 불행이 희망이라며 (1) 모든 불행을 이길 수 있는 희망이 남았다느니, (2) 인간들이 온갖 고통을 겪어도 희망을 통해서 견딜 수 있다느니, (3)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희망만은 잃지 말아야 된다느니, (4) 그래도 삶은 희망적이라느니, 라며 말도 많지만 특별하게 의미 부여할 필요 없다. 불행 중에서 가장 나쁜 불행이 희망인 거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기도 하고, 미래의 희망을 위해 현재의 욕망을 포기하게 만들고, 상황이 뻔히 보이는데도 '다 잘될 거야, 힘내'라고 말하며 불행을 더 오래 끌도록 만드는 게 희망이다. 니체는 희망이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악 중의 최고의 악이라고 했다.
이중성
한 시간 후면 죽을지도 모른다. 구석에는 불길한 장치가 있고, 열린 뚜껑을 통해 상자 안을 들여다보는 인간이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눈도 침침해지며 잠이 스르르 몰려오고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슈뢰딩거 박사, 저 상자가 그들의 비논리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란 말이지."
"그렇다네. 상자 구석에 있는 방사능 물질이 한 시간 안에 붕괴될 확률은 50퍼센트라네. 만약 핵분열이 일어난다면 검출기가 작동을 하고, 동시에 검출기에 연결된 망치가 움직이고, 독가스가 든 유리병을 깨뜨릴 걸세. 그렇게 된다면 안타깝지만 고양이는 죽게 된다네, 아이쉬타인 박사."
"고양이에게는 안 됐지만, 그래도 양자역학의 허무맹랑한 논리를 반박할 수만 있다면 의미가 있겠지.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전자는 파동이지만 관측하는 순간 입자가 된다는 게 말이. 전자가 자신들이 관측당하는 것을 알기나 한단 말인가? 아니, 무슨 죄다 중첩 상태였다가 관측하면 상태가 결정된다고? 참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네."
"그들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창문밖에 보이는 달도 관측을 하지 않으면 현재의 상태를 모른다는 말인데, 조금 전에 달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경험에 의한 추론일 뿐, 달의 존재여부를 알려면 결국 달을 봐야 한다는 말인데..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수긍이 안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네."
"그러게 말이야. 양자가 중첩상태였다가 관측을 하면 상태가 결정되는 거라니, 그들의 말을 믿는다면 상자의 방사능이 검출될 확률이 50%이니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공존하고 관측을 하면 하나의 상태가 결정된다는 말인데.."
우리 고양이들이 상자 속이라면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니깐 즐거운 마음으로 그 상자로 들어가겠거니 생각할 거다. '슈뢰딩거의 상자' 안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온전히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다. 살아있을 확률과 죽을 확률이 각각 1/2이다. 그 묘(猫)한 고양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들이 양자역학이 맞네, 틀리네, 쓸데없이 떠들 때 몸소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말들을 주워섬기진 않고 그냥 넘어가겠다. 인간들에게도 육체의 생존과 안녕, 놀라운 삶에의 의지 대신 죽음을 선택한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거 알 거다. 그리스도, 소크라테스, 순교자들이다. 신념이나 더 높은 차원의 목적을 위해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인간들이다.
줄무늬
어쨌든 하던 이야기는 마저 끝내도록 하겠다. 고전역학은 우주의 모든 사건은 현재 상황을 알면 물리법칙으로 미래를 예측가능한다고 확신했지만,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여러 가지 상태의 중첩으로 나타나는 체계는 관측이 실시되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확정된다고 했다.
1927년 '코펜하겐의 해석'을 위해 모인 물리학자들. 아인쉬타인, 보어, 퀴리, 로렌츠, 플랑크, 하이젠 베르크, 슈뢰딩거, 드브로이, 보른 등.
그림 1 그림 2
무슨 말이냐면 이런 이야기이다. 전자를 이중슬릿을 향해 쏘았을 때 전자가 입자라면 [그림 1]처럼 벽면에 두 줄이 나와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림 2]와 같이 여러 개의 줄이 나온 것으로 보아 전자는 물결 같은 파동임이 밝혀졌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일이 생긴 원인을 찾기 위해 관측을 시도하면 다시 두 줄이 나오면서 입자의 성질을 띤다. 보지 않으면 파동이고, 보게 되면 입자가 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거다. 당신이 배팅 연습장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피칭머신과 당신 사이에는 두 개의 틈새가 있는데 피칭머신을 보고 있으면 공이 두 개의 틈새 중 한 곳으로 공이 나오지만 피칭머신을 보지 않으면 두 개의 틈새로 공이 동시에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원자나 전자 같은 미시세계 물질의 운동을 연구하는 양자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건 인간이 자신들의 관점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이해하기 힘든 거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지구는 고정되어 있고 하늘이 돈다고 했고, 지구가 초속 1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태양을 돌고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고, 하루가 24시간인 것이 지구에서만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생명체이다.
인간들이 원자나 전자처럼 아주 작은 물질이 가지는 이중성, 즉 관측하기 전에는 파동과 같은 존재이지만 관측하면 입자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를 동시에 특정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하나를 특정하는 순간 다른 하나를 특정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궁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인간들이 쓰는 말 중 '나무를 보면 숲이 보이지 않고, 숲을 보면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나무는 입자이고, 숲은 파동이라고 생각하자. 하나를 특정하면 다른 하나는 특정이 안된다. 이런 적확한 설명도 이해 안 된다면 당신들이 사랑하는 그녀를 생각해 봐라. 나와 만나고 있을 때의 그녀와 나를 만나지 않을 때의 그녀는 사뭇 다르다. 이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아이들이 하는 놀이 중에 '무궁화 꽃이 피었다'를 생각해 봐라. 뒤를 돌아보기 전에는 술래를 향해 슬금슬금 파동처럼 다가오다가 뒤를 돌아보면 입자처럼 멈칫하는 행동이 딱 양자역학을 닮았다. 김춘수의 '꽃'에는 이런 시구도 있다. '내가 너를 보기 전에는 파동에 불과했지만, 너를 보았을 때는 그는 나에게 와서 입자가 되었다'라고 했다.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우주의 작동원리에 관해서다. 췌사가 너무 길다고 뒤에서 궁시렁거리지 말고 들어봐라.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면 "그게 뭐 중요한데, 아무려면 어떠냐?"라고 생각하겠지만 과학자들은 눈이 빠지게 그 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과학자는 세계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설명을 하지 못하면 밤잠을 설치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힘이나 다른 법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면 같은 것이었다는 이야기에 흥분한다. 모든 물리법칙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평생을 바친다. 지금까지 그들은 땅의 법칙과 하늘의 법칙을 통합시킨 후 고전역학이라고 했고, 시간과 공간을 합쳐 시공간이라고 하지를 않나, 시공간의 휘어짐을 중력의 역할로 바꾸면서 중력을 새롭게 엮어버렸다. 그리고 전기(電氣)와 자기(磁氣)도 실은 같은 것이었다고 하면서 전자기력이라고 말하고, 핵력(강력과 약력)까지 묶어 통일장 이론으로, 여기에 중력을 다시 더하여 초끈이론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다. 우주의 물질이 신발끈 같은 겁나 센 끈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이다. 이 끊어지지 않는 끈이 우주의 최소 단위라는 것이다. 이런 말장난은 결국은 우주의 탄생과 작동원리를 알고 싶은 거다. 모든 것을 인과관계로 해석하려는 설명충 들이다.
인간들이 과학을 통해 발견한 사실들. 다시 말해, 우주의 탄생을 빅뱅이라고 하고, 질량을 가지는 물체 사이에는 중력이 작용하고, 전기를 띤 물체 사이에는 전자기력이 작용하며, 원자핵 속의 소립자 사이에서 핵력(약력과 강력)이 발생한다는 사실들.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중력, 전자기력, 약력, 핵력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들은 신호위반 차량만큼 많다. 그들이 한 가지 놓친 힘이 있다. 대략 난감할 거다. 그 힘은 바로 '대략 난감력'이다. 우습기 짝이 없는 소리가 아니다. 사실, '대략 난감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곁들이찬에 불과하다.'대략 난감력'의 근원은 우주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에서 작용하는 힘이다. 그 힘을 제외하고 우주의 탄생과 원리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우주는 신의 생리현상 중 하나인 재채기로 내용물이 튀어나왔다느니, 신이 입안에서 오물거리다 더럽게스리 '퉷'하며 씨를 멀리 내뱉었다느니, 우주가 알로 시작하여 알에 금이 가면서 우주 알의 폭발로 빛과 열기가 나왔다느니, 밤에 콩의 꼬투리를 세워 깍지를 열자 후드득 쏟아져 나왔다느니, 흠뻑 젖은 우산을 '탁'접으면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느니, 아니면 삐죽 삐져나온 실밥 한가닥을 '홱' 뜯어 모든 것이 흝어졌다는 말이 더 낫다.
우연
도저한 나의 말이 인과관계가 없다고 터무니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은 무엇이든 연관을 지어 인과관계를 통해 논리적으로 껴맞추고 싶어 할 거다. 불확실함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규칙을 세우는 걸 평생 해 왔으니 이해 간다. 그것이 인간의 진화에 유리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지금 삼촌집사는 우연히 '연암 박지원'이 그의 친구이자 처남인 이재성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꿈에 중을 보면 문둥이가 된다는 속담이 있지요. 무슨 말이겠습니까. 중은 절에서 살고 절은 산에 있고 산에는 옻나무가 있고 옻나무는 사람을 문둥이처럼 옻 오르게 합니다. 꿈에 본 중과 문둥이는 이렇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시작과 끝만 보면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일들이 많다. 하지만 시작과 끝 사이를 채우는 것은 아주 사소하고 예측불허한 수많은 우연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신들이 이 글을 읽는 것도 우연이다.
결국
하나의 전자가 여러 곳에 존재하지만 관측하는 순간 하나의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은, 여러 곳에 존재하는 우주 중 그 전자가 관측되는 우주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전자가 갈라지듯 계속 갈라지면 무한한 우주가 생기고, 여러 정체성을 가진 집사들과 내가 있다. 우연 하나하나가 수많은 세계를 만들고, 수많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 그곳에 있다. 그곳에서 집사는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는 소설가,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사업가, 자유로운 영혼의 뮤지션 등 가능한 모든 것을 경험하고, 인생의 굴곡을 다시 경험할 것이다. 인정받는 삶을 살기도 하고,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세계에서는 소통도 자연스럽고, 세상에 대한 다정함을 회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어떤 곳에서, 그에게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여인을 만나, 은밀하게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와 늦도록 얘기를 나누고, 가슴속에는 따뜻한 일렁임이 일어나고, 세상의 모든 일이 가능할 거 같은 기운을 얻고, 그녀와의 입맞춤은 그녀 또래의 여인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포괄적인 온기를 느끼고, 그런 그녀 곁에서 늙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