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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학 Apr 16. 2017

몰입을 위한 조직문화

집중의 능력 '딥 워크', 그리고...

10년 전 일이지만 나는 원래 전산과 출신이다. 전산과는 대부분의 과목들에 코딩 프로젝트가 있다. 프로젝트 제출 기한이 다가오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밤에 코딩을 하곤 했는데, 밤에 집중이 더 잘되기도 했고 기껏 짜 놓은 프로그램이 제대로 안 돌아가면 버그 몇 개 찾는데 시간이 몇 시간씩 훌쩍 가버렸기 때문이다. 속 타는 마음으로 코드 중간중간 System.out.println으로 변수를 하나씩 출력해가며 오타나 변수 이름을 잘못 쓴 곳들을 찾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갔던 것 같다(하얗게 불태웠다).


그렇게 코딩을 하다 나는 부전공인 경영을 따라 컨설턴트로 일을 시작했다. 컨설팅은 주기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업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프로젝트로 매우 바쁜 시기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그러나 짧은) 시기가 번갈아 되풀이된다. 하지만 여유로운 시기라도 퇴근을 일찍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컨설턴트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 이메일을 체크하고 인터넷 뉴스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회사에서 ‘시간을 때우는’ 여러 유혹거리가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요즘 내가 일하는 스타일은 이렇다.

1) 풀어야 하는 문제에 필요한 정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2) 딴짓(다른 일, SNS, 운동, 웹서핑 등등)을 하며 무의식 중에 정보들이 서로 연결되기를 기다린다.

3) 정보들이 연결이 되면 딴짓을 그만두고 원래 해야 할 일로 돌아와서 완성한다.


예를 들어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도 비슷하게 쓰여진다. 글을 쓰고 싶은 작은 주제 하나하나에 대해서 떠오를 때마다 머릿속 한 켠에 넣어뒀다가, 어느 순간 무의식 중에 몇 개의 주제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이 되면 그때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른 브런치 글들보다 조금 긴 편이기도 하고, 항상 하나의 글에 연관된 서너 가지의 개념이나 사례, 개인적 경험이 나오게 된다.


나는 뇌과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뉴런과 시냅스를 언급하며 인간의 무의식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소개하는 책들을 보면 내가 일하는 방식이 좀 특이하긴 해도 이상한 건 아닌 것 같다. 문제는 2) 딴짓하는 시간이 정말 머릿속에 개념이 연결되기까지 필요한 시간 동안 딴짓을 하는 것인지, 딴짓 그 자체에 중독되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딴짓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집중해야 할 바쁜 시기에도 틈나면 자꾸 딴짓을 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떠나서 SNS 중독 자체도 문제다. 나는 원래 페이스북을 했었지만 중국에 있는 3년여의 시간 동안 페이스북을 거의 하지 않았다(vpn 접속 자체가 귀찮았다...). 가끔 한국에 출장 오면 요즘 뭐가 이슈인지,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작년 말에 귀국하고 본격적으로 페북을 다시 시작하면서 금세 가족들과 식사하면서도 계속 핸드폰을 쳐다봐야 하는 수준이 되었다. SNS 중독엔 브런치도 한몫하고 있는데, 수시로 들어가서 구독자가 몇 명인지, 최근 글이 공유가 몇 번 되었는지 체크한다. ‘이카루스 이야기’의 세스 고딘은 매일 글을 쓰되 조회수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나 보다.



완전한 집중의 상태 : 딥 워크


집중력 문제로 고민하던 차에 칼 뉴포트의 ‘딥 워크Deep Work’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MIT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으로 조지타운대 교수이자 학습 전문가로 인기 블로그 ‘Study Hacks’를 운영하며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한다. 그는 5~6시 이후에는 거의 일하지 않으면서도 대학을 졸업한 후 10년 동안 책 네 권을 쓰고, 박사 학위를 땄으며, 수십 편의 논문을 내고, 조건부 종신 교수로 채용된 비결이 바로 딥 워크에 있다고 말하며, 딥 워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딥 워크 : 인지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완전한 집중의 상태에서 수행하는 직업적 활동. 딥 워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능력을 향상시키며, 따라 하기 어렵다. 



이 시대는 온갖 유혹거리 속에 집중하기 쉽지 않은 시대이다. 반면에 딥 워크를 할 수 있는 능력은 더없이 중요해졌다. 우선, 지금은 직업적 존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시대이다. ‘아웃라이어’의 일만 시간의 법칙이 유행했듯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는 딥 워크가 필요하다. 


그리고 네트워크로 모든 것이 이어진 지금 세상에서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무한에 가까운 잠재적 고객들과 연결될 수 있다. 반면 그저 그런 성과를 내는 사람은 빠르게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 혹은 심지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런데 탁월한 성과를 내는 데에는 완전한 집중, 즉 딥 워크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처럼 딥 워크는 어느 날 갑자기 자리에 앉아 집중해야지 생각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집중력도 훈련이 필요하며, 생각의 근육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훈련을 위해서 저자는 네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몰두하라 :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하루 일과를 미리 계획해서 딥 워크를 할 시간과 장소를 따로 정해두고, 매일 몇 시간씩 딥 워크 했는지 기록한다. 일과 후에는 일 생각을 완전히 잊고 제대로 휴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료함을 받아들여라 : 잠시만 틈이 나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린다면 자극에 중독된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 출퇴근길, 산책, 샤워 같이 머리를 쓸 필요가 없는 일을 할 때, 특정한 문제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소셜 미디어를 끊어라 : 한 달 동안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지 말아 보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탈퇴하라. 시대에 뒤쳐진 발상 같지만, 직업 자체가 소셜 미디어와 연관되어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피상적 작업을 차단하라 : 의미 없는 미팅, 이메일 수신함을 수시로 체크하는 것들이 바로 피상적 작업이다. 피상적 작업을 하다 보면 별생각 없이 시간이 잘 가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들게 된다. 전체 일하는 시간 중 몇 퍼센트를 피상적 작업에 쓰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50%가 넘어간다면 조치가 필요하다.


이 내용들을 읽으며 ‘생각이 서로 연결될 시간이 필요하다’며 딴짓을 합리화했던 내가 사실은 집중을 위한 근육이 약해져 있고, SNS 중독 상태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워서 실행해 보기로 했다.


하루 일과를 삼십 분 단위로 계획한다. 

퇴근 전에는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일 생각은 완전히 잊는다.

뉴스 사이트들은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에만 확인한다.

회사 이메일은 항상 켜놓지 않고 한 시간에 한 번씩만 확인한다. 퇴근 후엔 확인하지 않는다.

사내 메신저와 카톡도 최소 30분 이상의 간격을 두고 확인한다. 퇴근 후엔 적어도 2시간에 한 번만 확인한다.

핸드폰에서 페이스북을 지운다. 페이스북은 퇴근 후 집에서만 체크하고 주말엔 하지 않는다.

브런치 알람을 끈다.


이제 이러한 것들이 정말 집중력을 높여줄 수 있을지 몇 달이 지나면 아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직에서의 시간 사용의 자유와 몰입의 관계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딥 워크를 위해서 내가 실행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혹시 보면서 ‘우리 회사에선 못하겠네’ 싶은 것들이 있지 않은가?



일과 계획 ➞ 팀장이 아무 때나 부르는데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너와 나는 다른 시간을 달린다 - Manager’s Schedule, Maker’s Schedule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다. 인간의 동기부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결정한 것이라는 느낌이다. 이 권한은 업무 상의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시간을 계획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된다. 아무 때나 팀장이 불러서 30분 한 시간씩 미팅하는 회사, 일주일 동안 출장 가야 한다고 이틀 전에 알려주는 회사, 금요일 저녁에 갑자기 내일 출근하라고 하는 회사는 직원들이 시간 계획을 주도적으로 세울 수가 없다. 동기부여부터 안 되는데 몰입은 당연히 기대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사내 메신저와 카톡 ➞ 팀장 메시지는 1분 안에 답해야...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팀 동료의 실제 사례이다. 이 사람이 주말에 팀장님이 건 전화를 못 받아서 한 시간쯤 후에 다시 팀장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첫마디가 “내가 지금 xxx님이랑 한가하게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전화를 건 게 아니에요.” 였다고 한다.


항상 연락을 받을 수 있는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하는 조직문화를 이 책에서는 상시 접속 문화culture of connectivity라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것이 전화와 카톡이다. 위에서 딥 워크를 위해서는 업무 시간의 몰입만큼 업무를 떠난 순간 일을 완전히 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퇴근 후건 주말이건 팀장의 전화를 못 받았다고 개념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조직이라면 제대로 된 쉼이 있을 수 없다. 


저자는 SNS도 없고 메신저도 안 쓰는 것 같으니 아예 언급을 안 했겠지만, 이 책대로 하려면 일과시간 중에도 딥 워크 하기로 정한 시간에는 그 누가 메시지를 보내도 씹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상사와 합의된 특정 시간대에는 일과시간이더라도 좀 늦게(그래 봤자 두어 시간)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에 대해 용납해 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연히 업무시간 외에는 당장 회사가 망할 것 같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카톡으로 업무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끼리 제발 단톡방 만들지 말자. 이미 단톡방이 있다면 웬만하면 없애길 바란다. 이것만큼 사람들 스트레스 주는 것도 없다. 이전 회사 이야기를 별로 안 하려고 하지만, 중국 주재원 시절 회사에 수많은 카톡방이 난무했었다. 각 팀마다 기본으로 카톡방, 중국 직원들까지 다 합친 카톡방 두 개를 기본으로 깔고 거기에 맡은 업무별 카톡방, 임원이 들어간 카톡방, 임원 없는 카톡방, 프로젝트팀 카톡방, 마지막 교회 카톡방까지... (주재원은 교회 카톡방도 태반이 회사 사람들이다)


그 당시 나는 여러 브랜드에 걸친 프로세스 혁신 프로젝트의 PM이었는데, 웬만한 카톡 방에서는 도망 다니고 있었으나 결국 이 프로젝트 카톡방은 벗어날 수 없었다. 대여섯 분 정도의 임원들과 각 브랜드 주재원이 다 들어가 있는 거진 50명에 가까운 카톡방이었다. 수시로 각 브랜드에서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카톡방에 올리고 밤에는 일일보고를 했는데, 솔직히 아주 가관이었다. 카톡방은 금세 변질되어 온갖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있는 사진, 주말에 나와 일하는 사진, 퀭한 모습으로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는 사진 같은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어필용 사진들이 난무하고, 일일보고는 경쟁적으로 10시 11시까지 올리면서 '늦게까지 일했어요'를 티 내는 글들이 올라왔다. 마지막에 밤 열두 시에 가까워 몇몇 임원분들이 총평 비슷하게 고생했다는 글(지켜보고 있다)을 올리면 하루가 마무리되는 식이었다.


그 당시에 '업무 카톡을 안 받을 수 있다면 연봉의 8.7%라도 덜 받을 수 있다'는 직장인 설문조사 기사를 봤다. 

내 심정도 비슷했다. 지금도 몇 안 되는 팀원과 카톡방이 있기는 한데, 회사에서는 전혀 안 쓰다가 팀 출장을 가게 되면서 공항에서 연락하고 만나기 위해 만들었다. 카톡방에 올라오는 몇 안 되는 이야기는 오늘 무슨 사정이 있어서 아침에 조금 늦는다 정도가 다이고, 업무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LG U+, 넷마블 같은 회사들은 공식적으로 퇴근 후나 주말에 카톡을 금지했다고 하고, 모 대선후보의 공약 중 하나도 퇴근 후 카톡 금지이다. 만약 당신이 팀원들과 카톡방이 있고, 그 카톡방에서 업무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것도 주로 퇴근시간 후나 주말에 업무 이야기를 하는 용도로 카톡방을 쓰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당장 방폭 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 카톡방은 잠재적인 팀원의 퇴사 사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브런치를 운영하고 있는 카카오... 이 글을 보시면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나갈 때 엄청 눈에 띄게 '~~님이 나갔습니다' 표시 좀 없애주세요. 쥐도 새도 모르게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회사 이메일은 항상 켜놓지 않고 한 시간에 한 번씩만 확인한다. 퇴근 후엔 확인하지 않는다 ➞ 이메일은 무조건 빨리 답변하는 것이 미덕 아닌가?


나도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회사 이메일을 항상 켜놓는 것이 습관이다. 그래야 매일이 오면 알림도 뜨고...


이메일을 얼마나 자주 확인하고 얼마나 빨리 회신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다. 또, 맡은 업무에 따라서 받는 이메일의 양도 다르고 질도 다르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를 쓴 도쓰카 다카마사는 '메일의 회신 속도가 당신에 대해 말해 준다'라고 말하며, 프로페셔널이 가져야 할 습관 중의 하나로 최대한 신속하게 이메일에 답변하는 것을 들기도 했다.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어떤 글을 봤다. 자신이 새벽 두 시에 이메일을 보내도 30분 내에 답변을 받을 수 있는 두 사람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란 어투였던 것 같다.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진 않겠다. 참고로 IT/스타트업 쪽 리더들이다.)


직장인으로서 이메일에 답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받은 편지함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온갖 이메일에 회신하려 하는 것은 딥 워크를 심각하게 방해한다는 것이다. 일하다 집중력이 살짝 떨어지려 할 때, 화면 구석에서 이메일 수신 알람이 뜨고 곧 이메일을 읽으며 딴생각에 빠져든 경험은 직장인 누구나 수시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알람이 뜨지 않았더라도 괜히 일하다 집중이 잘 안될 때 이메일 수신함을 뒤적거리는 것도 하나의 중독이다.


Growthhacking이 발달한 덕에 지금 세상엔 온갖 알람이 너무 많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시간대에. 회사 업무 이메일을 두고 누군가 growthhacking을 하진 않았겠지만, 이메일을 항상 띄워놓는 것 또한 알람 중 하나이다. 업무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시간대를 정해놓고 이메일을 잠시 닫아놓는 것이 좋겠다.


이 책에는 BCG(보스턴컨설팅그룹)의 사례가 나온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레슬리 펄로Leslie Perlow는 BCG 경영진을 설득하여 한 팀이 일주일에 하루 동안은 회사 안팎으로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도록 강제하는 극단적인 실험을 했다. 처음에 팀원들은 고객사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자신의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했으나, 나중엔 팀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리고 팀원 간의 의사소통이 개선되었으며 결정적으로 고객에게 더 나은 결과물을 제공했다.


그런데 이메일에 늦게 회신하는 것, 혹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메일에 아예 회신을 안 하는 것은 나만의 결심 문제가 아니다. 조직의 분위기 또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화와 카톡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메일에 대해서도 받은 사람이 메일을 열어보는 데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이며, 답변은 어떤 확률로 언제쯤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조직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수준이 있다. 수시로 메일로 자료를 요청하면서 서너 시간 후까지 부탁한다는 메일이 오고 가는 회사라면 그 회사 직원들은 하루 종일 이메일 대응만 하다가 하루가 갈 것이다. 만약 딥 워크를 위해 특정 시간대에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으려 한다면 적어도 직속 상사에게는 그 사실을 미리 협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생산성과 분주함의 차이


생산성은 말 그대로 정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일을 많이 해도 시간도 같이 길어진다면 사실 생산성은 높아진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근무시간 자체를 줄이지 않는 한 OECD에서 생산성이 낮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대다수 한국 회사가 답이 없는 이유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었다. ‘대다수 한국 회사가 답이 없는 이유’라는 제목인데, 대충 내용은 이렇다.


IT회사를 다니며 고객사와 개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팀에 ‘문대리’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거의 슈퍼맨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유하자면 본업은 형사인데 변호사 업무도 볼 줄 알아서 팀에 변호사가 퇴사하자 변호사 일도 같이 보고 있고, 판사가 퇴사하자 심지어 판사 일까지 같이 맡있다. 거기에 본업인 형사는 담당 지역이 서울시 전체 수준. 그런데 모든 일을 6시 이전에 끝내고 퇴근한다. 세명이 매일 같이 야근하다가 퇴사해버린 일을 혼자서 여섯 시 전에 끝내는 것이다. 

얼핏 봐도 열명분의 일을 하는 그 친구는 클라이언트 부장에게 찍혀서 교체당할 위기에 있다.

사유: 6시 퇴근.


딥 워크를 쓴 칼 뉴포트는 교수다. 미국의 조직문화 자체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직접적인 상사가 없는 교수는 특히 본인의 의지에 따라 시간 사용에 자유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기가 매일 5시 반 전에 퇴근한다고 계속 강조한다. 그런데 우리는 딥 워크를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고 여섯 시에 퇴근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처음에 딴짓하는 습관이 생긴 것은 ‘일을 끝냈음에도 집에 갈 수 없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처하면서부터였다.


저자가 매일 5시 반에 퇴근한다고 말하는 이유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딥 워크를 통해 능률적으로 일을 처리해서 5시 반 전에 퇴근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는 ‘5시 반 전에 퇴근해야 하기 때문에 그전에 미친 듯이 일할 수밖에 없는’ 데드라인의 의미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미국에서 쓰고 있다. 잠시 출장 나와서 미국인들과 미팅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여섯 시 좀 넘으면 집에 가지만 그 전에는 정말 열심히 일한다. 사내 식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식사를 가져다가 자기 책상에서 먹으며 일한다. 밥 먹을 타이밍을 놓쳐서 두시가 넘어서 식당에 들르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물론 이것도 미국인에 대한 나의 편견일 수 있지만, 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일찍 퇴근해도 뭐라 할 말이 없다.


업무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팀으로 일할 때 개개인이 얼마나 성과에 기여하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하긴 어렵다(주관적으로는 느끼겠지만).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 자체가 팀이 그럭저럭 굴러가면 개개인의 생산성과 성과에 대해 깊게 따지지 않는 것 같다.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따지는 것 자체를 서로 불편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점점 측정하기 어려운 ‘생산성’ 대신 눈에 보이는 ‘바쁨’을 측정하게 된다. 실제 성과는 모르겠지만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좀 더 일을 많이 하고 고생했을 거라 생각한다. 자연스레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늦게 가고, 일이 없어도 사무실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 일상화된다. 우리가 회사에서 ‘정신없다’, ‘바쁘다’란 말을 내뱉는 것은 실제로 바쁜 것도 있겠지만 남들이 나의 기여도를 알아줬으면 하는 어필도 분명히 들어있다.


그런 면에서 삼성 일부 계열사에서 시행하는 자율 출퇴근제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율 출퇴근제란 일주일에 40시간, 하루 최소 4시간만 채우면 그날그날 언제 출근하고 퇴근할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제도이다. 


물론 매일 출퇴근 기록이 남기 때문에 귀찮은 부분도 있고, 팀 분위기에 따라 자율권이 없는 부서도 있으며, 그나마 이 제도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금요일에 일찍 퇴근하기 위해 월~목에 좀 더 일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자율 출퇴근제가 꼭 딥 워크와 연결된다고 아직은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말 의도대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면 분주한 ‘척’ 하지 않고 생산성 높게 일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율 출퇴근제가 자리 잡아도 상사가 얼마나 야근을 많이 했나를 마음속 평가지표로 보고 있으면 무슨 제도를 갖다 붙여도 소용이 없다. 이 부분은 상사들의 인식 변화에 시간이 필요하다. 



상사보다 먼저 퇴근할 수 있는가? 


가끔 본인은 꼰대가 아니며, 열린 마음을 가진 상사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좀 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금방 드러나기도 하지만, 더 쉬운 방법은 그분의 부하 직원들과 이야기해보면 된다. 나 같은 경우 직관지표 하나가 있는데, 상사보다 먼저 퇴근할 수 있는지를 물었을 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그 상사는 그리 쿨한 상사는 못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일반적으로 상사가 부하 직원보다 실무는 적다. 일이 끝나는 순서대로 퇴근한다면 상사가 먼저 퇴근할 수 있다. 상사는 일이 다 끝났는데 부하 직원의 눈치를 본다고 팀원이 일을 다 마치고 퇴근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내가 가끔 이렇게 하고 있는데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를 본 후로 이렇게 하고 있다.) 


문제는 반대로 부하 직원이 일이 먼저 끝났는데 상사 눈치를 보느라 집에 못가는 경우다. 부하 직원은 일이 빨리 끝나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런 날 상사가 퇴근 안 했다는 이유로 회사를 못 떠나고 있다면 동기부여고 몰입이고 다 부질없게 느껴질 것이다. 


자주 인용하는 배달의민족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11가지 방법'에 보면 6번에 '휴가 가거나 퇴근 시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라고 되어있다. 눈치 주는 농담뿐 아니라 눈치 자체를 주면 안 된다. 요즘은 아예 퇴근할 때는 인사를 안 하고 가는 회사들도 생기는 추세 같다.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로도 충분하다. 일을 마쳤는데도 집에 못가는 스트레스는 이제 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비군들도 집에 일찍 보내준다고 하면 현역 뺨치는 명사수가 된다. 몰입과 생산성의 조직을 추구한다면 데드라인(퇴근 시간)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일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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