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지배 엘리트로 출세하려고 '독한 마음'을 먹고 공부하는 극소수의 학생들은, 내가 보기엔 실력 있는 학생이라기보다 인내력이 강한 학생이다. 그들은 권위주의적 교육방법이나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적 교육 방법에서 묵묵히 참아가며 복종한다. (…)그리고는 자기네들이 학생 시절에 받았던 억압에 대한 울분과 긴 인내의 과정을 통해서 쌓인 울화를, 아랫사람이나 새 세대의 젊은이들한테 '한풀이'형태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동안 이은바 '괴짜' 등 개성이 강한 사람들은 학생시절부터 소외돼 버려, 타고난 창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씁쓸한 열패감만 느끼며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건 확실히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마광수,『자유에의 용기』250~251쪽.
그럴싸한 말 같지만, 결국 '소외된 괴짜'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으로서는 근거가 빈약하지 않나 싶다. 소외되기를 괴짜 스스로가 바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손실'이라는 표현도 흥미롭다. 괴짜는 오히려 국가시스템의 전복을 바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문맹이 거의 없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지식인들이 자신들과 일반국민들을 변별해 보려는 욕구는 부단히 계속된다.
이럴 경우엔 문자를 해독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지식인이고 아님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학벌의 높고 낮음에 따라 지식인의 자격이 암묵적으로 결정된다. 대학 숫자가 적은 때는 대학원 졸업자를 지식인으로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석사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더 늘어나면 보나마나 박사과정 이상의 학자를 옥상옥(玉上玉)으로 만들자고 제안할게 뻔하다."
-마광수, 「지식인」, 『자유에의 용기』, 190쪽.
마광수는 어느 글에서, 자신은 교수자리에 그다지 욕심이 없고, 단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택한 직업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마광수에게 '대학교수'라는 지위는 아주 중요한 가치이다. 그것을 깎아내리고, 그것의 권위를 조롱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하물며 '연세대학교'라는 '명문'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어쩌면 그의 표현대로 마교수는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욕 잘 하고 싫은 소리 잘 하고 교양 없이 마구 성에대해 떠들어대는 그의 특징은 교수와 性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특징의 결합으로 인해 더욱 특이하게 부각된다. 거리의 부랑인이 술에 취해 성에 관한 욕을 노골적으로 해댄다면 별 미친놈 다보겠네 하며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교수'가 '야'한 소리를 하다니."
-이숙경, 「마광수는 왜 야한 여자만 좋아하는가」, 193쪽.
'교수와 性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권위'와 '性'은 서로 연관이 깊다. 권위가 아니라면 性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性이 아니라면 권위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각 성별은 결국 권위이자 지위인 것이다. 날 때부터 갖는 권위, 죽을 때까지 박탈 당할 걱정이 없는 권위. 그런 관점에서 마광수가 수행한 글쓰기가 다소 순진해 보이기는 한다. 누구나가 갖고 태어나는 권능을 있는 그대로 쓴다는 것은 문학이라고 하기가 무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서만 끝인 것은 아니다. 마광수는 그러한 생득권을 비웃고 조롱하고 양지로 끌어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