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어올 즈음이었던가 , 이맘때였던가 , 활꽃게 광고를 담은 마트전단지를 보게 됐다. 꽃게가 제철이긴 했나 보다. 티브이에서도 옆집, 앞집에서도 꽃게찜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몇 마리쯤이면 되려나, 승이가 게를 좋아하니까 좀 넉넉히 담아볼까 ,
"딩동. 현관 앞에 두고 갑니다."
현관문을 빼꼼히 열어 배달된 박스만 얼른 집어 들였다. 뒤이어 피식 웃음이 났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내 집 현관문 여는 것도 이렇게 조심스러울 수 있는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솥은 미리 준비해 뒀다. 꽃게의 크기가 얼만큼일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되도록 큰솥을 꺼내뒀던 터.
그러는 동안 잊지 않고 박스를 노려봤다.
나는 활꽃게를 시키지 않았던가, 혹시 박스를 열었을 때 꽃게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어쩔 텐가. 양눈을 부라리며 매섭게 쏘아보기라도 한다면 ,
머릿속에 온갖 상상을 키워가다 보니 어느새 두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어쨌든 해보자. 설마 할 수 있겠지, 괜히 박스끄트머리를 살짝 잡았다 놨다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이 정도면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최면을 걸어본다.
그래도 어쩐지 무서운 생각이 들어 좀처럼 끼지 않던 시뻘건 고무장갑을 꺼내 들어 끼었다.
오른손으로는 실리콘 집게를 꼭 잡고 있고, 왼손으로 박스 한쪽을 슬쩍 젖혀본다.
기절들을 한 건지 별다른 미동이 없다. 조용히 있어 주니 눈물 나게 다행이다. 꽃게 위로는 소복하게 톱밥이 깔려있다. 그것들을 씻어내야겠다는 생각뿐, 일단 한 마리 한 마리 집게로 잡아 들어 싱크대 개수대 안으로 넣을 참이다.
겁이 나서 잡히는 대로 꽃게들을 집어던지듯 개수대로 넣어버렸다. 그런데도 이미 죽은 건지 움직임이 없다. 움직임 없는 게 들이 반복되자 슬슬 안심이 되기도 했다.
상자는 이미 열어졌고 , 난 톱밥 범벅이 된 꽃게들을 기어코 씻어야만 한다. 씻어진 꽃게들은 개수대 선반에 아무렇게 걸쳐둔다.
앗, 기절했는지 죽었는지 모를 꽃게들 틈에 용케도 다리를 세차게 퍼덕이며 살아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게가 있다.
하나 몇 번의 반복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 숨을 들이쉬며 실리콘집게로 한쪽 게다리를 힘껏 잡아 올린다. 퍼덕이는 몸부림이 집게 끝을 통해 손가락으로 그리고 팔로 전해져 온다. 심장이 저릿했다.
눈을 질끈 감고 미안해, 미안해 를 외쳐가며 씻어낸다.
대충 개수대선반에 걸쳐두고 이번에는 한 마리씩 수증기가 자욱한 찜통으로 옮겨간다. 거의 마지막쯤 아직 살아있는 게를 옮기기 위해 들어 올린다. 순간 큰 집게발로 선반을 잡아 놓질 않고 버티고 있다. 이번엔 가슴이 더 많이 저릿하다. 이렇게 까지 해서 내가 꼭 꽃게를 먹어야 하는 것일까 우울해진다.
차를 타고 가까운 서해바다를 간다면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정도 걸릴 텐데 , 데려다가 놓아준다면 이전처럼 게는 살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을 듯했다.
순식간에 알 수 없이 복잡한 심경이 되어버렸다.
미안해 , 꽃게더러 들으라는 건지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끝내 찜통 안으로 넣어버렸다.
찜기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뚜껑을 열으라는 듯 타닥타닥 집게발 치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멈췄다. 그러는 동안 미리 집어넣은 게 들은 보기 좋게 주황색빛이 돼있었다.
참말 눈물이 찔끔 났다. 심장의 저릿함은 꽤나 오래갔다. 아이들에게 잘 쪄진 꽃게찜을 큰 쟁반에 담아내어 주었다. 게다리를 손으로 척척 뜯어내어 살을 발라 먹인다. 조금 전 내 팔로 전해졌던 게의 몸부림이 이젠 심장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끝내 나는 게를 한 점도 입에 대질 못했다.
먹는 것을 즐기는 내가 한 점도 대질 못하다니 ,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천성이 그랬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동네아이들과 놀다가 크게 우는소리가 나서 뛰어나가보면 아니나 다를까 내가 혼자 울고 있었다고 했다.
왜 우냐고 물어보면 친구가 때렸다거나 꼬집었다고 했단다.
답답하고 속이 타는 마음에 미화는(엄마)
" 울지 말고 다음번에는 같이 때려주고 꼬집어줘." 이렇게 일러 주었다는 터였다.
"그럼 친구가 아파하잖아. 그건 싫어. "라는 답을 하며 속을 타들어 가게 했다는 이야기. 미화가 그 이야기를 꺼낼 때면 지금도 천불이 나는지 어떤 건지 혀를 차곤 한다.
어쨌든 나는 그 뒤로 꽃게찜을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꽃게가 톱밥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지금도 어쩐지 가슴이 저릿해진다.
글을 쓰며 지금도 눈가가 촉촉해졌다고 하면 그 누군가는 실소를 하려나, 쓴웃음과 비웃음이 지어 진대도 내 천성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을 듯하다.