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수치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의 공간
글로는 마음을 고칠 수 없어
오랜만에 친구 K가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는 거다. “베를린 거주 유학생 부부가 지하철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던데 혹시 너희 부부는 아니지?” 다행히 우리는 아니라고 답해주었다.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외출할 때 조심해라.”
사실 중학교 때 친구들과의 카톡 대화는 보통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다. 아무리 사회생활을 통해 품격을 배우고, 초등학생 자녀를 두 명이나 둔 학부모일지라도 카톡 대화창에서 우리는 영락없는 중딩이다. 글(Text)만 그런 게 아니다. 마음도 중딩 같아서 종종 삐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면 반드시 직접 목소리를 들으면서 풀어야 한다. 글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정서가 있어서다.
그런데 이날 K의 문자는 사뭇 차분했다. K 본인도 오랜 외국 생활 중에 인종 차별을 겪어봤고, 차별을 당했을 때의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면서 바이러스 감염 다음으로 신경 쓰이는 일이 인종 차별이다. 그동안 학교 교육과 공익 캠페인 등을 통해 억제되었던 유럽의 인종 차별주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전면 봉쇄가 한창이던 지난봄, 나는 생활필수품 구매을 위해 마트에 갈 때마다 잔뜩 화가 나서 돌아왔다. 점원은 노골적으로 쫓아다니면서 내 손이 닿는 곳에 소독 스프레이를 뿌렸고, 길에서 마주친 청소년은 프랑켄슈타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나를 피해 도망갔다. 뒤통수에 대고 "코로나!, 코로나!"라고 외치지 놈들을 보면 위태롭게 지켜온 삶이 기저부터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먹고는 살아야 하고, 매체에서는 코로나 종식은 기약이 없다는데 매번 이렇게 화를 내면서 마트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로 한다. 일단, 청소년은 부모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집에서 오가는 대화 혹은 매체를 통해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거고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도리가 없는 청소년은 나를 피해 달아나고 싶었을 것이다. 점원의 경우는? 지금 같은 시기에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노역이다. 그 때문에 상당히 예민한 상태에서 나를 만나 날카로운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뒤통수에 대고 “코로나!”를 부르며 조롱하는 사람은? 이 사람은 마음에 병이 있다. 자기가 사는 세상에서 내세울 것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 타고난 피부색에 의지한다. 어리석게도 이런 사람들은 ‘특정 인종은 열등하다’는 결론을 미리 만들고, 인종의 ‘차이‘를 ‘열등’의 근거로 삼았던 우생학의 논리적 오류를 그대로 따라간다. 인종 차별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에게서 나오는 나쁜 습관 같은 거다. 클럽 축구팀까지 나서 유니폼에 'No Room for Racism'(인종 차별을 위한 공간은 없다) 배지를 부착해도 소용없다. 글(Text)로는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없으니까.
글로는 인생을 배울 수 없어
러시아로 유학을 다녀왔다는 그녀는 아담한 체구에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단번에 찾을 수 있는 외모였다. 그러나 먼저 나의 관심을 끈 건 외모가 아니었다. 나는 모스크바 기치스(GITIS)에서 연극을 공부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일촌 신청을 하고 쪽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본인은 현재 연기를 그만둔 상태라 해줄 이야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새로운 구실을 찾아 다시 쪽지를 보냈다. 그리고 내가 출연하는 공연에 그녀를 초대했다. 한 달 남짓 공연 기간 그녀는 무려 일곱 번이나 극장에 왔고, 매번 공연을 관람했다. 그렇게 만나는 횟수를 늘려가다가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시작하는 연인들이 다 그렇듯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다. 데이트 비용은 나눠서 지불했다. 내가 식사비를 내면 그녀가 커피값을 냈고, 그녀가 영화비를 내면 내가 팝콘과 콜라를 샀다. 둘 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식상하고 뻔한 데이트를 반복됐다. 차비라도 아껴보겠다며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고, 이따금 아는 형에게 빌붙어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부모님께 받는 용돈과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는 데이트 비용 내기도 간당간당하니, 휴대전화 요금 체납으로 인한 발신 정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생 반전을 기대하며 지원했던 드라마나 영화 오디션은 족족 떨어졌고, 학자금 대출 상환을 독촉하는 편지는 자베르 경감처럼 나를 쫓아다녔다. 도망자의 기분이 이런 걸까? 자존감은 이미 바닥에 처박혔지만 나의 추락은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 학사경고장이 날라왔고,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등록금 미납으로 제적됐다.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지 못했다. 나는 끝없는 추락을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은 습관처럼 익숙해져 갔다. 자연스레 그녀와의 데이트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나는 꼬일 대로 꼬여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힘들어했다. 우린 서서히 지쳐갔고, 결국 헤어졌다.
친구에게서 그녀의 소식을 다시 들은 건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였다. 교포 출신의 젊은 사업가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거였다. 아무래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여릿한 현기증을 느꼈지만 불쾌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심상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내 감정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렸다. 감정이 가는 대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나를 던져버렸다.
삶이 나에게만 가혹한가. 그렇지 않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삶이란 없다. 고통은 은밀하게 숨어있다가 튀어나와 덮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구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삶이 나에게만 가혹하게 보이는 건 내가 약해서다. 기본 체력이 부족하고 멘탈이 유리 같아서다. 그래서 작은 고통에도 남보다 훨씬 아파한다. 상대에게 정타를 맞으면 지레 겁먹고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다. 내려간 가드를 상대는 놓치지 않고 그 사이로 연타를 날린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연극의 암전처럼 의식이 급속히 전환되었다. 그녀의 결혼 소식은 스물아홉 살 나의 의식을 깨워주었다. 온몸이 나른해지고 잠이 쏟아지는 걸 막아 내려고 분주히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켰다. 더는 열등감에 빠져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서는 안 된다면서.
“코로나19 시대에 있었던 인종 차별 사건을 소재로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계속 ‘열등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열등감을 떠올리면서 의식에 흐름에 따라 글을 써 내려갔더니 거기에 내가 있었다. 나도 잘 아는 나다. 열등감에 빠져 무기력했던 나. 과거의 나를 대면하는 게 힘들지 않은 걸 보면 “이제 정신 좀 차렸나?” 싶지만 사실 난 여전히 열등감에 자주 빠지고 그때마다 극도로 무기력해진다. 혹 내가 원래부터 소파의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해진 가죽 부위에 살갗을 밀어 넣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내 뒤통수를 한대 세게 때리면서 "정신 차려! 나쁜 습관이야!"를 꼭 외쳐주길 바란다. 진짜다.
톨스토이, “쾌락이라는 건 대체로 고만고만하지만, 고통은 나름나름으로 미묘한 차이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