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가 되면 우리 직장인들은 한바탕 긴장하게 된다. 아무래도 곧 있을 사장단 발표, 임원인사 그리고 조직개편으로 이어지는 3 연타에 다음 1년간의 큰 변화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직장 내 나의 미래와도 직결되고 소위 말하는 동아줄의 개념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내가 모시고 있던 상사의 생존 여부에 따라잡고 있는 동아줄이 건강하냐 썩었냐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직장 정치와 연결되지 않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큰 차이를 못 느낄 수 있으나 소위 사회생활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은 자기 능력보다 정치성이 짙게 물든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람만을 위해 내 인생을 바쳤다는 직장 내 정치꾼들 조차도 이 시기만큼은 더 큰 긴장감으로 숨을 죽이게 된다.
오늘 필자의 회사에서 임원인사를 통한 조직개편이 진행되었고 여기에 대한 또 한 번의 편파적인 입장을 내보고자 한다.
2. 나를 괴롭히던 임원
필자가 근 2년 전 편파적인 직장생활 시즌 1을 집필하고 있을 무렵, 평판이 좋지 않던 그룹장의 임원 승진을 언급했던 적이 있었다.이사 직책을 달고 필자의 팀장으로 현재까지 계셨던 이 임원분은 전무이사로 승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보였으니 이 큰 뜻은 오늘부로 접어야만 했다. 집에 가신다느니 다른 곳으로 가신다느니 다양한 추측들이 오고 갔지만 결과적으로 임원 생이 여기까지 인 것은 사실이 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이 그룹장을 임원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소위 말하는 라인으로 편입되기 위해 피땀 눈물을 흘려냈고 이 임원 역시 많은 사람의 노동력과 충성심을 시험하며 지금 자리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선배 부장급과 동기 부장들을 눌러내야 했고 신임을 얻기보다 결과물을 창출하기 위해 그룹원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기로 유명했다. 물론 임원이 된 최근까지 본인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 즉 실세들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친목을 유지하는 모습도 두 눈으로 지켜봐 왔다. 많이 순화해서 표현되었으나 각종 부정부패와 폭언 욕설 등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개인적 뇌피셜까지 지닐정도의.... 무엇보다 필자를 평가적, 업무적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괴롭히던 분이라 개인적 측면에서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3. 직장생활의 허무함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만약 내가 그 임원이라면 지금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짜증이나 화, 분노가 아닌 허무함일 것 같다. 특히나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임원의 경우 받을 수 있는 혜택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으로 알고 있어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오죽하면 임원이라는 직책 자체를 '임시직원'이라고 붙여 부르기도 할까? 정규직인 직원이 아닌 특정 년수에 맞게 재계약을 해야 하기에 매년이 생존의 싸움일 것이다. 더군다나 임원이 나오기 힘든 부서에서 수많은 피의 결과물로 승진한 그였기에 떠나는 지금의 심정이 얼마나 착잡할지는 감 잡기 힘들다.
사원 직급 때부터 함께 어깨동무하고 술 한잔 기울이던 동기들을 과장 직급이 넘어서 외면해왔다. 부장급이 되어서는 그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배척하면서 성장한 그가 더 좋은 연봉,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다른 차원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그 동기들보다 더 이른 시기에 그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흑 속으로 먼저 뛰어들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직장생활은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경쟁이 기다리는 건 모든 직장인들이 알기에 이런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한마디는 역시 '허무함'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먼저 먹은 열매가 달콤할지 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그 열매를 따기 위해 연장을 챙기고 사다리를 챙기고 맨발로 나무 위에 오르는 것이다.
4. 건승을 기원하며
팀장님의 보직이동 그리고 계약해지에 적잖이 당황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 와중에도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기도 했다. 그를 따르던 추종자, 혜택을 받은 자들은 아쉬워했고 괴롭힘을 받고 그 어떤 노력을 해도 배척받던 자들은 기뻐했다.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 입장에선 모두가 단지 월급 받는 직장인이자 관료제의 노예일 뿐이었다. 각자 도생해야 하는 사실은 변함없음에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게 된 해당 팀장님께 아련한 마음까지 들었다.
2년 전 글을 다시 정독하며 그래도 그의 승진을 축하하며 건승을 기원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의도가 조금 불순했을 순 있으나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우리 직장인들은 흔히 미생이라고 한다. 완생이 가능할지도 불분명한 불안 상태 그 자체지만 좋은 고과 평가로 승승장구를 하든 나쁜 평가로 무시를 받든 결국은 그만두고 자리를 비워줄 회사. 과정과는 상관없이 허무함을 맛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필요의 관계에 의해 묶여있는 회사 인맥들도 부질없음을 느낄 때가 올 것이고 쌓아왔던 모든 업적들이 한낱 바람을 탄 소문같이 잊히는 날들도 올 것이다. 나를 괴롭히던 그 상사가 떠날 때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라 나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시하고 내 미래를 위해 조금 더 경제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한걸음 옮기는 혜안이 필요한 시기,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